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리를 내려다본다
방학 시작하던 날, 아이가 학기 중 썼던 물건들을 잔뜩 가져왔더랬죠. 수고했을 아이의 흔적들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서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게 뭐냐고 물으니 책을 많이 읽은 아이한테 주는 상이라고 하더라고요. 내심 '책 많이 읽는 걸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데, 너는 왜 못 받았지? 의아스러웠어요. 기준이나 근거가 뭐냐 물으니 '배움 노트'에 그걸 기록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배움 노트를 펼쳤습니다. 그러데 한 학기 동안 쓴 노트에 독서기록이라곤 열 권도 채 되지 않는 겁니다. 왜 읽은 책을 기록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아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긴 대화 끝에 얻은 답변은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 그냥 건너뛰었다고 합니다.
그때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이는 학교 숙제 대부분을 '안 해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 않는다 해서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저 또한 학기 중에는 아이의 숙제를 따로 챙겨 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네가 잘못했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의 기준에서는 아이의 학교 생활은 대부분 '스스로'하는 것에 교육관을 갖고 있는 터라 불필요한 '터치'를 삼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지요. 물론 믿는 구석도 있었습니다. 굳이 층위를 나눈다면 중요한 과업들은 꽤 성실히 수행했으니까요. (시험 준비, 일기 쓰기나 자료 찾아보기 등 굵직한 미션들은 알아서 잘 챙겨 갔습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학교 생활에 플러스가 되지 않겠냐는 저의 말에 아이는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배움 노트 곳곳에 선생님이 붉은 펜으로 ‘책도 좀 읽자!’라고 여러 차례 코멘트를 써놓으셨더라고요. 정말로 안 읽었으면 저도 할 말이 없는 거지요. 이제부터라도 좀 읽거라, 하면 그만이고요. 그런데 지아는 평소에서 책을, 제 기준에서는 꽤 많이 보는 아이라 그것을 적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궁금했던 겁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요. 저는 책 권수를 채우면 주는 ‘독서상’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감정이 고조되니 하지 않았어도 될 말이 마구 튀어나왔어요.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건 너의 학교 생활에 필요하니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학생인데 왜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왜 3학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엄마가 일기를 썼냐고 물어봐야 하느냐, 2학년 때 공부가 하기 싫다고 해서, 그럼 책이라도 많이 읽으라고, 책을 읽으면 다른 공부는 안 해도 된다 하고 선 약속해 놓고 공부도 안 하면서 책생활을 게을리하면, 너는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문제집 안 푸는 대신 필사 하기로 해놓고 왜 스스로 하지 않느냐, 언제까지 엄마가 잔소리처럼 이야기해 줘야 하느냐, 엄마도 그런 말 하는 것 무척 스트레스다, 그 나이 정도 되면 다는 아니어도 학교 생활 정도는 알아서 책임지고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옮겨 적는데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 겨우 9살(만 나이로) 아이에게 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아이는 내내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았다가 갑자기 눈을 끔뻑거립니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 아이의 표정이지요. 울음을 참지 말라고 늘 이야기하는데도 아이는 끝내 터지지 않게 하려 안간힘을 씁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일단 실컷 울라고 하고는 아이를 안아 다독였습니다. 아이는 한참 울더니 이야기합니다. “나도 잘 모르겠어서 엄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정말.”
그 말을 듣는데 뭔가 하늘에서 커다란 망치가 제 정수리 정중앙을 있는 힘껏 내려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는 귀찮아서도, 어려워서도, 그냥 하기 싫어서도 가 아닌, 정말이지 ‘몰라서’ 하지 않았던 것이었어요. (계속 얘기하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실상 여기서의 모름은 사안의 중요성을 가늠하지 못했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하라고는 하는데 왜 해야 되는지 아리송하고, 또 안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렇다고 잘했어도 같은 결과라면 구태어? 공부 안 해도 되니 책을 보라고 해서 책을 보는데 그게 하루에 어느 정도의 양인지 알 길이 없고, 독서상장을 안 받아도 전연 관계없으니 그걸 적든 안 적든 본인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거예요. 수요일과 토요일 학교에서 필요한 일기를 쓰는 날이긴 한데 주말 같은 경우는 종종 잊거나 또 늦어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썼냐고 물어오면 그저 ‘안 했다’만 남는 것 같아 거짓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에서 엄마의 세심한 도움이 필요한데 엄마는 매번 ‘스스로’를 강조하며 내팽개치고는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하기 싫음보다 그저 하지 않음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생각되었어요. 대화 중 “너는 앞으로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마. 안 해도 돼. 공부도, 책도, 글쓰기도 그게 뭐가 됐든 하지 마. 그냥 놀아. 너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면서 놀아.”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해보렴, 체념한 듯 내뱉은 말에 아이가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엄마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아이가 원하는 건 했냐 안 했냐 확인하는 엄마가 아니라 같이 하는, 도와주는, 세심하게 바라봐주는 엄마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잘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관계없이 자신이 하는 일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엄마. 그날 아이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 후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을 정리할 것. 숙제든, 시험이든 아이가 해야 할 것들을 같이 챙겨봐 주고 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 학습적인 공부를 차치하고라도 세상을 공부하는 일에는 더욱더 신경 써 함께 해줄 것. 어쩌면 아이도 다른 아이들이 다 받는 ‘상장’을 받고 싶어 할지 모른다는 것.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아이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 반짝이는 아이의 빛을 혹여 나의 그림자가 가리고 있진 않은지 계속해서자리를 점검할 것.
그렇게 방학을 시작하면서 되도록 일을 줄이기로 아이와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챌린지방이 여러 개라 노트북과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독서모임이나 서평단 활동은 모두 줄여서 마음 졸이며 동동 거리는 일은 없었지만, 전에 없이 독서하는 게 좋아 읽는 시간이 길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와 함께 읽고 쓰는 시간이 길어 그나마 상쇄됐지만 이따금 늦은 저녁, “지아야, 엄마 이것만 처리해놓고 나올게.” 아쉬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젯밤 아이가 되묻습니다. “엄마, 정말 일 줄인 거 맞지?”
일이 줄었는데도 아이가 실감하지 못한다는 건 제가 조절을 잘못한 것이겠지요. 시간 분배에 더 힘써봐야겠습니다. 오늘 아침 해야 할 일을 목록을 쭉 쓰다 말고, 스스로에게도 묻게 됩니다. ‘나 진짜 일 줄인 거 맞아?’ 돈도 안 되는 일, 뭣하러 이렇게까지 하나 자조하며 지낸 날들도 분명 있었지만 돈이 안되기에 더욱이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저의 용기와 선심도 제가 성장하는 데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곁에서 아이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외롭고 적적했을 테고요. 드라마 속 대사처럼, 엄마의 푸름을 먹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었다는 아이. 반대로 저는 작고 작은 이 아이의 배려와 눈물을 먹고 이만큼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