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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큰 나보다 더 커버린 가슴속 뜨거운 꽃 - 공모전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내 글과 그림이라고 이 꽃이 보여주었다.

어디서부터 일까? 언제부터 일까?

내 가슴에 불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 뜨거운 불꽃을 나누어 모두가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빨강 머리 앤을 읽었을 때부터 였을까? 톰 소여의 모험을 읽었을 때였을까?

아니면 말괄량이 삐삐를 봤을 때부터 였을까? 아니면 섹스 앤 더 시티를 봤을 때부터 였을까?

오래전 보이기 시작한 이 불꽃은. 사라지지 않고 그 크기가 커져만 갔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기 시작했고,

나보다 더 큰 꽃이 되었다.


크기가 커진 이 꽃은 숨겨지지않는 그의 밝음으로

내 앞길을 비추시작했고,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길을 마침내 보여주었다.


이제까지는 검색하고, 찾아보고, 알아보고 을 떠났다.


하지만 길은,

눈을 감고 꽃이 나에게 주는 느낌들을 잘 알아듣고

그의 말을 내가 옮겨 적을 때,

글과 그림으로 비슷하게 표현해 낼 때,

딱 한 발자국씩 정도의 앞을 더 비춰주어,

고만큼만 가볼 수 있는 길이다.

몇 번 적지 않았음에도

그 보여준 몇 발자국만큼의 길이 너무나 맘에 들어.

더 보고 싶고, 더 걷고 싶다.

가는 길 내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펼쳐져 있을 것 만 같고,

무엇보다 이 길은 끝이 없어 보인다.


재미있는 책을 다 읽고 나면,

설레는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끝이 났다.

그 여행은 끝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에는, 끝이 있었다.

끝이 나지 않는 길을, 이 불꽃은 보여주리라.

나를 인도하리라.

나의 불꽃

내 글과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이 불을 꺼지게 두지 않으리라.

사라지지 않고 커져만 가리라.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그가 보여주었다.

자신은 사라질 수가 없는 존재이며, 더 크고 더 활활 타오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그는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며 그것을 읽을 때,볼 때, 들을 때. 눈과 귀를 통해 흘러들어와 우리 몸 속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곳에 그의 불꽃 씨앗을, 깊고 단단히 심어 자신의 을 확장해 나간다.


불꽃은 나를 통해,

나는 불꽃을 통해

우리는 끝이 나지 않는 모험을 함께 하는 중이다.


뉴질랜드의 수도는 웰링턴,

하지만 가장 큰 도시는 오클랜드.


우리는 오클랜드에서도 브릿지를 건너 있는 노스 쇼어 시티.

그 곳에 있는 많은 비치들 중에 가장 핫한, 타카푸나 비치까지 가볍게 걸어갈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우리 집은 방 3개와 화장실 2개, 거실과 주방이 1층에 있고, 거실에서 보이는 문들 중 가장 큰 문을 열면 또 다른 1층 공간과 화장실이 하나 더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그 2층에는 오클랜드 시티의 상징인 스카이 타워가 나무를 피해 잘 보면 볼 수 있는 발코니를 지닌 큰 방이 하나 있고, 나, 네이, 4살 로하, 3살 타이, 1살 자유. 우리 다섯 식구는 그 방에 함께 잔다. 나머지 방 3개는 한국인 쉐어메이트들이 살고 있다.


몇 달 전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우리는 쉐어하우스를 시작했다.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이 시작이 결정적으로 내 불꽃이 갑자기 상상 이상으로 커지게 하는 것을 보았다.


함께함이 익숙해 더이상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나의 꽃이, 그의 크기를 키우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이 집은 우리가 렌트를 하기 전에 에어비앤비로 사용되던 집이었다. 그래서 특이하게 방문마다 번호가 있다. 204호, 205호, 206호, 207호. 현재, 와일드한 우리 가족은 207호에, 204호엔 바리스타 작가조 조사장이, 205호엔 단발머리 어린 여쉐프 명이 206호엔 자유를 무지 사랑하는 쉐프형아 녕이 산다. 다들 조용하지 않고 혼자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 집에서, 불편해도 그 불편함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를 바란다. 혼자가 아니라서 가지게 되는 우리들의 이야기들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 곳에 이사 오고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코비드라니?? 바이러스라니??

