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의 가을

귤빛 환상

by 박현

서귀포의 가을은 귤빛으로 물들어 간다.

그것은 ‘귤빛 환상’이다. ‘귤림추색’이라는 말은 차라리 사실적으로 들린다.

귤빛으로 물든 감귤밭 풍광은 이중섭의 ‘서귀포의 환상’이라는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귤을 따고 모으고 나르는 모습은 푸른 바다와 대비를 이뤄 꿈을 꾸는 듯하다.


제주에서 ‘미깡’이라는 말은 감귤류를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감귤 농사는 가장 보편적인 생업이다.

도민들의 단골 식당에는 어김없이 감귤을 내어놓고 중개하는 역할도 한다. 올레길이나 관광지에서도 무인으로 판매하는 곳을 흔히 볼 수 있다. 직접 감귤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친척이나 이웃의 바쁜 일손을 헤아려 도움을 주려는 마음들이다.


제주에서는 다양한 감귤을 총칭해서 ‘미깡’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노지 감귤을 모두 수확하고 천혜향, 한라봉을 차례로 거두고 있다. 감귤이 익어가는 속도가 다를 테니 한 번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고 보통 세 번에 걸쳐 품앗이로 과실을 딴다. 수확을 마친 감귤은 선과장이라고 하는 곳에서 상품화되고 포장까지 마무리된다.


감귤은 제주 전역에 걸쳐 과수원이나 시설 농업으로 재배한다. 보통 하우스 감귤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노지 감귤이 출하된다. 당도를 높이기 위해 타이벡(햇빛을 반사하는 천)이나 비가림 방식으로 재배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시설 재배가 많아지고 상품도 다양해졌지만 아직까지도 노지 감귤밭이 많다.


나뭇가지에 단단하게 매달려 있는 감귤 과실은 질긴 모성애를 느끼게 한다.


보목마을도 대표적인 감귤 산지 중 하나다. 독립적인 작목반을 운영하는 효돈의 감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을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곳곳에 숨어있는 귤밭을 마주친다. 칠십리로에서 문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움푹 파인 감귤밭이 보이는데 귤빛으로 빛나는 풍광이 멋들어지다. 귤빛은 빛난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귤과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빛나는 전구알 같다.


이맘때면 감귤 수확이 한창이다. 감귤밭을 지나다 보면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노란 상자에 금세 저마다 크기가 다른 귤들로 가득하다. 제주에서는 적당한 양의 귤은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한 상자 정도는 귤밭 입구에 놓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가져가게 하는 것이 미덕인 것 같다. 산책하다가 귤밭을 지나며 거저 얻은 귤을 시식하면서 그 고마운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감귤 수확철에 흔하디 흔한 것이 귤이라고 해도 한 해 농사의 결실을 내어주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감귤박물관에 가면 다양한 귤나무를 직접 볼 수 있다. 특히,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하귤나무는 감귤 정원에 와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김광협의 시에 “내 소년의 마을엔/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그의 시 ’유자꽃 피는 마을’에서 인용)”라는 시구가 있는데, 왜 감귤이 아니고 유자인가 하는 의문이 풀렸다. 제주에서는 본격적으로 감귤을 재배하기 전에 집집마다 유자를 심었고 늦은 봄이면 진한 향기가 마을을 뒤덮었으리라.


* 감귤 : 귤과 밀감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제주어로는 ‘미깡’이라고 한다.

* 만감류 : 수확 시기가 늦은 감귤류. 한라봉, 천혜향 따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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