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강남을 나가려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10살 때부터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자랐습니다. 넉넉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살아왔습니다.
부모님이 미국 유학도 보내줄 수 있던 때도 있었지만 학원비 내기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남들보다 마음만큼은 여유로웠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었고
현재는 서울의 종합일간지에 재직 중입니다.
남자는 강남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10대 때는 8 학군의 치열한 교육환경에서 낙오됐고
20대 때는 사는 곳만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갖게 되는 선입견이 싫었습니다.
30대가 되고 직장인이 되자 살고 싶어도 못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반포는 차도 많고 복잡해서 10억을 줘도 안 살아"라고 호기롭게 말한 적도 있지만
사실은 못 사는 겁니다. 10억을 받아도 10억이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부모님의 자산은 '똘똘한 한 채'뿐이고 수입은 국민연금뿐입니다.
남자는 사대문 안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 대신 EBS 건축탐구 집을 보는 편이었고
오래된 한옥이나 구옥을 고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입니다.
그가 살았던 구축 아파트가 재건축되며 5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발생한 것을 보게 됐고
빚내서 아파트를 산 사람과 빌라 전세에 들어간 사람의 5년 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역시 사는 곳(live)이 아니라 사야 하는 곳(buy)은 어딘지 고민합니다.
강남 입성이 꿈인 여자가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서울 서울 명문 사립대에 입학했고
졸업과 동시에 언론사에 입사해 종합일간지에 다니고 있습니다.
20대 이후부터는 매일 4시간 가까이 지하철과 버스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빨간 버스타지 않고도 출근할 수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을 꿈꿨습니다.
용서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와 구룡터널을 지나면 나오는 곳. 강남입니다.
여자는 한 아파트에서만 살아왔습니다.
이곳에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이웃들도, 둘도 없는 친구도 만났습니다.
어렸을 때 분당으로 이사를 갈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동생이 전학을 가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 이사를 가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녀는 당시 부모님의 선택을 이해하지만 자신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여자는 '서울 불패'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건설부동산부에서 일하면서 갭투자는 물론 재개발 딱지를 살 생각도,
80년대 지어진 아파트에서 몸테크를 할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런 남자와 여자가 만났습니다.
서울 어딘가엔 그들이 자리 잡을 곳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