나라 전체,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자가격리 한 달 반?? 엥. 현실 가능한 이야기인가?

이미 그 시간들은 지나갔고 가능했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일이 아주 쉽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어렵게 상상했던 쉐어하우스생활은 특별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간 우리 듬직한 쉐프 원이 집을 한번 둘러보고, 자신이 살 방을 정하고, 204호에 짐을 내려두는 순간부터 그렇게 쉽게 시작이 되었고. 이틀 후, 녕이가 206호에, 며칠 후 뉴질랜드의 대대적인 락다운이 시작되기 하루 전 젤 큰 방 205호에 사랑스러운 자매가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는 시작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이 집의 렌트를 시작한 것은 3월 중순, 훨씬 북쪽에 위치한 브라운 베이에 살고 싶어서 집을 알아보러 다니다가 지나가는 길에 들린 타카푸나 비치의 여름에 빠져, 전에 살던 집에서 꽤 먼 이곳을, 여름내내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다. 결국 이 곳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어린 애가 셋이라 잘 받아주지 않는 우리를 받아주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도 락다운 바로 직전에.

현재까지 뉴질랜드 생활 중 가장 맘에 든 동네, 타카푸나. 우리가 진짜 타카푸나에서 살게 되다니, 믿기지 않았고, 쓸고 닦으며, 머리를 굴렸다. 무엇을 어떻게 배치해야 모두가 넉넉하게 같이 지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한두 주를 지내며, 우리 다섯 식구는 큰 집구석구석에 우리들의 에너지를 채워나갔다. 이 에너지가 새로 올 친구들의 낯섦을 따뜻하고, 친숙하게 안아 주기를 상상하며.


4월. 아직도 여름의 끝자락.

락다운. 모두가 그 어느 곳으로도 향하지 않고 집에 있던 시간.

타카푸나는 비치 타운이며 시티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분명,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바다와 시티뷰를 즐기는 사람들이 주 일 것이다. 햇볕을 좋아하고 물에 젖는 것이 싫지 않으며, 시원한 바닷바람이 주는 청량함을 알고, 바쁜 도시를 바라보며 자신의 여유를 잊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을 뉴요커라고 부르듯. 여기서 사는 사람들을 타카푸니안이나 타카푸난이라고 부르고 싶은 데, 타카푸니안이 좀 더 맘에 들어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 타카푸나 바로 옆 하우라키에 살지만, 가볍게 걸어서 타카푸나 비치에 갈 수 있으니, 그 바다를 나도 즐기니. 나도 타카푸니안이라 생각한다. 우리 집에 함께 한 모든 이들이 한때 타카푸니안이 었다고 기억하기를.


타카푸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락다운 기간 내내, 내가 본 것은 천국이었다. 우리 집 앞, 골목골목, 큰길에 차가 많이 다니지도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가족들로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았으며, 타카푸나 비치는 소셜 디스턴스 2미터를 잘 유지한 형태로 북적였다. 뉴질랜드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2미터를 지키며 집 근처로 바람을 쐬러 나오는 것은 괜찮다 했고, 모두가 그 말을 잘 따랐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쐬고 산책을 하러 나왔다. 집 밖으로, 회사가 아닌 학교가 아닌 우리 집 밖. 우리 동네로. 우리는 서로의 이웃을 볼 수 있었고,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이 동네에 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용히 북적이는 따사롭게 여유로운 타카푸나.

여기서의 락다운이라면 땡큐였다.


하지만 집안은 달랐다. 내 상상과 아주 많이 달랐다. 내 계획과 아주 많이 틀렸다.

