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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Nov 28. 2024

부동산금융인의 서재 - 칼의 노래

[일상잡설]


부동산금융 대체투자 전문매체인 SPI의 요청으로 글 한 편을 기고했다. <부동산금융인의 서재>라는 도서 추천 칼럼이다. 감사한 요청이나, 데스크의 기조로 내 글의 주어가 모두 수정됐다. ‘나’라는 1인칭이 전부 ‘필자‘로 바뀌었다. 나는 나를 ‘필자’라 칭하는 대명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 굳이 내 원문을 따로 내 글 창고에 싣는다.



부동산금융인의 서재 - 칼의 노래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 김훈, <칼의 노래> 중에서

사백 년도 더 된 옛날의 전쟁터에서 장수가 했던 고뇌다. 가까운 앞날에 AI가 법인의 자격을 갖출 것이라는 전망 앞에서, 태초부터 이어온 저 끼니 걱정은 옅어지지 않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끼니와 싸움의 냉혹함에 씨름하던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김훈이 다시 썼다. 1인칭 시점의 일기 형식과 역사적 사실은 사서(史書)와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이는 역사의 편집이 아니라 김훈의 창작 소설이다. 이를 부정하는 소리가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읽어보면 알게 된다.

김훈의 소설들은 얼핏 삶의 가학과 피학으로 범벅하여 사람을 조질 셈이구나 싶지만, 그의 독자라면 안다. 삶의 잔인함과 무내용은 가학도 피학도 아닌 삶의 무심함(無心)에서 온다는 것을. 작가는 그 무심함 앞에서 섣부른 낙관도, 연민의 비관도 하지 않는다. 삶의 무정과 무심을 담담히 받아내는 인간의 모습 자체를 추앙한다. 나 역시 그래서 그의 작품이 좋다. 김훈의 소설에는 위로가 없다.

개인의 서재를 보자는 칼럼이니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금융도 부동산도 지금 회사로 처음 발을 들였다. 그간 일반 대중을 상대하는 콘텐츠와 리테일 플랫폼에서 일하다 이지스자산운용의 공간콘텐츠실장으로 왔다. 이십 년 넘게 일해온 터를 버리고 이 회사로 입사한 지 아직 2년이 안 됐다. 회사의 용감함과 개인의 무모함이 만난 결과다. 회사는 의도가 명료했고 나는 바람만 분명했다. 다행히 회사는 길을 보았고 나는 동료들과 그 길을 닦고 있다. 공간콘텐츠실은 부동산과 공간의 실제 소비자인 사용자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조직이다. 공간의 사용자 경험을 IT기술과 차별화 콘텐츠로 혁신하여,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미션이다. 올해 2월 준공한 팩토리얼 성수​가 그 첫 프로젝트였다.

예전에 일했던 분야는 분초 단위로 고객과 시장에 반응했다면, 여기는 긴 호흡과 큰 보폭으로 신중하게 움직인다. 그 격차 때문인지 이 업에선 으레 그러하다는 것들도 아직 이방인 티가 남은 나는 낯선 오감이 도드라진다. 사용자 경험의 플랫폼 가치를 판다는 궤는 같아도 결이 달라서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들은 그래서 내게 모두 선배요 선생님이다. 상사는 물론 나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도, 직책이 같은 동료도, 협업하는 외부사도 모두 그렇다. 그러다 보니 업의 막내로서 모든 선배들을 유심히 본다. 보다보면 분투하는 업계 사람들 속에서 <칼의 노래>가 떠올라 다시 손이 갔다.

이 분야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맞닥뜨린 당혹감은, 맞서야 하는 상대가 ‘파도’가 아닌 ‘바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어디 바람의 영향을 비껴간 바다가 있겠냐만, 예전 커리어에서 나는 바람보다는 매일매일 닥치는 파도와 싸웠다. 바람을 가늠하는 일은 내겐 싸움이 아니라 전망이었다.


그러나 이 분야에 와보니 파도를 넘어 바람에 버텨야 했다. 세계 거시경제, 미 연준의 금리 동향, 국내 금리와 금융 정책, 이와 맞물린 유동성, 그 유동성에 얽힌 각종 산업 주체들과 그로 인해 뜨고 지는 분야별 산업의 다이나믹스. 그 거대한 바람들은 부동산 자산의 소비 원천이자 재료(자본)의 공급 지형이었다. 콘텐츠 하나하나로 시청률이나 조회수를 올리거나, 오늘 하루 시간당 몇 개씩 파느냐의 추이를 보며 일별 주별 목표를 치고 나가던 때와는 전혀 다른 형세였다.


