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보는클럽 250329
"오늘이 150번째네요, 현정씨."
오래된 동네 헬스장답게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관장님은 A4용지에 출력해 둔 PT 출결부를 내 쪽으로 돌려놓으며 말했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대답하며 나는 테이블 한편에 놓인 펜꽂이에서 다섯 개의 모나미 볼펜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유일하게 비어있던 50번째 서명란에 이름을 적어 넣고, 내 이름과 관장님의 싸인이 50번씩 나란히 적힌 세 장의 출결부를 내려다봤다. 그 사이 관장님은 빈 종이에 새 출결부를 출력했다. 서명란 50개가 깨끗이 비어있었다.
150번이라, 내가 여기에 쏟아부은 돈이 도대체 얼마야, 회당 5만 5천 원이라고 치면 오오 이십오, 머릿속으로 대강 계산을 해보려다 이내 포기했다. 55에 15를 곱해 0을 네 개 붙이면 될 일이지만 두 자릿수 곱하기 두 자릿수의 연산 정도는 계산기에 위임한 지 오래다. 구태여 핸드폰을 꺼내 머릿속에 맴도는 숫자들을 눌러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 숫자는 절로 내 월급을 떠올리게 할 테고, 그건 또 월세와 휴대폰 요금과 지난달에 다녀온 여행 경비와 오늘 아침 아메리카노 대신 마신 필터 커피값을 떠올리게 할 테니까. 이쯤에서 그냥 수입의 꽤 큰 부분을 건강에 투자하고 있다고 퉁치면 그만이었다.
세 장의 A4용지에 내 이름을 빼곡히 칠하는 동안, 다시 말해 계산조차 하고 싶지 않은 큰돈을 잃는 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PT를 150번 정도 받고 나면 나는 늘씬한 여성으로 새로 태어나거나, 아침마다 밀려오는 허리 통증에서 해방되거나, 이 둘이 모두 실현될 줄 알았다. 그러나 전자는 근처에도 가닿지 못했고, 후자 역시 빈도와 강도가 다소 감소했을 뿐 여전하다. 한 문단 위에 썼던 이야기들을 정정한다. 나는 이래서 55 곱하기 15를 하지 않았다. 내가 쓴 돈의 결괏값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던데, 그 반대는 왜 성립하지 않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한 게 아닌가 하고. 이 질문은 지금 나는 육체와 정신 중 어디가 건강하지 않은가를 고민하는 일에 가깝다. 둘 다라고는 결론짓고 싶지 않다.
스쿼트와 루마니안 데드리프트의 은혜로 기다시피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연다. 해동해 둔 굽네 수비드 닭가슴살을 꺼내고 잘게 잘라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PT를 받은 날만이라도 단백질을 꼭 챙겨 먹으라는 관장님의 150번째 당부가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딱 두 번 닭가슴살을 챙겨 먹는 것으로 그와의 신의를 겨우 유지하는 중이다.
냉장고에서 물러 터지기 직전의 방울토마토도 몇 알 꺼내 씻는다. 영원히 싱싱할 것만 같았던 방울토마토도 늙는구나 안타까워하며, 개중 가장 무른 한 알을 어금니로 뭉갠다. 띵- 명랑한 종소리가 닭가슴살이 따뜻하게 데워졌음을 알려준다. 나는 퍽퍽한 닭가슴살을 서걱서걱 씹으며 생각한다. 요딴 걸로는 건강한 육체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건강한 정신은 절대 얻을 수 없다고.
다음 주 월요일이 되면 새로 마련된 출결부에 첫 번째 서명을 하게 될 것이다. 새 종이에 50번의 서명이 더해지고 나면 건강한 육체와 그에 깃든 건강한 정신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죽기 전에 얻을 수 있기나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