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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가모모씨 Jun 10. 2024

어묵볶음은 서운해

장성한 딸의 철없는 반찬투정

엄마와 나의 사랑은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곤 한다.

엄마가 해주고 싶은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때나

혹은 내가 반드시 해주었으면 하는데 엄마가 그럴 상황이 아닐 때.

그렇게 타이밍이 맞지 않아 감정끼리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하곤 해서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같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다.


최근 먹기 시작한 약의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기분이 들쭉날쭉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난주 내내 유독 부정적인 감정에 예민해졌다.

일주일 간 내 상태를 굳이 키워드로 표현하자면 #우울 #좌절 #분노 #짜증 일까.

뭘 먹으면 입안에서 밥알이 또르르 돌아다녔다. 결국 배고픔을 덜어낼 정도만 밥을 챙겨 먹었다.


어제 괜히 어묵 한 장에 서운해진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독 늦은 저녁, 가슴은 좀 불안하고 밥을 안 먹었으니 기운은 없고

그냥 엄마가 만들어준 어묵볶음 얹어 밥 한 스푼이 먹고 싶은 날.

엄마는 하필 그날이 너무 힘들었다.


장성한 딸이 밥 해달라기도 민망하고, 엄마도 그깟 어묵볶음이 하기 힘들다 하기가 민망해서.

둘이 한 시간을 버티다가 결국 당이 떨어져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 돼서야 내 손으로 어묵을 잘랐다.

평소에 좋아하던 칼질인데 그 순간만은 유난히 서러웠다.

칼질 한 번에 대학에 합격했을 때 엄마가 축하해 주지 않았던 일이나

동생이 잘못했을 때도 내 편을 들지 않았던 일 같은 게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 한 끼에 내 몸속에서 엄마의 애정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밥을 급히 먹고 방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그깟 작은 반찬에 짜증이 나는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방에서 조용히 별 것 없는 영상들이나 휘휘 넘겨봤다.

역시 예민하고 장성한 자식과 함께 사는 건 쉽지 않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슴이 불안하고 마음이 울적해 엄마 음식으로 마음을 채우려 했다.

평소였다면 하지 말라는 반찬도 휘뚜루 마뚜루 하는 엄마는 어제 유독 지쳤다.

그리고 난 어제 힘들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유독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자라지 않은 딸과 몸이 늙어 버린 엄마는 오랜만에 서운해졌다.


생각해 보면 DNA를 나누고 30년 넘게 함께 산 모녀도 이런데

모든 사랑은 언젠가는 타이밍이 안 맞기 마련이다.

결국 모든 관계는 서운함으로 마주 봐야 할 순간이 온다.


때때로 서운함은 외로움이 되고 분노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상대의 탓도, 내 탓도 아니고 주고받는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

그러니 서운함은 우리가 서로 애정을 주고받는 반증이다.

나와 엄마의 타이밍이 자주 맞지 않았던 건 ‘우리가 너무 자주 애정을 주고받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니 서운함은 어느새 없고 나이 안 맞는 철없는 투정에 민망함만 남는다.

동생이 오더니 어묵볶음이 너무 맛있게 됐다고 했다.

엄마는 같이 먹으라며 된장찌개를 끓여 놓았다.

다시 먹어보니 그놈의 어묵볶음, 맛있게 맵다.

그러니 타이밍이 안 맞으면 어떠랴. 사소한 어긋남은 다시 맞추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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