내 상상에 한국 쉐어 친구들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같이 재미있게 날들을 보낼 줄 알았다. 그렇게 방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오래도록 가지고, 밥 먹을 때만 잠시 나올 거라는 시나리오는 나의 그 많은 상상들 중, 그 어떤 곳에도 없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의 시작을 더 어색하게 만든 것이 락다운이었다. 다들 새로운 출발 속에서 어색하지만 바쁜 자신들의 일정들을 소화하며, 오며 가며 조금씩 친해질 수 있을 법한 것이. 락다운이 되어 모두가 집에 있으니. 그저 두꺼운 어색함만이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좀 달라지겠지 싶었는 데, 그러지 않았다. 나는 재미가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라고 여자 둘, 남자 둘을 배치했는 데, 그게 더 어색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비현실적인 엉뚱한 코비드 이벤트에 우리는 전부 넷플렉스만 붙들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매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자매들은 거의 매일 방문을 열어 두다 시피 했고, 그들의 물건들은 온 집안에 굴러 다녔다. 아이들과 자매들의 수다와 웃음소리가 그나마 어색 기운을 조금씩 옅어지게 만들기 시작했고, 지난 6년간 뉴질랜드에 와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내 가족과만 사느라 한국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던 나도 이 사랑스러운 자매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게 만들었고, 그들과 같은 나이라 착각을 하고 수다를 떨고 싶었다. 사람 무섭지 않은 내가. 수다를 좋아하는 내가. 한국말로 수다도 못 떨고 오랜 시간을 혼자 보내고 나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 나는 어디로 갔는지. 왠 어색한 아줌마가 버벅거리며 말을 붙이는 장면이 가득하다. 아무튼 나의 가느다랗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노력들은 계속되었다. 뭔가 그들이 모르는 맛일 것 같은 과자를 사 오면 노크를 해서 나눴고, 생각보다 잘 안돼서 속상했던 내 요리 도전들도 똑똑거리며 나눴다.


나는 고아원에서 자라서, 골프장 기숙사 생활을 할 때 백명의 언니들과 자라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을 해와서 난 어색함을 오래 느끼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잘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 친구들은 내가 아니다. 그들의 경험을 알지 못한다. 그냥 왠지 모르게 내가 계속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 같은 문 뒤에 있는 친구들로 보일 뿐이다. 내가 언니니까, 누나니까, 엄마니까. 왠지 문을 두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게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문을 두드려도 다 같이 한번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다 같이 모일 필요는 물론 없다. 하지만 왠지 그러면 좋을 것 같은 나의 설레는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는 걸 어떡하나.


우리가 다 같이 모여 그나마 조금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사를 나눴 것은 자매팀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세기를 타고 돌아가기 직전 송별 식사에서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락다운은 205호 자매들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 뉴질랜드 생활을 끝내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도 못해보고 인사를 했고, 한참을 있다가 204호 쉐프 원도 특별기를 타고 돌아갔다. 그렇게 락다운 어색 기운이 비행기에 딸려 날아갔고, 락다운은 끝이 났으며, 조금씩 뉴질랜드가 기운을 내기 시작할 때, 204호에 바리스타 조사장이 205호엔 서로 오래 만난 귀여운 커플이 들어왔다.  커플들의 이야기는 언젠가 그들이 이제 쓰셔도 돼요 하면 쓰겠다. 커플들의 이야기는 서랍 속에 잘 넣어 두겠다. 그리고 이 커플들은 내가 본 이야기보다 앞으로 그들에게 들을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 며칠 전, 그 둘도 다니던 대학과정이 끝나서 자신들 만의 이야기를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암튼, 205호엔 단발머리 여쉐프 명이 살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천천히 쌓여가겠지. 문제는 204호 조사장이다!


