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의 미학

by 현세

나는 ‘그럴 수도 있지~’가 디폴트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음 그렇군, 하고 넘겨버린다.


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물론 천성도 한 몫 하겠지만) 다양한 것들을 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책과 영화, 드라마를 좋아했다. 핸드폰이 없었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활자 중독이었다. 화장실에서는 화장실용 유머 신문(?)을 읽었고, 하교 후 오후 시간은 거의 책을 읽으며 보냈다. 식사 중에도 책을 읽어 엄마께 한 소리를 들은 적도 많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공부가 하기 싫어 도피성 드라마/영화 시청을 했다.

그 모든 것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이해한 것은 절대 아니며, 말하자면 닥치는 대로 섭취했다. 그렇게 무지성으로나마 다양한 인간 군상과 세상사를 간접적으로 접한 것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것 같다.



이제 어렸을 때의 잡식성 콘텐츠 소비를 할 시간은 없지만, 대신 요즘은 정상성에 대해 관심이 있다.

우리는 상식이나 정상성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틀렸는지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정해져있었고, 나는 그저 그 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까” 이건 맞는 거고, 저건 틀린 거다.

현대인은 노예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과거에는 그게 정상의 상태였다. 여성이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옛날 사회의 모습 그대로를 지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현대의 인간과 사회가 미래에 어떻게 평가될지는 알 수 없다.

"A가 왜 잘못된 건데?" 하는 질문에 "도의", "상식", "윤리", "원래", "당연"이라는 말로밖에 답이 안 나온다면, A는 현재와 미래의 평가가 엇갈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다른 인간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의무를 지켰냐 아니냐이다.


이 세상에 “무조건”으로 통하는 진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의 미학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애매하게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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