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진로 상담.. 그렇지만 나도 하고 있는 고민
꼴에 '박사'라는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있어서.. 가끔 대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겨서.. 나는 그들의 진로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이때 내가 제일 안쓰럽고 미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그들의 꿈에 스토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전 삼성에 가고 싶어요", "전 국책연구소에 가고 싶어요", "전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최근 내가 듣는 대학생들의 꿈은 이랬다. 뭐 더 구체적으로 들은 예는 "삼성에서 임원까지 하고 싶어요", "공무원으로 정년까지 벌고 싶어요" 정도였다. 뭐 물론 단기적인 목표일 수도 있고, 또 현실적인 생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렇게 교육받아 왔을 수도 있다. 또한, 취업은 힘들고, 말도 안 되는 갑을놀이가 판치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나름 좋은 학벌에 큰 기업에 있는 고민없는 사람의 건방지고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명함에 새겨질 그럴듯한 회사 로고와 직책이 자신의 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되어서도 안 된다.
물론 대기업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국책연구소라는 기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 하나 꼭 필요하고, 현재도 그 곳에서 정말 열정적으로 꿈을 이뤄가는 분이 있고, 현재 우리 나라의 발전엔 그 곳과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엄청난 노력을 통해 그렇게 원하던 회사 이름을, 직책을 넣은 명함을 얻은 많은 선배, 동료, 후배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명함에 새겨진 회사 로고가, 명함에 새겨진 자신의 직책이 자신이 꿈이 될 수 있는가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가끔 진로 상담을 하게 될 때마다, 내가 학생 때 들었으면 .. 아니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있고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얘기하고 싶다. 교과서에 나와 있듯이 세상 대부분의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그러나 인간의 목적이 이윤 창출의 수단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위대하고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가 되고 싶어한다. 허황되고 치기어린 얘기일 수 있으나, 우린 모두 어린 시절 엘런 머스크,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등과 같이 세상을 바꾸고,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꿈꾸며 공부하고 자라왔다. 또한, 너무 대단한 그들이 못 되더라도 그들 옆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적어도 난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 아니 세상을 바꾸기 위한 위대하고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라도 되고 있는가?
근처 대기업에 취업한 많은 분들이 하는 소리 중 하나가 "내가 여기서 뭐 하는지 잘 모르겠다"이다. 아마 엄청나게 큰 기업에서 그들에게 맡긴 일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를 것이고, 많은 일들이 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나 한 개인이 꿈을 이루기엔 너무 비효율적인 일들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웃기게 들리겠지만,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분(사원-대리-과장-부장)들이 하는 일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상무-전무-부사장-사장)의 보고와 격식을 위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 내 경우에도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모를 때가 가끔 있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 보다는 내가 몇시에 출근하고 몇시에 퇴근해서 이번주는 몇시간을 채우고 그래서 기준 근로시간을 넘겼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나조차도 엘런머스크가 실험한 하이퍼루프에 가슴이 뛰고, 알파고와 이세돌 경기에 열광하고 있었다. 아니 그 자리에 나도 함께 그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난 일주일 40시간 근로시간을 채웠는지 체크하며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삶을 꿈꾸고 있는건 아니잖은가?
이렇기에 단순히 금방 망하지 않을 거 같은 대기업, 정년이 보장되는 국책연구소, 자유로와 보이는 스타트업을 목표로 정하지 말고, 자기가 꿈으로 삼았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을 목표로 삼았으면 한다. 자기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어느 대기업에서 풀 수 있고, 자신이 그 기업에서 풀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대기업에 가는 것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그 문제에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에 가서 자신이 풀고 싶었던 문제를 푸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그런 면에서 스타트업은 기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기업에 속한 개인이 풀고자 하는 문제가 맞닿아 있어 기업과 개인 사이의 괴리감이 적은 장점이 있다. 대기업의 경우엔 기업에서 모든 개인을 판단하기엔 너무 조직이 비대해 개인의 목표와 기업의 목표가 맞지 않을 경우가 생긴다. 명함의 쓰여진 회사 이름에는 나타나지 않은... 자신이 무엇을 해결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곳으로 가서 꿈을 펼쳤으면 한다.
무조건 대기업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난 대기업안에 있는 비효율적인 일보다 자기가 무슨 문제를 풀고 있는지도 모르는 스타트업계의 이사들 (CEO, CSO, COO, CTO, 뭔 이사 직함이 이리 많나.. ) 문제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혹자들은 이런 스타트업계의 전문성이나 열정없는 이사들을 'CXO 임원 놀이'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슨 문제를 풀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슈 단어와 적당한 피칭으로 투자금을 받아서 이사 직함의 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남의 돈(투자금)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한다. 이런 분들 될 바에야 보다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 국책연구소는 절대 나쁜 선택이 아니다. 대기업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선배들이 있고,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길은 존재는 한다. 다만 시스템에 길들여져 목표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런 소리를 어디 진로 상담가서 하고 싶고, 내가 어린 시절에 들어보고 싶었지만... 안다. 한국에서 지금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하고 싶은 꿈따위는 저기 저 멀리 접어두고 명함에 이름이라도 넣을 수 있는 방법에 급급해져 간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취업만 한다면... 합격만 시켜주시면 뭐든... 기회를 주시면 뭐든.. 이런 말들을 면접장에서 어렵지 않게 듣는다. 그렇다고 스타트업을 시작하기엔 한국이란 나라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지도 않고, 장기적으로 비젼을 봐주지도 않으면서 급급하게 돈버는 사업에만 집중되고, 그렇게 고생하여 일어서도 대기업, 정부가 아이디어, 기술을 쏙쏙 빼어가 힘들어지는 것도 안다. 그래서 스타트업도 하기 힘든거 안다. 알아서.. 어디가서 말도 안 하고 아무도 안 보는 여기에 적는거다. 나도 나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문제점을 보고 작은거라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을텐데 .. 그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쪽팔려서 후배들 만나서 이런 얘기를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