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교환독서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먼저, 이렇게 의미 있는 책(저에게 있어서는)을 함께 읽게 되어 무척이나 기쁩니다. 저에겐 애증의 소설들이 몇 편 있습니다. 분명히 읽어야 하는데(왠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읽을 기회가 없거나, 읽으려고 할 때마다 더 급한 책들에 늘 밀리게 되는. 이 책 또한 그런 결로 저의 곁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던 책입니다. 아주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설이기도 하고, 또 분명하게 기억되고 또 의미를 가져야 하는 주제를 담고 있어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운 이의 죽음. 사실 저는 아직은 피부로 와닿는 원초적 죽음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퍼뜩 떠오르는 죽음은 가장 친한 친구인 초등 동창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 그 죽음은 느닺없고 또 황망했기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하나 굳이 꼽으라면 큰외삼촌의 죽음이지요. 이 또한 저도 몇 번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큰외삼촌의 죽음 또한 갑작스럽긴 매 한 가지이지요. 떠올려 보니 이렇게 갑작스러운 죽음 (사실, 모든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지요)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기억으로 남겨지는 것 같네요.
정말 가까웠던 사람, 너무나도 친밀했던 사람, 어쩌면 당연히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걸까. 이 한 줄을 쓰는데도 팔 언저리에 소름이 도도도 일어납니다. 그저 그 단어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이미 고통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고통을 어찌 감당하나, 어떻게 살아가나, 또 어떻게 지워지나. 따위를 물고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종내에는 삶 자체에 초연해지거나 반대로 억척스러워지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밤비님의 할아버지의 죽음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나요? 안다는 것, 타인을 안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요? 얼마 전 백수린 작가님의 단편집 <봄밤의 모든 것>을 읽었는데요. 책 속에 그런 문구가 나옵니다. ‘타인이 느꼈던 방식 그대로 세상을 느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얼마나 헛된가. 우리는 오직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대로만 느낄 뿐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고, 그렇다.’ 제가 밤비님이 말하는 그 죽음을 들었다고 한들, 결코 알 수 없지요. 밤비님이 느꼈던 그 실제적 고통과 비극은 결코 가늠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오스카의 마음을 끝내 알 수 없고 또 오스카와 같이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 알지 못함과 알 수 없음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랄까요. 그럼에도 저는 밤비님 할아버지의 죽음과 오스카의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들어주고 싶습니다. 기억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존재함으로 드러나는 당연한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더 자주 듣고 싶습니다.
며칠 전 김경일 교수님의 영상을 잠시 보게 되었는데요. 영상의 내용은 ‘내가 한 개소리’였어요. 응? 개소리? 뭔가 싶어 귀 기울였더니 살아오면서 멋모르고 한 오만하거나 무례하거나, 정말이지 몰라서 했던 말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나는 어떤 개소리를 하고 살았나.(여기서 ‘개’는 동물인 ‘개’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통상적으로 쓰이는 헛소리의 극대화라고 생각해 주시길 바라요)
매주 한 두 편의 글을 쓰다 보면 오래전 일이든, 최근 일이든, 또 기억이 명확한 일이든 가물거리는 일이든 그저 주제를 들은 후 떠오르는 단상들을 주르르 쏟아내게 되지요. 그렇게 쏟아내는 이야기가 어떤 때는 조금 무거울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나의 삶에 어두웠던 과거나, 하는 줄도 모르고 저질렀던 과오와 부끄러움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쓰고 나면 꼭 한 두 명은 ‘나도 그런 적 있다, ’ 그게 뭔지 안다’ 같은 말로 공감 또는 위로를 해주십니다. 그럴 때 저는 제가 했던 개소리들이 떠오릅니다. ‘세상에나! 나 도대체 뭘 안다고 개소리한 거야?’ 저의 글에 공감하시는 분들의 말속에서 저는 작지만 단단한 적개를 느낍니다. 이 세상에 같은 경험은 단 하나도 없고, 같은 시간은 단 1초도 없으니까요. 그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후로는 쉽사리 누군가의 고통과 비극에 공감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태원 참사 때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었어요. ‘참사 희생자 159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이 159번 일어난 것’이라고. 괜한 말장난 같지만 저는 그 말에 굉장히 큰 전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늘 희생자 수, 생존자 수 그 숫자에만 매몰되어 하나의 사건으로만 뭉개버렸는데 하나의 사건이 아닌 수십, 수백 개의 삶과 이야기, 그리고 사랑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거더라고요.
오스카의 여정에 기꺼이 동행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밤비님이 쥔 열쇠가 무엇을 열어줄지 저 또한 응원의 마음으로 지켜보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우리 또 이야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