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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앤 May 22. 2023

일본 최고의 고치현립 마키노 식물원을 가다

사계절 모두 다 가보고 싶은 식물원

치쿠린지 절까지 돌고 나니 상당히 피로감이 누적되었다. 햇번 여사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 좋아하는 식물원이 지척에 있는데도 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식물원의 힘인가 나의 열정의 힘인가, 힘들게 왔는데 둘러만 보더라도 가자 하고는 티켓을 구매했다. 식물원으로 들어가서 채 몇 분 되지 않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여기 안 들어왔으면 어쩔 뻔했는가! 정말 크게 후회할 뻔했구나라고.


이 식물원은 나의 인생 식물원 목록에 당당히 들어가게 되었다. 크기나 규모면을 떠나서 내용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 정도로 고치 현립의 마키노 식물원은 나를 크게 만족시켰다. 고치 현립 마키노 식물원은 일본 식물 학계의 아버지로 알려진 작고한 식물 학자 마키노 토미타로 박사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이 분은 얼마나 사랑받는 분인지 고치시의 전차에 그려진 그림에서도 많이 만났다. 수많은 외국종의 식물뿐만 아니라 마키노 박사가 발견한 일본 고유의 야생 품종까지 3000 종이 넘는 식물들이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식물원은 6 핵타르의 넓이이고 여러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고 한다. 나는 저 날 너무 피곤해서 다 돌아볼 수가 없어서 일부만 본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구조가 독특하게 생긴 온실이었다. 1년 내내 무지개 빛깔을 내는 열대와 정글 식물들로 가득 찬 온실이다. 여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꽃에 빠져 사진을 백장 찍은 기분이다. 고치 생태 정원에는 고치현 곳곳에서 온 야생 식물을 심어 놓아서 그 지역의 생태식물들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북쪽 정원은 고치 동부의 평야와 산들의 풍경을 보여 주고 있고 남쪽 정원은 옆에 있는 치코린지 사찰의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가는 곳마다 탄성을 내며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거대하기도 하고 잘 가꾸어놨는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마키노 박사는 1940년에 출간된 마키노의 일본 식물 그림 백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지금도 식물학 전문가는 물론 식물 애호가들에게 필수적인 책이라고 한다. 마키노 박사는 지치는 일 없이 식물 연구에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 그의 열정은 전시된 식물 스케치에서 느끼며 나도 따라 그리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다. 언젠가 따라 그리겠다는 다짐을 하며 사진을 꼼꼼히 찍었다. 내가 그리고 싶은 부분 중 하나가 식물이다. 마키노 박사가 연구한 3000 종류가 넘는 방대한 식물들이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계절 내내 찾아야 할 식물원으로 마키노 식물원을 거침없이 정해뒀다. 이 식물원에서 저렴한 금액으로 연간 회원권을 발급하는 걸 보고 진심으로 이곳에 일 년 정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분명 이루어질 것이다.


식물원 곳곳에는 작은 폭포들이 있고 개구리가 계속 우는 소리가 들린다. 대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 주니 몸과 마음이 다 치유되는 기분이다. 마키노 식물원은 다양한 식물은 물론이고 다양한 건축물도 즐길 거리 중 하나다. 본관과 전시관은 미에 현에 있는 바다의 박물관 등을 만들어 일본 건축 상을 수상한 나이토히로시라는 사람이 설계했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지속시켜 간다는 지속성을 테마로 만들어서인지 전체적으로 둥근 돔 같은 느낌이다. 마키노 박사가 생전 가장 좋아해서 식물원의 로고가 된 바이카오우렌을 못 보고 온 점은 내내 아쉽다. 이 꽃은 제철이 1월 초순에서 2월 중순이라고 하니 이 꽃을 보기 위해서도 겨울에 다시 방문해야 한다.


마키노 박사의 일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식물들을 채집하거나 연구하러 갈 때 박사는 항상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갔다고 한다. 그 이유를 제자가 여쭈어보니 내가 사랑하는 식물들을 만나러 가니 멋지게 입고 가는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감동이다. 박사의 식물에 대한 사랑이 경건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한평생을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음은 엄청난 부러움이다. 식물원을 다 구경하고 나오니 오후 5시 정도 되었다 이제 돌아갈 길이 또 멀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머무를 수는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다른 길을 찾아서 내려갈까도 생각했지만 올라왔던 길이 무수히 힘든 오르막이었기 때문에 반대로 내려가는 길은 내리막 아닌가? 보상받고 싶었다. 그래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비게이션도 그렇게 길을 안내한다. 이제 씽씽 달려서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자전거를 타고 정말 신나게 내달렸다. 야호 소리가 절로 나오는 쾌감! 소리 지르고 싶은데 참다 참다 결국 한번 소리 질렀다.


너무나 신나게 달려 내려가다 보니 이상하게도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다시 오르막이 나타났다. 이런 길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길이 하나뿐이니 그저 앞을 향해 갈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보니 이게 웬일인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게 아닌가! 헉...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니 왜 다시 여기가 나타난 것인가.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가. 날은 점점 어두워지려고 하는데 , 그리고 산속이고 사람도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갑자기 무서움이 솔솔 향 피우듯 일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구글 지도를 잘 보면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너무 신나서 무조건 달리다 보니 분명 어디선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번에는 네비를 중간중간 살펴가면서 내려가기로 했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는 길이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길이 거의 보이지 않고 왼쪽으로 가는 길이 직선으로 되어 지나친 것이었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제대로 내려왔다. 다행이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갔던 길이 내려오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우리 인생도 오르는 건 그리 힘들고 내려 떨어지는 건 그리 한 순간이려나? 조심조심으로 정성껏 살아야겠다.


이제 다시 왔던 길로 호텔을 향해서 가면 된다 그러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는데 저녁을 히로메 시장에서 먹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랑어 타다키를 한번 더 먹어야 되기 않겠는가! 아, 실로 대단했던 고치시의 넷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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