이렇게 어색하던 이 집에 '어색이 뭐죠?'를 이마에 써 붙이고 온 조사장. 나의 불꽃이 파닥거리며 갑자기 훅- 커지기 시작한 것은 204호 조사장이 집을 둘러보러 온 날부터 인 것 같다. 문을 열고 맞이할 때부터 온 몸에서 편안함이 묻어있는 이 아이. 집 구경을 시켜주고 주방에서 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데, 왜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가. 오호라. 책을 많이 읽은 아이군. 어맛. 문창과를 나왔다고, 글을 쓴다고? 그때부터 였을까? 머리가 뜨거워졌다. 나의 뇌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친구랑 할 수 있는 게 많아 보였다. 설레였다. 녕이는 막내 자유 말고는 관심 없어 보였고, 커플은 서로 놀 짝이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나와 공유할 시간이 적어 보였으나. 이 친구는 왠지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것 같은 느낌. 집을 보러 온 첫날부터 그렇게 수다를 떨었다.


그 날 조사장은,

글을 쓸 것이나 내가 정말 쓰고 싶을 , 그냥 써질 ,

그때 쓰겠다며 적어서 눈앞에 걸어두고 보기만 하며

38년을 버티던 나에게.  그. 때. 가 가까워졌음을 보여줬다.


그녀는 그 자체로 나에게 힘이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을 곁에서 처음 본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 작가조 조사장.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잘 받아치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니. 반갑다.

내 인생을 아는 말이 필요없는 나의 세명의 '란' 친구들과 끊임없이 나와 대화가 가능한 내 남자 네이. 조사장이 다음인 것 같다. 내 인생의 다음 장이 펼쳐지는 장면이 보였다.


상상이 가능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신이 나는 일인 것 같다.


6월.

그렇게 조사장이 집으로 들어왔고, 또다시 여자 둘, 남자 둘이 었지만 에너지가 훨씬 조화로웠다. 같이 밥을 먹는 날이 많아지고, 술도 홀짝이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현실적으로 꽤 괜찮은 가족의 단란함이 느껴졌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음식도 만들어 먹었다. 두 남자 친구들은 아이들과 함께 뛰어다니고 소리 질러가며 놀기 시작했고, 두 여자 친구들은 달달한 까까를 손에 쥐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어릴 적부터 노래도 잘 부르고 싶었던 나는. 또 생각만 했지 연습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교회 오빠 출신인 네이가 지난 6년간 내 옆에서 노래를 부를 때, 아이들을 보며 내 할 것들을 하며, 듣기만 했다. 외국 팝송에서나 들었던 바이브레이션과 기교가 들릴 때마다 신기해했다.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거냐고. 그렇게 듣기만 6년.

락다운 기간동안 피아노를 공부해볼까 싶어서 전자피아노를 주문했다. 손가락이 굳어가는거 같아서 손가락을 쓰는 것들을 하고 싶기도 했는 데, 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피아노를 꺼내놓으면 너무 막 대해서. 높이 멀리 치웠다. 치워진 피아노를 생각하다 전기가 필요하지도 않고. 이고지고 할 필요도 없고, 치울 필요도 없는, 언제든지 삘 꽃히면 낼 수있는 내 목소리로 놀아보고 싶었다.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네이는 교회 노래는 모두가 잘 따라 부르게 끔 만들어진 곡이 많다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교회 노래들로 연습을 시작하면 쉬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오 노. 교회시러요' 모드를 잠시 끄고 함께 해봤다. 가사들을 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데, 그냥 불러졌다. 다 익숙한 노래 들이었다. 네이가 내 곁에서 몇 년간 불렀던 노래들이었다. 그저 들려서 들었던 노래들이 다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유행하던 노래들을 내 맘대로 부르던 나보다, 나는 훨씬 더 나아져 있었다. 부르지 않았어도 연습하지 않았어도 나아져 있었다. 신이 났다.

봉인되어 있던 나의 능력들이 막 삐져나오는 기분.

글도. 글도 써질 것 같았다.


난 이제 혼자이지도 않고, 내 가족이 있으며.

