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
올해 3월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시기에 저희 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대한 AI 흐름에 뛰어들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품이 분명했지만, 20대가 유리한 창업을 하기위해 망설임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개월동안 6개의 AI 프로덕트를 만들어보면서 Gen AI 비즈니스의 본질에 대해서 나름 치열한 고민을 거듭하였고, 제목을 다소 자극적으로 적었지만 그만큼 투명하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프로덕트를 구현하는 것만큼 관점을 제안하는 것이 커다란 차이를 만들 수도 있어 지금의 생각을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정확히는 린 스타트업 입장에서 Gen AI 비즈니스가 안되는 이유는 결국 운영비용이 높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높은 운영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처음부터 수익창출이 가능해야하며, 과거처럼 프로덕트의 가치가 충분히 좋아지기 전까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유저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따라서 유저가 돈을 지불할정도로 수준 높은 프로덕트를 처음부터 잘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좋은 문제를 발견한다면 프로덕트의 수준과 관계없이 유저는 돈을 지불할 것입니다. 하지만 Gen AI 기술의 무서움은 단순히 솔루션으로서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다는 점 뿐만 아니라 솔루션을 만드는 프로덕트 생산성 자체를 혁신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해당 기술이 모두에게 접근가능해지면서 지금의 트렌드가 시작된만큼, 돈이 된다는 사실은 빠르게 퍼지고 너 나 할 것 없이 시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즉, 기존과 신규 플레이어 모두를 포함한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on)이 펼쳐지고, 높은 운영비용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유저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가격경쟁이 치킨게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Gen AI 비즈니스에 있어서 기존 플레이어(incumbents)가 훨씬 유리한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기존 플레이어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버티컬 영역을 린하게 파고 들었지만, 이미 락인과 네트워크 효과를 보유한 기존 플레이어가 홀리스틱(holistic)한 서비스를 빠르고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신규 플레이어는 돈을 벌면 가격경쟁을 피할 수 없고, 돈을 벌지 않으면 비용관리가 안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습니다. 신규 플레이어끼리 경쟁하는 AI-native 영역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전에 없었던 기발한 접근방식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여러 서비스가 등장할 수는 있지만, Gen AI만으로 압도적인 해자(moat)를 구축하는 서비스는 나오기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해자를 만들 수 없다가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서로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Gen AI의 기회를 보고 뛰어든 모두가 아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Open AI에서 GPTs라는 폭탄을 터트린만큼 당장 만들고 있는 프로덕트보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먼저 접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저는 세가지 전략으로 스타트업이 지금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이미 락인과 네트워크 효과를 보유한 기존 플레이어와 연동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AI 트렌드는 인터넷, 모바일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분위기를 많이 닮았지만, 한가지 명확한 차이점이 있다면 타겟하는 유저가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온라인 공간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제로에서 락인 혹은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기보다 이미 구축된 인프라 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리소스를 압도적으로 아낄 수 있습니다. 특히 채팅 인터페이스가 핵심인 서비스의 경우 이탈한 유저가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슬랙, 디스코드 등 기존 메신저 서비스가 가장 강력한 잠재적 경쟁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동을 더 광범위하게 바라보았을 때 기존 플레이어와 파트너십을 제안하는 방법도 존재합니다. 여전히 의사결정과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는 버티컬 영역의 조직이 훨씬 빠른만큼, 새로운 시장에서 더 큰 파이를 원하는 기존 플레이어 입장에서 신규 플레이어와의 파트너십은 꽤나 솔깃한 제안입니다. 해당 전략의 대표적인 예시가 MS와 Open AI의 관계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 VC보다 CVC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하는 AI 스타트업 입장에서 단기적으로 버닝을 감수할 수 있는 자금보다 장기적으로 사업을 스케일업 할 수 있는 해자를 공유하는 것이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AI가 아닌 대체불가능한 새로운 가치를 함께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프리미엄 구독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AI 비즈니스의 경우 운영비용을 관리하기위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합니다. 이 때, 구독가격에 따라 단순히 횟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꼭 결제를 하고 싶은 다른 지속적인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즉, 락인이나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AI가 메인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AI 비즈니스는 락인과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현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락인효과보다 네트워크 효과를 만드는 것이 조금 더 전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적 발전이 너무 빠르고 그 영향력이 예측불가능한만큼, 어떤 가치가 지속가능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먼저 돈이 되는지 확인한 후에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어차피 운영비용은 점점 더 저렴해지고 0원에 수렴하겠지만, 돈이 된다는 확신이 없다면 충분한 네트워크 효과를 확보하기 위한 기간을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전히 기존 플레이어와의 가격경쟁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 플레이어와 연동하여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하고 싶다면, 기존 플레이어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을 잘 선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저작권, 성인물 등 스타트업이 아니면 건드리기 어려운 그레이(grey)영역에서 출발하거나,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와 같이 애초에 유저가 멀티호밍(multi-homing)하여 시장점유율을 고정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영역을 노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지막 전략은 굉장히 단순하면서 확실합니다. 스튜디오 형태로 여러 개의 AI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것입니다. 기존 플레이어와 연동하든 새로운 대체불가능한 가치를 제공하든 큰 시장에서 돈이 되는 서비스를 계속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경쟁사가 더 잘하게 되더라도 기회를 먼저 포착하여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벌어들이거나, 시장이 워낙 커서 장기적으로 연 매출 1~10억을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프로덕트를 만드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비용은 더 저렴해질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비즈니스가 될지 빠르게 파악하고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리스크는 전혀 없습니다. B2B 영역에서 SI 형태로 작업하는 AI 에이전시와 AI 프로필 사진으로 한달 만에 100억을 벌어들인 스노우를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저희 팀은 비교적 최근 새로운 프로덕트를 시작했기 때문에 특정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유저의 반응에 따라서 상황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프로덕트와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고민은 계속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현시점에서 Gen AI 창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변화가 극단적인 시장에서 빠르게 런(learn)하고, 명제처럼 받아들여지는 기존의 지식을 언런(unlearn)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목표와 현실적인 타협으로 인해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거대한 흐름에 올라탄만큼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더 유연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