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내 세상'의 첫 행선지는, 아동일시보호소 | 0102
[06082020 THUR 4:45 PM]
다음 글을 쓰려고 앉았다. 고아원에 가서 살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쓸 참인데, 뭔가 빠뜨린 느낌. 눈을 감고 경찰서에 도착한 앤으로 돌아갔다. 빼먹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아원에 보내 지기 전에 아동일시보호소라는 곳에 맡겨졌다. 말 그대로 임시로 아동을 보호하는 곳이다. 거실보다는 크고 강당보다는 작은, 작지 않은 큰방들이 여러 개 인 그곳으로 오게 된 많은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하였다.
단순했던 시간들.
눈뜨고 밥 먹고 그 큰 방에서 다 같이 놀다가 씻고 잠이 드는.
기억에, 그곳엔 책이 많이 없고, TV도 없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스펙터클 하지 않고 상당히 단순하게 기억되어졌다.
책, TV, 게임.
내가 주로 시간을 보냈던 것들이, 그곳엔 없었다.
단순한.
진짜 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의 선택’ 들로 꽉 찼던,
복잡했던 그 세상에서 걸어 나와 내가 선택한 내 세상.
내 선택으로 쌓여 갈 깨끗하게 비어있는 내 인생.
지금부터 나의 모든 선택은.
내 생존과 내 욕구 충족 여부에 영향을 미치며,
나를 위한 절제는,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현실. 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또렷함이었다. 받아들였다.
떨리지만 기쁜 마음으로.
사실 더 단순했던 건.
남의 이야기 속에서 배우려고만 했던, 내 의지.
단순해 보이는 이 세상에 발걸음을 딛는 순간부터,
그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리.
티비로 보고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직접 보고, 경험해서 얻는 나의 리뷰가 궁금했고,
훨씬 컬러풀한 내가 되고 싶었다.
내 이야기는 흑백티비가 아닌 컬러티비였으면 했다.
내가 부모들의 나이일 때쯤, 내 이야기도 꽤나 복잡하겠지-
하며 특기 이자 취미인 상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꽤 긴 시간,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데,
확실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먹고, 놀고, 씻고, 자고 의 단순함에 그 기간이 길게 느껴졌을 지도.
"현재 내 나이 서른여덟.
이때 내 부모의 나이보다 많은 나이가 된 것 같다.
복잡하지 않다.
깊고 탄탄하며 생생한 컬러의 내 이야기를 가지게 되었지.
복잡하지는 않다.
덕분에 잘 컸다. 감사하진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가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나갈 거라는 내 의지를 다지는 데, 정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흑백도 컬러도. 다 좋고.
흑백이라도
그것이 가진 장점을 잘 살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책이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이, 내 환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나이의 아이들, 적은 아이들, 많은 아이들.
정말 많은 아이들.
누군 버려졌고, 누군 진짜 길을 잃어버렸고.
딱한 스토리가 많았다.
나는 내가 이곳에 오고자 해서 있었기에,
그리고 다시 돌려보내 지지 않고 고아원으로 가고 싶었기에.
조용히 있었다.
그냥 길을 잃어버린 아이들 중 한 명으로 불려지게 두었다. 딱한 스토리가 아닌, 뜨거운 스토리로 풀어지게 두었다.
규칙적임과 단순함에, 내 안전과 의식주가 해결됨에 안정감을 느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안정감을 가지는 것은 쉽고, 나머지는 다 내 재미를 위한 시간이라는 것을.
내 이야기의 양을 늘리는 일이라는 것을.
그곳에서 난 이미 단순한 몇 가지에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는 나를 보았다. 책, TV, 게임을 하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놀지 않고, 몸만 가지고 보내는 하루는, 생각보다 짧았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잘 자고, 맛있게 밥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혼자서 조용히 놀다가.
이 네 가지만 하는 데도 하루가 다 갔고, 그 하루는 특별하진 않았어도, 충분히 재밌었고 다양한 친구들을 곁에서 보며 많이 배우기도 했다.
생각보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하루를 만드는 것은 쉬웠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이상은, 사이사이에 좀 더 끼워 넣고 싶은 부록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더 놀려면 더 놀 수 있는 것이고, 더 먹을 려면 더 먹을 수 있는 것인데, 지나치지 않게, 괜찮다 싶은 곳에 더 끼워 넣으면 되는 부록 같은 것.
난 이미 행복했다.
그래서, 부드러운 절제가 가능했다.
스스로 다양한 방법으로 내 욕구들을 충족시켜나가는 법을 알았다. 이왕이면 나를 위해, 건강한 선택을 하는 쪽으로 향했다. 너무 딱 부러지게 하는 편은 아니고, 적당히 봐가면서,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쪽으로 천천히 향하려고 하는 편이다.