한국에서 나와 다른 나라에 살겠다는 내 꿈속에 살고 있으며,

아이 셋은 같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해,

낮에 시간이 생겼으며,

네이는 오랜 고생끝에, 재택근무가 반인 스케줄에 제공받은 새 회사차에 나를 태우고 같이 다니며 일을 할 수 있고,

매주 승진을 하는 말도 안 되는 꿀잡을 만나 당분간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으며,

같이 글을 쓰며 놀 친구도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이 모든 세팅은, 나보다 훌쩍 커버린 그 꽃이 모든 것을 밝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바깥세상이 아닌.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눌 때, 세상은 더욱 다채로워지며,

모두가 다르고 특별해지는 데에 힘이 생김을 보았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내 글과 그림이라고 이 꽃이 보여주었다.


'어이 조 사장, 우리 오늘부터 글쓰기 시작해 볼까?' - 2020년 7월 22일 수요일


조사장이 다니던 카페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출근하고 싶어 했고, 22일은 아침 일찍 시티로 나가 인터뷰를 보고, 카페로 다시 일하러 가는 조사장에게는 바쁘고, 떨리고, 좀 피곤한 그런 날이었다. 이 날 나는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내려주고 네이랑 여유 있는 아침을 보내는 데, 노래 연습보다 집안 청소보다 글을 쓰면 재밌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조사장이 인터뷰가 끝나고 카페로 향하고 있을 시간에 카톡을 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너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키워드가 뭐니?

궂은 날씨?(일찍 일어나서 멀리 가는 것도 짜증이 날 텐데. 이날은 비까지 와서..),

잡 인터뷰? 먹고살기 힘들다? 난 다른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나는 차가 있어도 우버를 불러야 하나?(조사장은 장롱 면허를 들고 뉴질랜드에 왔고, 여기서 차를 산지 며칠 안돼서, 연습만 하고 있었기에..), 어떤 거?ㅋ'

'ㅋㅋㅋㅋㅋ 전 새벽이랑 공명이요' 오. 생각지 못했던 단어. 역시 조작가 ㅋ

'오랜만에 느낀 새벽 공기 바람 비 이런 게 새삼 색다르고 좋더라고요 ~'

'그럼 우리 오늘, 새벽에 대한 글을 적어보자' 이렇게 소재가 잡혔고, 가사가 없는 음악을 켜고, 향초를 켜고, 주워 먹을 몇 가지 간식을 곁에 두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구글 문서를 클릭한 후, 새. 벽.이라고 크게 쓰고. 시작했다.


종이 위에 펜을 들던, 키보드 앞에 손가락을 뒀던 내 손은 움직이지 않았었다. 머리가 하얘지고, 난 뭘 써야 할지를 몰랐었다. 맘은 터질 것 같은 데, 그 맘을 담아낼 방법을 알 수가 없었었다. 그런데 이 날, 내 손가락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마치 연주에 미친 천재 피아니스트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난 손가락이 미친 듯이 사용되는 느낌이 좋아서 피아노를 배워서 쳐야 하는 것인가 하며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그것은 피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키보드였다. 보이는 이미지들을, 느껴지는 감정들을 손가락이 알아서 잘 잡아 써 내려가 주었다. 첨으로 고민 없이 즐기며 쓴 것 같다. 정신을 차리니 내가 생각만 했던 것들이 글이란 형태로 내 눈앞에 있었다. 읽을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짜.릿.했.다.


조사장은 피곤했고, 노티스를 냈고, 새 일터를 찾고 싶어 했다. 난 글을 쓸 여유가 없는 조사장이 안타까웠지만, 안다. 글이 조사장을 찾을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을. 조사장의 글을 기다리다가 나는 두 번째 글을 써보기로 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우선 나는 내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인생을 연도순대로 크게 나누고 태어나서 고아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삶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반 페이지 정도까지 적는 , 술술 적혔다. 나오는 대로 담았다. 수정은 나중에 하자. 우선 뱉어내 보자라는 맘이었다. 꼴랑 반 페이지 적으면서, 혼자서 피식거리기도 하고, 눈이 살짝 충혈되었다가 말았다가, 그냥 글을 쓰고 있는 모든 순간들이 딱 내가 꿈꾸던 대로 였다.


