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교환독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어느새 저의 5번째 편지네요.
라떼 이즈 홀스, 저는 육아 일기를 수기로 썼어요. 유행은 아니었고요. 오히려 제가 좀 뒤처지는 타입의 사람에 가까웠지요. 100일 동안 빠짐없이 기록만 하면 책으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굳이 종이 노트가 아니어도 간편하게 그날그날을 기록할 수 있는 웹 서비스가 다양했습니다. 그나마 짤막하게 끼적이던 카카오 스토리도 제 모든 이야기를 쏟기에는 좀, 허술했지요. 어떤 다짐을 했다거나, 굳이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의지였다기 보다 지금처럼,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금 펼쳐봐도 그런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매일 쓰지는 못했어요. 어떤 날은 서너 페이지에 걸쳐 육아의 고충을 마치 욕설을 뱉어내듯 갈겨쓰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아이의 발육 상태와 행동 패턴들을 나름의 육아 상식을 동원해 분석하고 또 공부하기도 했고요. 어떤 날은 나라는 존재를 들여다보고 일어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더라고요. 좀 더 인내하지 못한, 너그럽지 못한, 인자하지 못한, 품어주지 못한 초보 엄마의 자괴감이 무거운 솜에 스민 물처럼 흥건하게 젖어 있습니다.
김하나 작가의 엄마가 썼던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를 기억하시나요? 이렇다 할 사건도, 개연도, 또 인물도 변변찮은 단순한 기록이 김하나 작가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크나큰 영감을 안겨 주었지요. 아, 저는 그랬어요. 별 감흥이 없는 분들도 계셨겠지만 대부분 아이를 출산하고 또 출산하지는 않았더라도 아이를 키워낸 사람이라면 응당 공감과 영감을 크게 느꼈을 거라 확신해요. 그때 그 책을 읽으며 저의 육아노트가 언젠가 이런 책으로 꾸려진다면, 그걸 읽어낸 지아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아빠는 윈스턴 처칠이 어떤 사람이었건 간에 처칠 같은 위인은 아니었다. 그저 가업인 보석상을 경영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냥 평범한 아빠였다. 그러나 아빠가 위인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빠가 영화 스타처럼 유명했더라면 좋을 텐데. 아빠는 그럴 자격이 있는데. 블랙 씨가 아빠에 대해서도 썼더라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온 세상에 아빠의 이야기를 전하고, 아파트를 온통 아빠의 기념품들로 채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빠를 한 단어로 축약한다면, 그러면 무슨 단어가 좋을까? 220p
지아에게 제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에 남을지가 못내 궁금해지더라고요. 아니, 더 적확히 표현하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엄마로서의 제가 어떤 기억인지가 좀 더 중요합니다. 저는 저의 삶을 꿈꾼 대로 잘 살아갈 테니 저의 삶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아닙니다. 제 삶에 충실하고 또 애틋했던 만큼 엄마로서의 저 또한 같은 결이었을지가 궁금해지는 거지요. 그것을 유념해 꾸며낼 수 없는 영역이라 더욱더 궁금한.
언젠가 내가 사라지고 나면 아이에게 저는 어떤 단어로 남을까요?
아이가 나를 더듬어 가며 읽고, 듣고, 볼 것들이 궁금해지기도, 또 걱정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때 퍼뜩 떠오른 게 바로 그 육아노트 다섯 권이었어요. 그 노트 속에서 저는 조금 우울한 사람이거든요. 아이가 태어나고 5년 동안, 우울하지 않은 엄마가 있을까마는, 그 글들만 남겨놓기에는 지금의 저는 정말 따뜻한 날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야기를 더 많이 써두고 싶다는 생각이 최근 간절해졌습니다.
언제고 조승리 작가님 북토크에서 들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글쓰기였다’ 작가님의 글쓰기가 시작된 배경에는 단 한 사람의 독자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마법 지팡이가 제 이마를 톡, 두드린 느낌이었어요. 나는 그동안 무엇을 시름했나. 결국 내가 쓸 이야기는 이 아이, 바로 나의 딸 지아를 향한 글이었구나. 그제야 전에 없는 용기가 나기 시작했어요. 많은 사람이 읽고, 감동을 받고, 또 삶에 필요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게 아니었던 거지요.
만날 거라는 약속도 맥락도 없었지만 아이와의 만남이 저의 운명이었다면, 제 글쓰기의 이유도 바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겁니다.
윈스턴 처칠 같은 위인은 아니어도 지아에게 저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그 하나의 단어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위한 여정에서 이렇게 밤비님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고요. 부탁이 있어요! 너무 무거운 부탁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언제고 제가 사라지고 나면 울고 있는 아이의 곁에서, 저를 대신해 그 작은 어깨를 꼬옥 안아주세요. 그리고 말해주세요. 오늘의 저를, 지금 이 순간의 저를 말이에요.
온 생과 그 생을 살아가는 자신과 지아, 너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