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나는 지금 서귀포에 있다. 가까운 곳에서 그곳을 그리워할 수 있다니.
누구나 자신이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겠지만, 서귀포는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사람처럼 그립고 또 그리운 곳이다.
서귀포는 한라산 아래 바다를 사이에 두고 꽃처럼 피어난 도시다.
서귀포의 지형은 특별하다. 한라산 아래 남쪽 경사면을 따라 형성된 도시는 꽃처럼 아름답다.
서귀포항 위쪽으로 서귀포 본시가지가 펼쳐져 있고, 삼매봉 아래 하논분화구를 넘어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신시가지 옆으로 강정택지지구와 혁신도시가 있다. 서귀포 시내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언제나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남벽이라고 불리는 화구벽은 겨우내 흰 눈으로 덮혀져 있고 안개가 짙은 날에는 산등성이에 넓은 평원이 사라져 꿈을 꾸는 듯 보인다. 직선거리로 백록담 정상에서 해안까지 단숨에 내달릴 듯 짧게 느껴진다. 맑은 날이면 일주도로 너머 중산간 지역 어느 곳에 있어도 한라산 품 안에 안겨 있는 것 같다.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한 솜반천과 동홍천 그리고 몇 개의 하천이 서귀포 시내를 지나간다.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 두 개의 폭포에 이르러서는 큰 물줄기를 뿜어낸다. 바다로 실핏줄처럼 이어져 끝에 이르러서는 용천수가 되어 솟아난다. 서귀포 해안은 서귀포층이라는 거대한 반석 같은 돌이 서귀포의 땅을 받쳐주고 있고 곳곳에 폭포와 주상절리가 발달한 명승지다. 칠십리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귀포 앞바다에 떠 있는 섬들이 보인다. 섶섬과 문섬과 범섬 세 개의 섬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서귀포 바다를 걷다 보면 이 세 개의 섬이 바라다보는 지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따뜻하니 그리운 곳, 서귀포 칠십리를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서귀포는 도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작은 도시다.
서귀포 걷기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나는 주저 없이 서귀포항이라고 생각한다. 서귀포항은 새섬이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서 항구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삼매봉과 천지연폭포 난대림 지역이 붙어 있어 늘 푸르다. 낮에는 제법 큰 배가 드나들기도 하고 갈매기떼가 유난히 반기는 곳이다. 밤에 서귀포항을 돌아 새연교 건너 새섬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여기서 천지동 벽화마을에서 칠십리시공원을 지나 걸매생태공원까지 걷을 수 있다. 삼매봉 아래 외돌개에서 동너븐덕까지 걷는 바당길은 언제 걸어도 좋은 길이다.
좀 더 가볍게 걷는다면 올레시장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다.
햇살을 받으며 남쪽으로 걷다 보면 길은 바다로 향한다. 여행자로 붐비는 올레시장에서 이중섭거리까지 이어진 길은 경사도가 심하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솔동산으로 불리던 곳에서 서귀진지를 지나 자구리 해변에 닿는다. 자구리 해변은 문화예술 공원으로 한참을 머물러도 좋은 곳이다. 여기서 이중섭의 ‘그리운 제주도 풍경‘처럼 정면으로 섶섬이 보인다. 이곳에서 어린아이들과 게를 잡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화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말년의 그에게 서귀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귀포는 따뜻하니 그리운 곳이다.
* 칠십리는 제주의 옛 도읍이었던 정의현성 관문에서 서귀진까지의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서귀포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