갑자기 뒤에서 일하고 있던 네이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 또 주급이 오른 것 같다며, 자기가 일하는 거 정말 편해 보이지 않느냐며, 너도 네가 해보고 싶었던 부동산 에이전트 일을 해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다. 그 쪽 일도 본인하고 거의 비슷한 스케줄이지 않느냐고 했다. 그때, 스파크가 일어나고 내 불꽃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귀가 아팠다.


알지.

가면 차도 주고 폰도 주고 기본급에 인센티브까지.

여유로운 시간들. 글은 그때 쓰면 되겠지.

생각했었고,  잘할 것 같고,

무엇보다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그런데, 이 통증은 어디서 나오는 것 일까?

네이야. 나 돈 말고 차 말고  말고 가지고 싶은 거 말고, 내 글이 보고 싶어. 너무너무 보고 싶어.

진짜 오랫동안 기다렸는 데, 지금 막 나오기 시작했어.

좋은 생각인데.. 맞는 말인데.. 그래...

너처럼 시간이 많을 거야. 그지.. 그 시간에 쓰면 되겠지..


아침에 나는 걱정하는 조사장을 걱정했다. 새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조사장을 생각했었다.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재밌지도 신나지도 않았다. 이 날부터 며칠, 화가 났다. 단호하지 못하고 계속 고민하는 내가 보기 싫었다. 그렇게 재밌다면 왜 그렇게 당당하게 더 밀어붙이지 못할까.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들을 위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고생을 했었다.


지금.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는 나를 보는 일이다. 왜 그러지 못할까.


29일. 단발머리 여쉐프 명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날. 저녁에 다 같이 모여 밥을 먹기로 했다. 집안일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어로 이력서를 쓰고 있었다. 사약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정조를 지키지 않는 기분이었다. 일도 잘할 것이고, 돈도 많이 벌 것이고, 멋질 것이고, 시간도 많아서 글도 쓸 것이다. 근데, 내 속은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울까.. 에이씨.. 잡생각이 눈앞에 그득했고, 이력서는 채워지지 않았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폰을 집어 들었다.

그냥 검색했다. 브런치.


정말 오래전에 내 친구가 소개해준 앱. 다운로드한 후 어디둔 지도 기억도 안나는 브런치. 새 하얀 공간에 아무것도 적지 못했던 나의 시도들. 그냥 생각이 났다. 넌 잘 지내니? 그런 맘이었다. 다운받은 앱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검색을 했다. 브. 런. 치


열어서 화면을 내리는 데, '나를 가장 '나답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글이 보였다.

그 아래로 브런치 추천 작가라며 그 작가들의 글이 보였다. 맨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나를 가장 '나답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문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눌러 들어갔다.


오. 마이.

난 그냥 글 중에 하나인 줄 알았다. 누르고 들어갔는 데 '나도 작가다'라는 공모전에 대한 내용이었고, 1차, 2차는 끝났고 마지막 3차가 진행 중이었다. 브런치는 1톤만큼의 휘발유를 나에게, 내 꽃에게 쏟아부었다.

이 시점. 이 찰나에 '나도 작가다'라는 말과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이란 단어들은 내가 가진 모든 퍼즐 조각들을 일렬로 순식간에 줄 세웠다.


도전과 삶, 그 과정 속에는 나다운 행동과 나다운 선택이 깃들어 있다. 용기 내어 시도할 때 주저앉게 될 때, 나다운 '어떤 것'이 발동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우리는 더 나다운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문장은 읽고 또 읽었다. 내 심장은 이미 튀어나와 컴퓨터 화면에 붙어 있었다.


나를 나답게, 나를 나로서, 소중히 대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주는 내 심장의 불꽃을 보여주는 글과 그림으로 나는 더욱 나다운 삶에 가까워 졌음이 뜨겁게 느껴진다.