금융과 부동산 시장은 지난 2-3년간 특히 더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성난 파도와 맞서기도 엄혹할 터인데, 이 업계 종사자들은 혹풍백우(黑風白雨)까지 견디며 앞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명(明)의 만력제와 왜(倭)의 풍신수길이 조선을 놓고 흥정하는 외세의 바람은 조선도 선조도 이순신도 어찌할 수 없이 그저 맞고 버텨야 하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 사이사이 날마다  새롭게 파도처럼 달려드는 적들도 맞아야 했다.

그전에 누렸던 훈풍이 있었다 한들, 모아둘 수 없는 지나간 바람으로 당면한 폭풍을 희석할 순 없었다. 그전에 이겼던 싸움이었다한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죽음을 막아설 순 없었다. 어제의 바람은 오늘의 바람이 아니고, 오늘의 적은 어제 죽인 적이 아니다. 타 분야에서 온 내게는 이 거대한 두려움 앞에서도 투자자와 시장의 가치를 지키려는 업계의 분투를 보며, 다시 집어 든 책의 여러 구절들이 떠올랐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손에 닿는 적보다, 닿을 수 없는 적이 훨씬 더 많았다. 임진년의 기억은 멀고 흐리다. 지나간 전투의 기억은 손에 닿지 않았다. 바다는 전투의 흔적을 신속히 지웠다. 저녁에 사라진 빛들이 아침이면 수평선 안쪽 바다를 가득 채우고 반짝였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물 위에는 없었고 바다는 언제나 새로운 바다였다.”


“썰물의 갯벌 위에 새들이 내려앉고 있었다. 바람과 물결이 함께 먼바다로 몰려나가서 바다는 비어 있었다. 섬 너머 수평선 쪽에서 바람 속을 날뛰는 물결이 하얗게 일어섰다. 빈 바다에는 시간의 흔적이 없었고, 지나간 싸움의 흔적이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의 오지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생각해보니 이는 특정 업계만의 고뇌와 분투가 아닌 것 같다. 거시경제와 맞서든 일별 매출과 씨름하든, 삶의 전장에서 닥쳐올 모든 끼니와 싸움에 맞닥뜨리는 낱낱의 개인들에게 바치는 서사이겠다. 지속가능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은 긴 전쟁과도 같고, 그 삶 속의 누구에게나 그만의 전투가 있으니까.

<칼의 노래>는 2001년에 출간되어서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어떤 책이든 <서문> 읽기를 즐기는데, 김훈의 서문은 소설 본문 못지않은 문장들이 펼쳐져 특히 좋아한다. 그런데 이 책은 서문 외에도 1권과 2권 사이에 ‘내 작품을 말한다’라는 제목의 글이 하나 더 끼어 있다. 독자가 쓰는 감상문이 ‘독후감(讀後感)’이라면, 권 사이에 낀 이 글은 작가가 쓰는 ‘집필후감(執筆後感)’ 같은 글이다. 작가의 후감이 독자인 내 후감과 같아 이 중 일부를 옮겨본다.

“이 세계가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과 치욕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밥을 먹고 숨을 쉰다는 것은, 이가 갈리는 일이지만, 마침내 협잡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나는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

연민과 서정을 모두 걷어낸 자리에서 겨우 드러나는 세계의 알몸을 나는 들여다 보고 싶었다.

(…)

내 소설 속에서 그 사내는 충무공 이순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젊어서 <난중일기>를 읽을 때 절망을 절망으로 긍정하면서 절망 앞에서 중언부언하지 않는 그 비극적 단순성은 철벽으로 내 마음을 가로막았다. 그때 나는 그 벽의 안쪽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나이 먹은 어느날 그 사내에 관한 몇 줄의 글을 쓰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

매일 매일의 불완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일은 눈물난다. 나는 이제 53살이다. 내가 소설가가 될지 뭐가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새로 쓰고 있는 소설을 쓰려 한다. 그 이상을 나는 말할 수 없다. <칼의 노래>를 쓰며 새운 겨울밤들은 춥고 무서웠다.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2001년 가을 김훈”


칼럼 덕분에 출간된 지 이십 년도 더 지난 책을 다시 맛보았다. 노량해전에서 마지막 승리로써 숨을 거둔 이순신의 나이와, 이 작품을 썼던 김훈의 나이와, 이 글을 쓰는 나의 나이가 같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소소한 재미는 덤이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한 끼니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을 매일매일 맞이할 개인들이 이 책을 기꺼이 절망하며 즐기길 바란다.  

​https://seoulpi.io/article/category/000006004?pag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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