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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Mar 16. 2019

'반장병(病)'에 대하여

나의 시각을 타인에게 주입시키려는 실수

반장병(病)


반장병이란 게 있다. 그냥 평범한 학생일 때는 자기들도 친구랑 떠들고 잘 놀다가, 꼭 반장만 되면 자습시간에 떠드는 애들이 눈꼴사나워지고, "야, 좀 조용히 안 해!"를 남발하게 되는 병이다.


만화 [송곳]의 한 장면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반장병 환자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그 증상이 심화되는 과정은 대충 이렇다. 반장이 된 아이는 처음엔 "우리 조금 조용히 하자~"로 시작한다. 그래도 표로 당선된 사람이라고 그러는지 처음엔 최대한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톤이 좀 높아진다.


"아 좀 조용히 하자고!" "야! 김00 조용히 안 해?!"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왜 떠드는 사람들이 아니꼬운 건지,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 상황에서 괜히 몰입해서 소리 지르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한다. 조금 더 지나면 여기에 욕이 섞이고, 구성원들과의 관계는 더 어긋나기 시작한다. 반장은 더 빡쳐간다. 이제, 반장은 더 이상 소리지르기를 그만두고 칠판에 "떠든 사람"을 적기 시작한다. 그리고 담임이 교실에 오면 "얘, 얘, 얘, 얘, 떠들었어요" 하며 처벌을 호소한다.




내가 이 과정을 잘 아는 이유는 내가 바로 초등학생 때 반장병 말기 환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장병 환자들은 초등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대학에서도, 직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특히 지금 내가 있는 군대에서는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별 것도 아닌 거에 대해서 "쓰레기 통 다 차가면 좀 비워," "머리 좀 잘라," 꼭 한마디 하고 시비 거는 간부에서부터, 의무복무자임에도 과하게 군생활에 몰입한 병사들까지.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군대에서든, 이런 반장병 환자들은 조용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을 정말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반장병 환자 출신으로 보건데) 반장병의 진짜 문제는 사실 따로 있다. 그건 바로 "반장병 환자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반장이 난리를 치면 평범한 우리는, 좀 짜증스럽긴 해도, 그냥 "에휴, 불쌍한 놈," "한심한 놈"하고 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게 된 반장병 환자는 정말 세상을 잘못 살게 될 확률이 높다.



나의 시각을 타인에게 주입시키려는 실수


반장병은 왜 생기는 걸까? 왜 많은 사람들은 크든, 작든 권력을 쥐면 반장병에 걸리는 걸까? 한때 오래 생각했던 주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반장병이 자신의 시각/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입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실현되는 현상이라고 본다.


나의 시각을 타인에게 강요하게 되는 성향은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평범한 구성원일 땐 마땅한 명분이 없어 그 욕구를 초대한 잠재우고 있다가, 조금의 권력이 생기면 가둬두었던 참견욕(?)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초등학생 정도 때 다 경험하고, 성장하며 극복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나이를 먹고도 이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문제다.


어떤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함께 생활하기 힘들 정도라면 정중하게 이야기하고, 설득해서, 서로 바꿔나가면 된다. 하지만 단순히 자기 눈에 꼴사나워 보인다고, 전통대로 안 한다고, 내 방식대로 안 한다고, 그게 불편해지고 간섭하고 싶어 지면 그건 그야말로 '병'이다. 학교 선배가 아님 직장 상사가 이 병에 걸려있다면 하루빨리 투병 중이란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늘 전염 위험 속에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특히 해병대, 육해공 훈련소 조교뿐만 아니라 군대를 거치는 모든 남자들은 '병장'을 거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그 아무것도 아닌 권위 '뽕'에 취해 불필요하게 나의 시각을 남들에게 주입시키려 하는 습관을 키울 위험이 크다. 넓게 보면, 우리나라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배'라는 위치를 한 번쯤 거친다. 그리고 이렇게 선배들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문화는 우리나라가 제일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혹시나 내가 내 위치를 이용하여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며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 병은 우리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병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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