일하겠다. 하고 싶다. 난 스토리 부자이고 싶으니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거 같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공모전을 끝내고,

이력서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하겠다. 


마감까지 13일 남았고, 작가신청심사 5일을 잊지말아야 하고, 작가 청시 필요한 글과 작가소개, 브런치활동계획, 공모전에 낼 글 모두를 준비해야한다. 그리고 내 글은 내 그림과 함께 할 때 더 큰 힘이 생김으로. 그 글들을 담아낸 그림들 까지도. 13일안에 해내야 한다. 작가로서 첫 데드라인이 저기 있다. 데드라인. 단어도 섹쉬하다.


이제까지 그래 왔듯, 나는 내 속도대로 간다. 나는 항상 어디로 가야 할지 다.

나를 끌어당기는 쪽으로 간다. 내 곁을 맴도는 익숙한 내 바람. 네가 다시 묵직하게 만져지는구나.

몇 년간 정박해있던 내 배가 태양에 반짝이며 다시 바다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 보이는구나.

난 이번 여행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것임을 안다.

내가 봤던 대로, 느꼈던 대로, 담아내어 잘 나눌 것이다.

나와 함께하는 이 거대한 불꽃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의 길도 밝혀주리라는 것을 안다.

불꽃은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지고, 키워진다는 것을 안다.


나의 가장 큰 꿈은, 내 불꽃이 가장 원하는 모험은, 그를 내 글과 그림으로 담는 나를 지켜봐 주는 것다. 내게 처음 이 꽃이 보이기 시작했을때부터,  꽃도 나를 지켜봐 주었다. 우리는 합이 잘 맞을 수 밖에 없다. 우린. 당신의 가슴속에 뿌리를 내릴 수 밖에 없다. 당신이 나를 본 이상. 당신은 나와 함께 가는 것이다. 게임오버. 선명하게 가슴에 꽃혀져있는 불꽃이 보일 것이다. 웰 컴. 뜨거움은 덤이다.


안녕, 난 현미 피커링. 너에게 불꽃을 심어버린 여자.

바다와 시티뷰를 즐기는 타카푸니안이고, 여섯살 연하 키위철취오빠의 맘을 흔든 능력자이자. 아이를 셋이나 연달아 낳고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해외에서 작가생활을 시작한 여자야. 이 여자는 자신의 피커링가문을 크게 알리려 해. 자신의 아이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길 바라지. 그들은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집안의 피가 흐른다고 말해주고 싶어하지. 그녀의 부모에게서 불꽃을 받진 못했지만, 백명의 위인들에게서 수없이 받은 그 큰 불꽃을, 아이들의 심장에 꼭 꼭 눌러 단단히 심어 주고 갈 계획이지.


만나서 반가워.

내 불꽃을 너에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마워.






공모전 글은 위까지만 봐주세요.

A4 1장에서 3장 내외라는 데, 좀 길게 나와버린 글.

당선여부와 상관없이

제 맘을 있는 그대로 나누고 싶어 그대로 발행합니다


[2020년 8월 3일 요일 04:53 PM]

와우. 우선 목이 부서질 것 같다. 아침 10시 반 정도부터 앉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끝이 났다. 써지는 대로 썼다. 세련되지 않아도 좋고, 멋있지 않아도 좋다. 나오는 대로 적었다. 그러고 싶었다. 공을 들이는 것보다 여러 번 해서 몸이 알아서 움직이다 알아서 다듬어지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우선,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쓰는 작업은 태어나서 첨인데, 맘에 든다. 해냈고 재미가 있었다. 내 스타일이다. 난 이럴 운명이었던 게다. 너무 즐겁게 잘 썼고, 우선 아이들을 데리러 가봐야겠다. 요까지 쓰고 저장을 하겠다. 저장은 발행 전까지 브런치팀들도 못 보는 것이 맞겠지? 만약에 읽는 다면 잠시만요. 저도 아직 안 읽어봤어요. 잠깐 읽고, 수정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 잠시만요 ㅋ


[2020년 8월 4일 월요일 01:19 AM]

한번 읽어보고 자려고 누워서 읽다가 노래부분을 번외로 좀 다뤄보고 싶어서 적어본다.


