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돌문화
얼마 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가 오름 기슭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지막한 산담 너머 비석이 보이고 그 앞에 동자석 두 기가 마주하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으로 동자석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누렇게 변한 띠 속에 놓인 석상은 내가 상상한 그대로였다.
가깝지고 멀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껴안고 뺨을 비비듯 바람을 맞으며, 동그란 얼굴에 가지런히 손을 모은 단순하고 투박한 모습이었다.
제주어로 무덤을 ‘산’이라고 하는데, ‘산담’은 말 그대로 무덤 둘레에 쌓은 돌담을 말한다.
과거 제주 사람들은 무덤 주위에 빙 둘러 돌담을 쌓아 경계를 짓고 그 앞에 동자석을 세웠다. 동자석은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이고, 조상이 내리는 복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이기도 하다. 또, 무덤 곁에서 산 자를 대신해 죽은 자를 보살피고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와 함께 했던 영혼의 벗이기도 하다.
동자석을 자세히 보면 대개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손에 든 물건(‘지물’이라고 한다)은 사람을 대신해 죽은 자를 모실 수 있도록 쥐어진 것이다. 지물은 숟가락, 꽃, 붓 등 다양한데, 예를 들어 숟가락은 저승에서 굶주리지 않기를 소망하고 후손들도 좋은 세상을 누리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산담을 보고 망자의 권세를 가늠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볕이 잘 드는 오름 기슭에 놓인 무덤의 돌담 두께가 곧 집안의 재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제주 사람들은 생활의 터전과 가까운 오름이나 밭, 오고 가는 길목에 작은 아이의 형상을 돌로 만들어 산담 안에 놓아두고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제주의 동자석은 돌문화와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지만, 아쉽게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 ‘내 곁의 위로, 제주 동자석’은 처음으로 동자석의 문화재적 가치를 알려주었다. 송당리 동화마을에 가면 신들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 있는데 애써 모은 동자석 수백 점을 볼 수 있다.
* 제주 동자석(濟州 童子石) : 제주의 밭이나 오름에 마련된 무덤 앞에는 예로부터 어린아이 모습을 한 작은 동자석을 세웠다. 무덤을 지키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며, 대부분 현무암이나 안산암과 같은 화산암으로 만들었다. 둥근 얼굴에 단순하게 표현한 이목구비는 정감이 넘치며, 머리는 민머리 또는 댕기 머리를 하고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홀, 숟가락, 부채, 술잔, 술병, 꽃, 새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받들고 있다. 이는 죽은 사람이 평소 좋아했거나 영혼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국립제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