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

빛과 구름의 향연

by 박현

아침 산책 길에서 겨울 바다와 만난다.

서귀포의 겨울 바다는 짙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 빛내림 풍경을 선물해 준다. 해가 떠오르고 난 뒤 두꺼운 구름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빛은 나에게 이곳에서의 시간이 축복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했다. 빛이 내리는 시간에는 바람도 쉬면서 한껏 빛의 품 속에 안기는 것 같다. 나무는 푸르게 반짝이고 바닷물 아래 잠긴 돌은 눈 부시게 빛난다. 그 시간은 겨울 바다를 가르는 철새와 바닷속 여린 지느러미를 흐느적거리는 물고기까지 모두가 함께 하는 장엄한 순간이다.


두꺼운 구름 틈새로 흰 빛이 내리다.
바다를 가르던 가마우지가 생이돌에 앉아 날개를 편다.


서귀포의 겨울 바다는 빛내림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섶섬과 문섬, 범섬으로 이어지는 바다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깨끗한 해양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고,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아침과 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 두꺼운 구름이 쌓이기 때문이다. 공기가 탁한 도시에서는 구름 사이로 빛이 비치더라도 빛내림 현상을 볼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해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내 빛으로 바뀌면서 강렬한 광선을 비추기 시작하면 두꺼운 구름은 거대한 잿빛 장막으로 변하고 그 사이로 흰 빛이 내리는 것이다.


겨울 바다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가마우지, 재갈매기로 대표되는 철새들이 떼 지어 산다. 질긴 억새가 바람에 눕는 사이 가마우지는 낮게 비행하면서 생이돌에 앉는다. 기름샘이 없어 잠수를 한 후에 깃털을 말리기 위해 날개를 펴고 앉는 것이다. 붉은빛이 내리는 시간에 검은 돌에 앉은 검붉은 새가 떼 지어 일광욕을 하는 모습은 축복의 시간이다. 온전히 태양의 기운을 충전해 다시 날아가고픈 붉은 소망 같은 것일까? 재갈매기는 몇 마리씩 짝을 지어 바람이 멈춰 선 하늘에 잿빛 날개를 활짝 펴고 느리게 날아간다. 포구 깊은 물에는 물오리가 잠수하고 날아가기를 반복하면서 큰 동심원을 만들어낸다.


서귀포 바다의 일출과 일몰은 빛과 구름의 향연이다.


떠오르는 해는 그 짧은 순간에 구름 속에서 붉은빛 속살을 보여 준다.

해가 떠오르고 나면 그 빛은 천천히 내려앉으면서 잔잔한 흰 빛으로 갈무리되어 조각조각 바다 위를 떠다닌다. 어쩌다 안개가 짙은 아침엔 그 붉은빛이 엷게 덧입혀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가져다준다.


어디 그뿐이랴, 지는 해는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기 전까지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옮겨 가면서 여운을 남긴다. 이때 구름은 마지막으로 지는 해를 어루만진다. 가끔씩 빛의 파장이 구름 떼를 몰아 그 짧은 순간에 오색의 찬란한 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기도 한다.


* 빛내림은 대기광학의 한 종류인 틴들(tyndall) 현상으로 가시광선이 투과하면서 대기 중의 미립자에 의해 빛이 산란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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