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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대장 Jun 03. 2024

다음의 나를 인정하고 애정하는 일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정지우



이십 대에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장래희망란에 늘 ‘소설가’를 써넣었다. 소설은 십 대에서 이십대로 흐르는 나를 꽤 안전하게 붙잡아준 벨트였다. 자연스럽게 글을 쓰면서 기존 작가들의 소설을 흉내 내어 썼다. 김연수 님이나 전경린 님, 신경숙 님이나 은희경 님의 소설을 필사의 형태로 줄줄 따라 쓰기도 했다. 소설을 쓰려면 문학 공모전에 응모를 해야 하고, 그렇게 상을 받게 되면 일련의 자격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문학 공모전은 대개 신춘문예와 문학지(월계간지)를 통해 투고 하는 형태였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고, 그렇게 해야 소설가가 된다고 말한 사람도 없는데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십 대 중반에 이르러 인터넷으로도 소설이나 글을 쓸 수 있었고, 대표적으로 '귀여니'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소설을 연재해 큰 성공을 이룬 작가들이  등장한다.




정통 문학상을 받아 등단 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그렇게 시작된 듯하다. 삼십 대에 결혼을 하고, 도서관에서 근무하게 되면서는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놓았다. 늘 갖고 다니던 수첩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고, 어떤 단상이나 생각을 끄적이는 일이 현격하게 줄었다. 다만, 상금을 받기 위한 글을 쉬지 않고 썼다. 독후감 공모, 수기 공모, 산문 및 편지글 등 작게는 5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50만 원까지 대부분의 공모전에 글을 투고 했고, 소소한 상금과 상장을 야금야금 받아 먹었다. ‘문학’이나 ‘소설’과는 멀어졌지만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에 자위하며 십 년여를 보낸 후,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서평이라는 글에 단순히 책의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책을 읽으며 일어나는 감정과, 함께 떠오르는 단상을 자연스럽게 2천 자 내외로 기록했다. 글이 쌓여 책스타그램이 되었고, 책으로 이어진 무수한 인연들과 소통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유려한, 누가 봐도 정말이지 잘 쓴 서평들이 즐비했고 거기에 비하면 나의 글을 비루하고 초라했다. 더 잘 쓰고 싶어서 시간을 들이기 시작했고, 단순해 보이지만 꽤 오랜 시간 내 안에 생각을 머금었다가 글로 써내곤 했다. 그럼에도 부족하고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나의 글을 통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당시 주로 쓴 서평은 육아서였다. 생애 처음 육아에 모든 것을 갈아 넣고 있던 시간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육아서를 읽는 날들이 많아졌고, 단순히 책을 통해 얻은 것만이 아닌 육아하는 시간을 통해 느끼고 깨우친 것들을 기록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나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었고, 이따금 디엠으로 도움이 되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도서관에 가면 내가 추천하는 책들을 빌려 오고, 그중 어떤 책에서 고민하던 것들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는 말들을 건네 주었다. 함께 육아하는 동지로서 공감되는 것들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지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서평을 쓰는 시간을 통해 오래전 글을 쓸 때 느꼈던 자존감이 시나브로 차올랐다.




문학상으로 등단하지 않아도 글 쓰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꾸준히 쓰고 있는 서평 덕분이다. 오래전 화려하고 멋진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부러 어려운 단어를 고르고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던,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까지 한 시간들에서 벗어났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함께 하는 모임원들에게서 곧잘 들었던 말은 ‘솔직함’이었다. ‘너의 글은 솔직해서 좋아.’ 얼마 전 서평에 댓글에 한 인친님이 ‘글 속에 솔직함이 보여서 좋아요' 라고 댓글을 남겨주셨다. 솔직하고도 진정성 있게 쓰인 글은 한두 명의 독자를 만들었고, 블로그를 통해 나의 글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한두 분의 이웃들 덕분에 지금까지 부끄럽지 않게 글을 썼다.




이제 더 이상 글 쓰는 일에 무게를 크게 떠올리지 않는다. 작년,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은 이후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작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후 이 책을 읽고 한 번 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임을 조금 더 깊숙히 밀어 넣기로 한다. 책을 읽기 전 유튜브를 통해 ‘정지우’ 작가님을 검색했더니 ‘정지우와 카푸치노 수도사’라는 방송을 운영하고 계셨다. 말투에서 사투리가 묻어나서인지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졌다. 두 개의 방송을 1.25배의 속도로 시청하고 간단하게 메모도 했다. 누군가가 글을 쓰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방송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독자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라는 부분이었다. 초보 중에 왕초보인 나는 막연히 ‘이 글을 보는 사람’ 정도로 늘 대상을 한정했는데 저자는 최측근을 시작으로 구체적으로 설정하라 조언해 주었다. 앞으로는 그 점에 주안을 두고 글을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또 ‘문단’의 중요성과 한 편의 글 양을 제대로 인지하라는 부분이 와닿았다. 아무 생각 없이 줄줄 써 내릴 게 아니라 설정된 분량 안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일목요연하게 쏟아내 보는 것. 서평 글에 최적화된 나는 2천 자가  글의 표준인데 익숙한 양이라 편안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글자 수를 늘 상기하며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읽으며 플래그를 여럿 붙였다. 사실 글을 쓸 때 형식이나 방법론적으로 접근하면 더 의미 있고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의견에 십분 공감한다. 얼마 전 황석영 작가님도 비슷한 맥락으로 말씀하셨다. 대학의 문예 창작과가 우리나라의 문학을 망치고 있다는 (“오늘날 한국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대학의 문예 창작과 때문이다. 문창과는 문장 쓰는 기술만 가르치는 곳”) 의미와 상통한다. 나만의 고유한 시선을 갖고 그 시선 안에 맥락을 넣어 대상에게 친절한 마음으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글, 우리는 그런 글을 써야 한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 주변인들의 지지와 지금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시는 한두 분의 블로그 이웃들, 별스럽지 않은 글에 ‘잘 보았다’ 댓글을 남겨주시는 인친 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로의 글을 지겹도록 봐주고 있는 더쓰다 멤버들의 ‘글 잘 보았습니다’ 인사를 쉬이 넘기지 않는다.





처음 소설을 썼을 때, 어머니에게 소설을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런 소설을 쓸 생각을 다 했냐면서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거의 매일같이 글을 썼다. 나중에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는 한두 명일지라도 내가 쓴 글을 유심히, 주의 깊게, 오랫동안 읽어주는 사람들이 내 청춘의 가느다란 자존감의 끈이 되어주었다. 253





앞으로 나는 글쓰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등단이나 문학상만이 글을 쓸 수 있는 당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님을. 매일매일 나를 비롯한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내 안의 것들을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한다. 설령 그것이 책이라는 형태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나는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100편의 글을 쓰면 적어도 1~2편 정도는 글을 쓴 나 자신에게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커다란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 내일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다음을 떠올리고 그다음 속의 나를 인정하고 애정하는 일. 이 많은 글을 끝까지 읽어준 그대에게 더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글을 쓰며 충만했다. 나의 마음이 충만했던 건 아마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 준 그대 덕분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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