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버지는 아픈 추억이다.
늘 그립고 원망스러운 그런 존재다. 그래서 남편의 기준이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의 얼굴은 본적도 없고 어머니마저 일찍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흔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정이 고팠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가난했지만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가 어릴 적 배운 술이 가정의 행복을 깨트렸다.
가끔 TV에 나오는 술주정뱅이가 우리 아버지였다. 가정폭력이나 도박은 없었지만 어쨌든 술을 참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술 버릇과 술을 끊어내 보려고 무던히 노력을 하셨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쏟은 정성을 자식들에게 했더라면 우리가 더 크게 자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한다.
나에게 아버지의 기억은 좋은 추억과 슬픔이 함께한다.
돈이 많지는 않지만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월급날이면 통닭을 사오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도 갔다.
야구장에도 데리고 다녔다. 혼이 날 때는 무서운 아버지였다.
밥상에서 예의를 중요시 여기고, 거짓말을 싫어하셨고 우리를 바르게 키우려고 하셨다.
그러나 늘 아버지는 술과 함께였다. 과하지 않아도 늘 약주를 드셨다.
늘 있는 모습이어서 나쁜지도 몰랐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원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고 오셨을 때 엄마는 참 많이도 우셨다. 그래도 어떻게든 아버지 건강을 회복시키고 살려보려고 애썼다.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우리 집 빚은 점점 늘어났다.
그 당시 아버지의 사촌 여동생의 권유로 작은 사업을 함께 했는데 IMF가 터졌다.
그 타격을 피할 길 없이 사업은 점점 악화되어 망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병세는 그 후 더 악화 되었다.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어머니가 일을 하시며 우리집 생계를 책임지고 꾸려 나가셨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가난한 집은 더욱 가난해졌지만 우리 남매는 해맑았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이 함께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어려움도 벗어나지 않을까? 어린 마음에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다녀오면 텅 빈 집안보다 아픈 아버지라도 집에서 나를 맞이해 주시는게 마냥 좋았다. 종종 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셨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나을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심하게 아프신 어느 날, 어머니와 크게 싸운 후 아버지의 병 간호를 혼자 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었다. 심각하게 부부 싸움이 났었다.
아버지가 아프신 것은 술 때문에 왜 또 술을 드시는 걸까? 그리고 힘드신 어머니를 왜 더 힘들게 하실까.
너무 원망 스러워 이러실꺼면 그냥 가시라고 했던 것 같다.
어렴풋이 나는 기억이라서 속으로 말한 것인지 아버지께 말한 것인지 모르나 나이가 40이 된 지금도 한이 된다.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꼭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을까?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나? 나 때문인가?
아버지는 얼마 뒤 세상을 떠나셨다. 기어이 가족들에게 더 큰 한을 남겨두고서 홀로 그렇게 가셨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너무 슬펐다. 그러다가 원망이 들기도 했다. 왜 그렇게 떠나셔야 했는지 말이다.
아버지가 떠난 후 우리 셋은 힘든 삶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밤낮없이 일을 하셨고 그렇게 우리를 키워내셨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더 불행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우리 가족을 뿔뿔이 흩어져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없는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에는 내가 대학을 가길 바라는 글도 있었고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몇년을 지갑속에 품고 다녔는데 잃어버렸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아직 남아있다.
3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달이다.
한창 새학기 시작으로 친구를 만들고 적응하는 기간이다.
나는 그때 아버지를 잃었다. 나의 첫 고등학교 새학기의 시작은 그러했다.
그래서 적응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친구들 덕분에 잘 지냈던 것 같다.
나는 그래서 3월의 봄이 싫다. 봄이 다가오는 봄 바람 냄새와 새학기의 들뜸이 나는 싫었다.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 3월이 나는 싫어서 봄을 싫어하게 되었다.
곧 3월 어느날 아버지 기일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