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빛깔
달리는 아이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저렇게 붉은 낯을 언제고 마주한 적이 있다. 태어나 얼마 안 되어 치솟는 열을 감당해 내지 못한 아이가 경련을 했다. 경련 중 호흡이 잠시 멈췄는데 그 수 초 사이에 아이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시퍼런 얼굴에서는 더 이상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겁을 먹었다. 아니, 죽음을 먹었다.
그렇게 맛본 죽음은 나의 생을 통틀어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차갑고 독한 맛이었다. 응급처치 후 눈을 뜬 아이의 얼굴이 꼭 달리기를 하고 난 후의 저 얼굴처럼 붉디붉었다. 홍시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제는 괜찮아졌음을, 자신은 온전히 살아있음을 알리는 생명의 빛깔이었다. 이후에도 간간히 열경기는 이어졌고, 그때마다 경직 직후에는 발그레진 얼굴로 생명이 꺼지지 않았음을 진하게 알렸다. 벌겋게 달궈진 아이를 마주하고서야 나의 심장에도 붉은 피를 흘려 넣을 수 있었다.
최근 아이와 달리기를 시작했다. 뭐가 그리 좋아 매일같이 달리냐 묻는 아이에게 달려보지 않으면 모른다 대답했더니 호기롭게 따라나선다. 누구나 그러하듯 1km를 채 돌기 전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겠다며 드러누워 버린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처음 달리기는 3분도 뛰지 못하고 포기했더랬다. “엄마도 처음엔 그랬어. 1분도 못 뛸 것 같았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언젠가 너도 엄마처럼 쉬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을 거야.”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는 발그레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완급 조절이 어려운 아이는 무작정 냅다 달리면 되는 줄 안 모양이다. 빨리 뛸수록 몸은 빠르게 지친다. 마라톤의 미학은 빠른 시간 달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달려야 하기에 되도록 체력을 안배해 천천히 달려야 한다. 2km 목표거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채운 아이는 레이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트랙 위로 그래도 고꾸라 진다. 아이의 두 볼이 벌겋게 물들어 있다. 벌건 얼굴이 가라앉으면 아이는 괜찮아진다. 오랜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은 숨이 턱까지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지만 잠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금세 이전의 얼굴빛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것은 하나의 시간을 뛰어넘은 자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색이고, 되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기다릴 수 있는 여유다. 벌게진 아이의 얼굴은 온전히 살아 있음을 알리는 생명의 빛깔이고 스스로 살아내기 위한 애씀이다.
아이와 나는 다시 또 같은 레이스 위에 나란히 설 것이다. 1km든, 2km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벅찬 거리를 달리고 난 후 아이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붉디붉을 것이다. 그 얼굴을 도장밥으로 생명의 하루를, 살아 있음을 축복을 꾹 찍어 기념하기로 한다. 달리는 아이의 얼굴은 나의 온몸을 뜨겁게 달궈준다. 살아 내기 위해 온 힘을 다 쏟는 우리 삶의 레이스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