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시작(2)

구두미포구

by 박현

구두미에 가면 작은 포구를 만난다.

낮은 방파제에 둘러 쌓인 포구는 작은 배 몇 척이 머무는 보석 같은 곳이다. 나는 아침마다 구두미포구에서 바닷길을 따라 마을을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도 소중하고 좋기만 하다. 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섶섬 앞 바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때가 바뀌고 날씨에 따라 늘 새롭다. 포구에 가면 다양한 얼굴의 바다를 만난다. 시시각각 바뀌는 구름과 하늘을 따라 춤을 추기도 하고, 물때에 맞춰 악장을 달리하는 바다가 들려주는 교향곡에 마음의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아침과 저녁의 해는 또 다른 조연이다. 섶섬 뒤로 두꺼운 구름띠를 비집고 나오는 빛내림의 기둥을 만나기도 하고, 저녁노을이 문섬과 범섬 뒤로 떨어지는 황홀한 고요에 빠지기도 한다.


구두미는 ‘누알과 섬도코지 사이 바닷가 포구’를 말한다.
두 개의 방파제는 섶섬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


구두미포구에서 동쪽으로 보목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불턱이라 불리던 해녀의 집과 테우 조형물을 지나 섶섬과 가장 가까운 곳 섬도코지와 동애기를 만나고 조근개와 큰개머리를 지나 보목포구에 다다른다. 또, 구두미 언덕에 올라 서쪽으로 바당 올레를 따라가면 누알이라는 곳을 지나 소천지에 다다르고 이 길은 거믄여 해변까지 이어진다.


보목마을 입구에서 바닷가 쪽으로 이어진 길을 내려오다 보면 거북이 머리를 닮아 ‘구두미’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지막한 방파제 위에서 가운데 섶섬을 두고 해돋이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것은 넙죽이 내민 구두미의 지형 덕분이다. 구두미 표지석을 보고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섶섬 앞으로 반듯하게 뻗은 방파제가 있고, 낮은 언덕을 끼고 포구 안쪽에 간단한 정박 시설물이 있다. 쇠고리에 밧줄이 달려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서귀포항 쪽으로 또 다른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다. 두 개의 방파제는 서로 이어져 하나의 길을 만들어 낸다. 섶섬 앞 방파제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드나드는 나들목 구실을 하고, 방파제 끝에 달린 기중기는 그물망에 가득한 어획물을 차에 싣는데 쓰이는 도르래 같은 기계장치다. 서귀포항 쪽으로 놓인 방파제는 섶섬 옆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제 역할에 충실하다.


지금은 해안도로가 언덕을 관통해서 옛 지형을 찾아보기 어렵다. 포구를 끼고 있는 언덕에는 아직 구두미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도로가 구두미재를 관통하면서 두 동간난 반쪽의 언덕 위에 섶섬지기라는 카페가 자리 잡았다. 이곳은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카페다. 섶섬지기와 열 동자의 이야기가 있고 해녀들의 삶이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돌자갈로 쌓아 만든 방파제가 콘크리트로 뒤덮여 포구의 원형을 잃어버렸다고 늘 아쉬워한다.


나는 내일도 구두미를 걷는다.
그 길은 구두미에서 시작해서 구두미로 끝나는 원형의 길이다.


가끔씩 보목마을 해녀들이 물질하는 날이 찾아오기도 한다.

숨비소리와 함께 붉은 테왁이 올라오고 망사리에 뿔소라가 가득하다. 어쩌다 해 질 녘이면 낚시꾼을 만나기도 한다. 그는 새벽마다 작은 어선을 타고 나가 부시리라는 물고기를 잡아 온다. 배 뒷머리에 매달려 포구에 나온 부시리를 몽둥이로 기절시키고 아가미를 따서 바닷물로 씻는다. 이웃에게 부시리 한 마리 건네며 넉넉한 제주 인심을 느끼게 한다.


구두미에서 서귀포 시내는 한 눈이다.

삼매봉 아래 쭉 뻗어나간 서귀포항 방파제 앞으로 문섬과 범섬이 나란히 서 있다. 어둑해질 무렵 어선 불빛과 도시의 불빛은 서로 어우러져 함께 빛난다. 그렇게 이어진 수평선을 고개를 올리거나 내려다보지 않아도 바라볼 수 있어 좋다. 구두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단단해진 마음이 함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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