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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수 있을까

두 번째 교환도서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by 옥대장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편지가 조금, 늦었습니다. 책은 절반 가까이 읽었고, 또 쓰려고 마음을 먹고 빈 화면 앞에 앉기를 두어 번, 끝내 옮길 단어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다른 일은 제쳐두고 이 편지를 가장 먼저 써내기로 합니다. 지난밤 잠들기 전 제 감정을 어딘가에 남겨놓고 싶습니다.


지난주 글쓰기 모임에서 ‘향수’라는 주제로 글을 썼어요. 알고 계시지요? 소금알 같은 눈망울, 여름 향기를 머금은 카디건, 푸른 달빛이 깃든 손톱, 벗어둔 양말에서도 라면박스향기를 내는 사랑스러운 아이에 관한 글이었어요. 글을 쓸 당시엔 아이의 향기에 취해 마지막 문구를 쓸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제 안의 슬픔은 시치미를 떼고 공 굴려진 콩벌레처럼 단단하게 말아 넣었습니다. 피드백 모임에서 이 글을 읽어주면 아이가 좋아할 것 같다는 의견에 그럴 생각은 못했는데(아이를 이야기하는 글은 언제고 아이가 보게 될 것만 상정했더라고요) 지난밤 불현듯 그 말이 떠올라 읽어줬습니다.


“지아야, 지난주 글쓰기 주제가 ‘향수’였잖아. 너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읽어줄까?” 언제나 저의 글과 저의 음성을 좋아하는 아이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흔쾌히 침대 위로 폴짝 올라 타 제 옆에 눕더라고요. 그렇게 향긋한 밀크티 같이 따뜻한 아이를 옆에 두고 글을 읽었습니다. 사실 그 글을 읽을 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곧이어 몰아칠 거센 풍랑을.


아이는 소감이나 감정을 말하는 대신 다른 글도 모두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쓴 모든 글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또 블로그 글쓰기 카테고리로 가서 찬찬히 살펴보며 읽어줄 만한 글을 골라 두어 편 읽어주었습니다. 아이는 졸음이 쏟아지는지 옆자리로 가 베개를 고쳐 배고는 눕더라고요. ‘한번 더’라는 주제로 썼던 글이 있었어요. 언제고 다시 태어나면 어떤 시절로 다시 돌아가 놓치고, 잃어버리고, 묻어버린 인연들을 다시 만나 함께 살아보고 싶다고. 그 글에서 그만 눈물버튼이 눌러졌지 뭡니까. ‘한번 더 생을 살아갈 기회가 온다면 나는 바로 지금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뭐 그럭저럭 주체할 수는 있었지요. 아이가 건넨 휴지에 눈물을 콕콕 찍어 내며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슬렀어요. 하지만 이내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 한토막입니다. 지금, 다시 재생해 봅니다. 너를 위해 해줄 것이 하나 없어서 보낼 수밖에 없었고, 네가 없이 사는 법을 알지 못해서 순간순간을 울었다. 그 언젠가, 우리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 좋던 예전처럼 그때처럼 되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우리가 만나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 서로를 품에 안고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볼까.


“엄마 또 과잉이야? 추억의 노래야?” 으레 추억 노래 들으면서 회상에 젖은 거겠지 간편하게 수렴한 듯 구태어 더 묻지 않더라고요. 그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이의 그 마음이 더 슬퍼서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우리가 헤어진다는 걸, 그 헤어짐은 지금의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이별이 아니라는 걸. 언젠가 한번 더, 부디 한번 더 아니 두 번 만 더, 아니... 세 번만 더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영영 네 아비가 되지 않겠지만 너는 언제나 내 자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187p


무수한 죽음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이 세상에서 바라건대, 이토록 이기적일 수 있나 싶을 만큼 저 아이와 나 사이 만큼은,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조금만 더 살게 해달라고 바보 같은 기도를 하며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오스카와 아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지아와 제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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