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스타일난다를 보며
몇 년 전부터 '스타트업'이 유행이다. 혁신적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창업기업을 뜻하는 단어로 '창조경제'라는 미명 하에 우리 경제의 미래로 떠올랐다. 스타트업 창업가 상당수는 명문 공대와 MBA를 졸업하고 인재라는 평가를 받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알리바바와 같은 성공적인 엑시트를 꿈꾸며 수백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다. 하지만 일부 IT/게임 기업을 제외하고는 왜 성공적인 엑시트 소식이 들리지 않는 걸까? 나는 현재의 스타트업에 일종의 엘리트 의식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서 배운 비즈니스의 목적은 "to maximize the profit"이다. 영리 기업이라면 이윤창출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영업이익을 주요 지표로 삼지 않는 분위기다. 그 대신 매출이나 성장률, MAU, 투자액 등의 수치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데, 여기에는 "스타트업은 특별하다. 기존 시장의 평가방식은 무시해도 된다."는 일종의 엘리트 의식이 담겨 있다.
국내 스타트업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쿠팡은 지난해 5,47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였다. 쿠팡은 이를 '계획된 적자'라는 주장으로 정당화시켰다. 하지만 흑자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시점이나 계획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장기적인 로드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도, 투자액을 근거로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한다. 더욱 문제 되는 것은 스타트업 업계가 전반적으로 이를 괜찮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업계 내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으면 수천억 원의 적자에도 아래와 같이 '매출액 돌파'라는 긍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작성된다.
수많은 창업가들이 업종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 없이 스타트업을 시작한다. (여기서 업종이란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상품을 말한다. O2O 패션 스타트업의 상품은 옷이고, 배달앱의 상품은 음식이다.) 단순히 뛰어난 경영학적 지식과 알고리즘으로 무장된 솔루션을 통하여 기존 시장에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이며 시행착오로 이어지기 쉽다. 시장을 혁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최첨단 IT기술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여성 쇼핑몰 스타일난다의 기업가치가 1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오로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전달하는 일에만 집중한 결과다. 동대문 사입 상품으로 시작하여 10년 만에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으나 아직도 카페24의 플랫폼을 사용한다. 투자유치도 전혀 없이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플랫폼이나 투자액은 상품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일난다의 혁신은 업계 최초로 피팅모델을 활용한 상품 촬영을 하고, 고객센터를 확충하여 소통에 나선 것이다. 나는 스타일난다야 말로 우리 스타트업이 벤치마킹해야 하는 모범사례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개선과 미래의 성장동력을 위해서, 혹은 수많은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스타트업의 성공사례는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나와야 한다. 지금이라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수치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해야 한다. 현장에 나가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닷컴 버블처럼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