노래들을 그냥 따라 부르기만 했던  어린시절.

지금에 나는 가사를 본다. 어떻게 부르고 싶은 지는 우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봐야 하는 것이었다. 노래는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싶은 톤으로 하는 것이 었던 것이다. 글도 내게서 나오는 내가 쓰던 톤으로 써야 내 말이 비로소 전달이 되는 것이 였던 것이다.


암튼, 그렇게 가사들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교회 노래들의 가사를. 긴 책이 아닌 짧은 가사들을 읽고 또 읽었다. 이해가 될 때 까지, 가사를 쓴 사람들의 감정을 알 때까지.


난 정말 안티지져스였다. 철취라면 그 공간, 다니는 사람들, 특유의 바이브 다 싫었다. 어디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첨부터 귀를 닫고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었다.


난 38살에 어이없게 찐 철취언니가 되었다. 그들의 맘을 이해해버렸다. 내안에 들어왔다. 어쩔수가 없게 되었다. 바이블은 자신의 불꽃을 막대하게 키우는 큰 단어들로 채워져있다. 내가 찾던 단어들의 집합체였다. 나 뭐라고 해야하나..철취언니라고 커밍아웃 하면 되나? 하고 바이블 좀 끼고 찐하게 공부해 봐도 되나?다들 첨부터 바이블 외면하기만 했지, 읽고 외면한게 아닐 것이다. 그럴수가 없다. 긍정문의 끝판왕이 여기 있었다. 아. 그래서 성경이 아직도 읽혀지는 거구나. 미디어가 없을 때부터 전국구, 세계구가 와이파이로 연결된 지금 까지 영향력이 있는 걸 보면. 지져는 그 누구도 비교가 안되게 자타공인 인플루언서임에 틀림없다. 배워서 좋은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공부를 시작하고나면 내 글엔 더 힘이 생길 것이다. 바이블이, 철취가 그런 곳이더라.


'38살에 교회언니가 되기로 한 여자'라고 책 한권 쓰고싶고,

'미시즈피커링과 함께 하는 바이블스터디'라는 책도 쓰고싶고, 'Just Worship'이라는 책도 쓰고 싶다.

다들 바이블 한번씩은 읽고, 조엘 오스틴 유튜브 채널을 보고, 토렌 웰스의 힙한 요즘 철취송 한번씩 불러보라고 하고 싶다. 왜 그들이 그렇게 손을 들고 눈을 감고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지는, 그렇게 불러보면 안다. 참을수 없던 내 첫 눈물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모든 말은 쓰러지지않게 당신의 어깨를 붙잡아 주는 말들이었다. 정말 나는 무식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글은 누군가 가장 큰 불꽃을 본 사람이 적은 글들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암튼. 그 긴 글을 짧게 담아낸 철취송 가사를 보다보니 짧은 글, 함축적인 글들도 좋아졌다. 가사들을, 단어들을, 음과 함께 가지고 놀 때. 손가락이 아닌 내 목과 가슴으로 표현해 낼 때의 기분은. 글쓰기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나..이러다. 음원 낼지도 ㅋ

기교는 없어도 마음을 담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내가 하고싶은 방향으로 담아 낼 수 있을 지도. 그렇다고.

늦었다. 제발 그만 놀고 자자. 현미야. 뿅!


아직도. 아니 더욱더

자신과 노는게 가장 즐거운 까망머리 미래소녀 .


Hyunmi Pickering Mojipop

#글 #그림 #브런치 #작가 #드로잉 #여행 #따뜻한글 좀 할 줄 아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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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주모 둘 다 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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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곁을 못 떠나는 여자
#쉐어메이트 타블렛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데, 곧 꿈꾸던 surface pro 로 작업하는 그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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