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unseok Min Mar 28. 2016

배운대로 살기의 어려움

책 밖의 현실

잘 하지는 못 했지만, 나름 공부 좀 하는 놈이였다.


공부를 좀 했던 나에게 누가 물었던 적이 있다. 공부를 어떻게 잘 했냐고.. 잘 하진 못 했지만 알고보면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암투병 중이였는데, 나에게 공부라도 해야 했었던 거 같았다. 그래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던거 같다. 그래서 공부 속의 세상이 옳다고 믿었던 것... 박사를 받고 나름 공부는 할만큼 했는데 인생은 아직 너무 어렵다. 인생이 책속에 나온 것처럼 평등하지도 옳지도 않은 것인데, 책속에 나온 것을 잘 알아야 하는 공부만 했으니 당연히 인생이 어렵다.


부모는 아이를 키운다. 당연한 논리다. 책속에 부모들은 다들 아이를 키운다. 자기 자식을 자기 힘으로 키우기... 이건 당연히 옳은 것이였다. 그러나 이 놈의 세상은 그게 그렇게 녹록치 않음을 철저히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남편은 박사 출신 대기업 연구원, 아내는 임용고시를 통과한 선생님.. 어찌보면 불평을 하면 이상한 집이다. 그러나 아내가 야자감독을 하고, 보충을 하고, 학생 상담 일정이 잡히면 남편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찾으러 가야한다. 아내가 내내 하던 일을 한달에 겨우 몇번 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아무 방해 없이 퇴근해도 어린이집 하원시간은 빠듯하다. 그러나 이놈의 대기업은 뭔 놈의 회의가 그렇게 많은지... 높은 분들 들어오는 회의에 왜 그리 불러대는지... 하원 시간 맞추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그렇게 아이를 데리러 가면 어린이집에 혼자 선생님들과 남겨진 아이의 등을 보곤 한다. 그래.. 뭐하러 사나 싶은 순간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 내가 읽은 책에는 여성 인력이 사회에 나가야 한다고 써 있었다. 내 딸도 그렇게 꿈을 펼쳤으면 한다. 그런데 딸을 위해 엄마의 꿈을 접어야 하나? 이건 내가 배운 어떤 수학책에도 나오지 않는 논리다.


그래서 둘러봤다. 도대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애를 키우나.. 어머니가 키워준덴다.. 장모님이 키워준덴다.. 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장모님은 생업에 종사하신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애를 못 키워주니 애를 낳지 말았어야 했나?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자기 자식 자기가 키우는게 당연하고 그렇게 배워왔는데 근처에 그런 사람이 없다. 그래..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키우나.. 사람을 쓴다. 하원 도우미, 등원 도우미.. 각종 도우미.. 그래 한번 알아봤다. 대략 한달에 200만원 가까운 금액이 들어간다. 내 아이를 잘 봐 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만한 돈이 들어간다. 선생님으로 일하는 아내의 한달 월급과 비등한 금액.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놓고, 아내는 돈을 한푼도 못 버는 거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혹자는 경력을 이어가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공학을 전공한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아이에게 엄마의 정을 충분히 주지 못 하는데 생계에는 도움이 안 된다. 이건 알고리즘으로 따지면 최악이다. 성능을 떨어지는데 에너지는 더 먹는 시스템이다. 당장 끄는게 정답이다. 내가 배운 책에는 그렇게 나와 있다.  가끔 필요할 때만 사람을 쓰는 방안.. 그래 내가 배운 책에서 상황에 따른 다른 정책을 쓰는 어쩌구를 배운거 같다.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 좋을까... 급할 때마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와서 자신을 보고 있는 상황이... 책에서 배운대로 하기에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 방법이 없다. 1안 2안 3안... 책에서 배운대로 상황에 따른 방안과 그 결과를 유추해 보니 다 엉망이다.


박사를 마치고 손에 든건 달랑 학위 증서 한장을 가지고 기업에 가서 나름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전세값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일해서 버는 속도와 전세값 오르는 속도는 상대가 안 되어 더 밖으로 더 좁은 곳으로 집을 알아봐야 한다.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민주국가 아니였나? 인생을 미친듯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 지경이지.. 집안이 어려워 장학금에 목메며 공부하고 졸업과 동시에 다들 가고 싶다는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인생은 어려워 지기만 한다. 그래 TV에 나온 어른들이 말한 노오오오오력을 하고 살았는데 답이 없다. 나이가 같지만 나보다 어학연수와 해외여행으로 시간으로 보내 늦게 입사해 직급도 아래인 친구 녀석은 차와 집을 받고 시작하였다. 우리집의 두배에 가까운 평수의 방한칸은 자기 취미를 위해 꾸며놓았다고 한다.


뭔가 잘못되었는데 그게 나때문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난 배운대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나때문이라고 말하는건 뭔가 오류가 있어 보인다. 시스템이 잘못 되었다고밖에 말을 못 하겠다. 최선을 다했고 실수를 많이 안 했고, 나름 운이 좋았는데 이 지경이다. 나보다 실수를 더 하고, 좀 더 돌아온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사회여야 한다. 내가 힘들면 나보다 운이 없었던 사람은 몇배 힘들 것이다. 그게 노오력을 안 했기 때문에 당연히 힘들어야 하는게 아니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할 수도 있어야 인간 아닌가. 알파고처럼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을 해도 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이다. 실수도 실패도 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런데 이 놈의 사회는 나만큼 실패를 적게 해도 사는게 힘들다.


그런데 웃긴 점은 내가 혹.. 운이 정말 좋아서 이 놈의 시스템에서 좀 편한 곳으로 가는 사다리를 탔다고 생각하면.. 난 그 사다리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려줄 것인가.. 아니면 그 사다리를 걷어찰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책에 나와 있다.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 성공의 사다리를 걷어찼다. 프레온가스를 써서 성공한 선진국은 후진국에게는 가혹하리 만큼 환경문제를 들이밀었다. 자신들은 환경을 망쳐 성공했으나 그 사다리를 후진국은 못 타게 막았다. 그럴싸한 조건을 걸어서...

제발... 많은 사실에 책과 달라서 힘들었지만, 이 사실만은 내가 배운 책과 다르기를 기도한다. 책에서 배운대로 사다리를 걷어차는게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기를..



작가의 이전글 무언가 완주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