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마음, 아이의 마음
“엄마, 나 구름사다리 위에서 설 수 있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몸을 잘 썼다. 스스로가 몸의 균형을 잘 맞추고, 또 몸놀림이 자연스러웠던 아이다. 남들에게는 단순히 ‘위험해’ 보이는 행동에도 허용 범위가 넓었던 나에게 그런 아이의 몸짓은 도전이고 용기였다. 높은 담벼락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굵다란 나무통을 맨손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한다. 그네를 서서 타거나 미끄럼틀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갈 때도 때마다 제지하지 않았다. 저러다 다칠까 조마조마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일일이 입을 대기 귀찮았던 마음도, 대수롭지 않았던 마음도 아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을 곧잘 써본다. 되는지 안되는지 직접 해봐야 한다. 그렇게 다듬으며 자신의 몸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데에 나름대로의 재능이 있는 아이다. 물론, 모든 사고는 재능이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일어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아이가 떨어질 것만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나의 입장에서는 몽매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여하튼, 밥을 먹다 말고 냅다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다소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응? 그 높은 델 올라간다고? 심지어 선다는 말이야?”
나의 놀람은 정말 놀라서라기 보다 ‘너 정말 대단한데?’와 ‘그래도 괜찮냐?’는 뉘앙스가 섞인 의도된 놀람이었다. 마음속으로는 ‘거긴 좀 위험한데?’에 더 가까웠다. 아이는 나의 반응이 신이 난 듯 어떻게 올라가는지, 거기 섰을 때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신이 나서 떠들었다. 한참을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근데 지아, 위험해. 구름사다리가 위험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기구를 사용하는 방식이 위험하다는 말이야. 올라서 보는 일이야 한두 번 괜찮지만 거기에서 걷거나 뛰어내리는 일은 삼가야 돼!”
방금 전까지는 ‘뛰어내린다’고 해 놓고는 금세 말을 바꾼다. ‘오늘은’ 뛰어내리지 않았다고. (이래서 진짜 엄마의 ‘반응’이 중요한 것 같다) 순간 아이에게 장난스레 눈을 흘기며 목소리를 바꾼다.
“너, 엄마가 내일 찾아가서 그 위에 서는지 안 서는지 다 본다! 딱 서 있기만 해 봐!!!”
“그래 한번 와봐,” 아이도 같이 눈을 흘긴다.
다음 날, 하교 때 학교 앞에서 마주한 한 아이가 물라면(분식점 최애 간식)을 먹다 말고 다급하게 묻는다.
“엄마, 아까 나 봤어?”
순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는 “응? 널?” 하고 되물었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멈춰 서서 이야기한다.
“응, 나 아까 구름사다리 위에 올라갔는데 엄마 못 봤어?”
아뿔싸! 아이가 어제 저녁 대화 중 내가 한 말을 찰떡같이 믿고 있었구나! 순간, 단순히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한 마음보다 ‘오호라, 이걸로 아이의 위험행동을 저지시켜 봐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엄마가 오늘은 모임이 있어서 못 갔네? 근데 또 언제 갈지 몰라, 엄마가 갔는데 너 구름사다리 위에 있으면 혼날 줄 알아!”
불시에 갈지도 모르니 아예 올라서지 말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아이는 피식 웃고는 앞서 걸어간다.
다음 날이 되었다. 아이는 수학 공부를 하다 말고 또 나에게 묻는다.
“엄마, 혹시 아까 그 사람 엄마야?”
그렇게 아이는 매일 같이 구름사다리를 배회하며 엄마일지도 모를 사람을 두리번거리면 찾았다. 며칠째 그런 말을 내뱉는 아이, 아이의 본심은 모른 체 그저 구름사다리 위를 위험하게 오다닐 아이를 걱정하고 또 올라가지 말라는 말로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날 밤, 남편과 대화 중 내일 아이 학교 모임이 있어 다녀와야 된다는 말을 했다. 옆에 앉아 있던 아이가 “그럼 내일은 나 구름사다리 위에 올라가는 걸 보러 올 거야” 묻는다. 이 질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니 여보, 내 말 좀 들어봐. 얘가 글쎄 구름사다리 위에서 걷는다잖아.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네! 그래서 내가 불시에 찾아가서 현장을 딱 잡을라고! “
”아이고 지아 엄마야, 지아가 당신을 기다리는 거구먼. 잘하는 거 보여주고 싶어서 여보 오는 거를 지금 기다리는 거잖아. “
순간 아이는 내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들켜서 부끄러운 마음과 이제야 자신의 마음이 전해졌다는 듯.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스릴을 즐기며 구름사다리 위를 다닐 아이가 나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를 검열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이는 오히려 그런 모습, 다른 아이들은 하지 못하는 걸 자신은 이만큼 잘한다고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걸 알게 되자 나는 또 주책맞게 눈물이 나왔다. 아이를 늘 모르겠다고는 이야기하지만 이렇게까지 내가 모르나 하는 마음과, 그 순간순간들 속에서 엄마이면 좋겠을 사람을 내내 기다렸던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눈물이 발칵 솟았다.
잠들기 전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내일은 11시 45분에 운동장으로 나가볼게. 총회가 끝이 안 나도 엄마가 꼭 나가서 볼게. 우리 딸 멀리서 엄마 보면 살짝 손 흔들어 줘.”
나는 오늘 구름사다리 위의 아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위태롭게 서 있는 아이를 향해 달려 나가지도, 또 저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볼 것이다. 언제나 늘, 이만큼의 거리에서 섣불리 나서지 않고 응원하고 지지하며 지켜볼 것이라는 걸 아이에게 직접 보여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