난 잘해왔고. 만족한다.
제 때 다 같이 밥을 먹고,
제 때 다 같이 씻고, 같이 놀고, 같이 자고.
그 단순함.
낯설지만. 틀이 있고, 그에 맞춰지는 것에 나쁘지 않았다. 가족이 없다는 슬픔보다 제 때 밥을 먹는 법을 배우고, 양치를 꼬박꼬박 하는 법을 배워가는 내가 좋았다. 세상은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았기에. 첨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듯한 나를 응원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이 부분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이기와 제 때 양치를 시키는 것, 제 때 재우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았다.
난 연년년생으로 야심 찬 가족계획을 해서. 현재 쪼꼬만 아이들만 셋이라, 매 순간이 난리법석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먹이는 데에, 누군가를 씻기는 데에 내 시간과 내 의지를 배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이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자신이 어떻게 자랐음을 알게 되고, 비로소 자신의 부모에게, 세상에게 자신이 힘든 만큼 감사함을 느낄 것 같다.
감사하다.
내 밥을 만들어주셨을 얼굴 한번 본적 없는 당신이.
내 양치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이.
깨끗하게 씻긴 옷을 입혀주신 분들이.
나를 안아준 대한민국이, 여러분이.
잊지 않고, 잘 자라서.
나와 우리 가족을 잘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어, 당신들의 수고가 헛되이 지 않았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가 된 아이들은,
그렇게 깊고, 넓게. 맘의 크기를 키워가는 기회를,
자녀의 수만큼 더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어떤 아이인지를 가늠해 보는 듯한 분위기.
나에게 넌 책을 많이 읽은 아이인 것 같다는 말을 하셨고, 공부를 제대로 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시며, 들고 있던 종이들에다가 뭔가를 적고는, 크게 미소 지으며,
'넌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거야'라고 하셨다.
얼마 후, 나는 부산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괜찮다는 고아원으로 갈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많은 친형제자매들이 떨어져서 배정받는 경우도 많은 데, 운 좋게 우리 둘은 같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강조의 말과 함께.
고아원의 이름은. 동산원.
법인명은 사회복지법인 에덴육아원.
원산동. 원산동 하면서, 우리끼리 커버해서 불렀던 그곳을 나와, 억지로 가던 성당을 더 이상 안 가게 돼서 좋았고, 안티지져스로 최근까지 살았었는데.
최근에 커밍아웃한 찐 철취언니의 마음으로 돌아보니,
난 이미 에덴에서 길러진 아이였다.
성당이던 교회이던, 같은 책을 보는 곳.
신은 나를 버린 적이 없었고,
오히려 그는 나에게 최고의 것들만을 주었다.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감사하게 느껴지는 내 고아원 시절. 그 시절 누렸던 것들은, 아직도 가지기 힘든 것들. 커다란 운동장이 두 개나 있고, 도서관과 목욕탕이 따로 건물이 있고, 대나무 숲이 빽빽하고, 갖가지 과일나무가 있던. 동네에서 가장 큰 집. 내가 자란 곳.
에덴동산
제 색깔을 더 선명히 할 수 있었던 그곳으로,
저와 제 동생은 가게 됩니다.
[09082020 SUN 8:54 AM]
그래서일까. 내가, 우리가,
우리들의 에덴동산을 꿈꾸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도 그런 동산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램은.
신은 나에게 내 미래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앤이 타잔에게 빠진 가장 큰 포인트는.
그가 정글 속 에덴동산을 꿈꾸고, 드디어 나를 만나,
나를 데리고 꿈꾸던 정글로 자신의 가족과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의 꿈이 한 발짝 가까워짐을 본 그를 내가 봤을 때, 그는 꼭 앤을 트로피칼 에덴동산에 데리고 갈 것이란 확신을 봤을 때, 그의 꿈과 나의 꿈은 같이 이루어질 것이란 나의 확신을 봤을 때. 난 그와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은 아담에게 이브를 보냈다.
그리고 내겐 타잔을 보냈다.
난 야성적인 날것의 그가 너무 좋다.
시티 한복판에서 정글의 향을 내뿜는 그가.
내 옆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우리가 향하는 쪽은, 트로피칼 에덴동산
우리의 첫 베이비, 로하가 곧 다섯 살이 된다.
그녀가 일곱 살 일 때에는 그곳에 도달해 있을 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쪽으로 키를 맞추고,
바람을 잘 읽는 일.
늦지 않게 도착할 것 같은 기분 좋음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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