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시작(1)

보목마을

by 박현

나는 여행이 아닌 거주를 위해 제주에 왔다.

오래전부터 제주살이를 꿈꾸어온 덕분일까? 이곳에서는 살아간다는 말이 견뎌내기보다는 푸근하게 받기만 할 것 같았다. 구두미포구에서 서귀포항을 바라다본다. 새벽이나 밤이나 흔들리며 빛나는 불빛들은 내가 이제 제주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그널 같다.


서귀포 보목마을에서 제주살이를 시작하다.
보목에 오면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구두미, 그곳에서 섶섬을 마주하다.


도시의 늦가을 정취를 뒤로 하고 제주로 내려왔을 때 마을은 감귤 수확철을 맞아 부산했다.

아침과 저녁 귤빛으로 빛나는 제주의 풍광은 아름다웠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이지 운 좋게도 마을 안 주택의 바깥채를 임대로 구했다. 방이 하나 있는 열 두 평의 좁은 공간이지만 살림살이가 꼭 필요한 만큼만 갖추어져 있어 우리 부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더군다나 오래된 측백나무와 동백나무가 햇빛 가득 마당을 채우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구두미포구를 찾아갔다. 비가 조금씩 내려 바다는 푸른빛 보다 잿빛이 짙었다. 그런데 낯선 느낌으로 이런저런 생각의 꽃이 피어나도 마음이 들뜨지 않았다. 구두미 표지석을 따라 섶섬 앞으로 길게 뻗은 방파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낮은 방파제 끝에서 섶섬을 마주했다.


야자수 길에서 하얀 별이 반짝거리는 보목자리별을 찾아가다.


보목마을은 제주 남쪽에 위치해서 온화하고 바람도 적다. 이런 기후적 특성은 겨울에 진가를 발한다. 보리수나무가 우거진 바닷가 마을이라고 해서 볼레낭개라 불리던 곳, 섶섬을 가까이 마주하고 배개와 구두미개라고 불리던 포구가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섶섬과 쏙 닮은 제지기오름이 봉긋이 솟아있다.


이곳은 서귀포시 동 지역이지만 시내와는 적당히 떨어져 있어 시골 마을의 정취가 살아 있다.

서귀포 시내에서 칠십리로를 따라가다 보면 붉은 열매 가득한 먼나무 길을 지나 키 높은 야자수가 반긴다. 야자수 길은 이국적 감성을 자아낸 덕에 ‘보목포니아’라는 별칭도 얻었다. 수십 년 전에 보목마을회에서 값비싼 워싱톤 야자 수십 그루를 가로수로 심었다고 하니 향토애와 풍족한 인심이 느껴진다.


봄이면 두 개의 마을 축제가 열린다.

자리돔 축제가 시작되면 물회를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보목포구 안쪽에서는 배에서 내린 자리돔을 팔고 있고 한편에서 생선 손질하는 손길들로 바쁘다. 귤꽃 축제는 자리돔이 물살에 반짝이는 것을 하얀 별에 비유하고 다시 하얀 귤꽃으로 상징해서 보목자리별 귤꽃 축제로 불린다. 문필로 일대 귤밭길을 지나 귤꽃 향기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소천지를 지나고 구두미포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