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운4구역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나날이 확대일로에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양 진영 간의 대립은 더 격화하는 모양새다. 이 논란 속에 정치는 보이지 않고 정쟁만 보인다. 이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서울은 지난 2,000년 간 한반도에서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도시다. 백제의 위례성부터 조선의 한양까지 역사의 흔적이 서울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다.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은 우리에게는 자부심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서울만의 독특한 정취와 매력을 드러낸다.
동시에 서울은 현재를 살아가는 1,200만 생활인구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된 모습이 새로운 매력이 되기도 한다. 한국을 방문한 많은 관광객들이 고즈넉한 경복궁 뒤로 고층 건물들이 함께 겹쳐져 보이는 풍경을 이색적이고 매력적인 풍경으로 꼽는 이유다.
오랜 역사가 있는 도시들은 으레 비슷한 질문에 직면한다. 그리고 각자 다른 전략으로 질문에 답한다. 파리는 구도심의 외관을 그대로 보존하는 대신 라데팡스 등 외곽을 현대적으로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도쿄는 구도심에서도 고밀개발도 허용하되 시각적 규제를 치밀하게 설계함으로써 조화를 꾀했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전면부에 위치한 세운4구역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서울을 어떤 도시로 만들 것인가?”
세운지구 개발은 지난 20년 동안 서울시의 숙원사업이었다. 특히 세운4구역은 2004년 1월 종로구가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한 이래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다시 오세훈에 이르기까지 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 계획도 춤을 췄다. 하필이면 너무 상징적인 곳에 위치한 탓에 역대 시장들의 역점사업이 되어버린 이곳에서, 조합원들은 20년 동안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행정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문제는 신뢰뿐만이 아니다. 사업 지연과 잦은 설계변경으로 인해 금융비용, 설계비용, 자문비용 등 각종 비용도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났다. 현재 세운4구역은 철거한 뒤 문화재 발굴조사까지 마친 상태지만, 종묘 경관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시 사업은 멈춰 섰다. 건물 높이가 70m가 되든, 145m가 되든, 사업지연으로 인해 세운4구역의 사업성은 실시간으로 악화되고 있다. 누적채무가 7,250억에 달하고 월세 수입도 끊겨 대출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조합원들은, 국가유산청의 인허가 횡포에 대하여 책임을 묻겠다고 분노하고 있다.
이들의 분노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서울의 장기적인 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서울시장의 구상에 따라 개발계획은 일관성 없이 흔들렸고, 똑같은 절차를 수차례 반복해야 했다.
그 지난한 세월 끝에 세운4구역 조합은 이미 용적률 660% 및 최고높이 71.8m로 확정된 정비계획에 따르더라도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2021년 이주를 시작하고 2023년 철거를 마쳤다. 비로소 사업이 끝을 보게 되려나 했다.
하지만 문화재가 발견되어 발굴조사를 위해 착공이 지연되던 2023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하여 상황이 급변했다.
대지면적의 30% 이상을 개방형 녹지로 제공하면 용적률을 대폭 상향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시행자인 조합 입장에서는 외면하기 힘든 인센티브였고, 그 결과 정비계획을 변경하며 최고높이가 높아져 지금의 경관 훼손 논란을 부르게 되었다.
정치는 충돌하는 가치와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세운4구역에 정치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가 갈등을 부추기는 꼴이었다. 이 논란을 생산적으로 매듭짓기 위해 지금이라도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철거까지 마친 마당에, 이제 와서 서울의 미래를 놓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공론장을 열자고 하는 것은 세운4구역 조합원들에게 다시 기나긴 고통을 강요하는 일이다. 단기적으로 정치는 현시점에서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어떤 타협이 가능할까?
세운4구역 조합과 서울시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45m의 고층건물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화문 업무지구의 평균 용적률이 약 600%대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기존 계획에 따른 660%도 충분히 높은 용적률이었다. 조합도 기존 계획이 사업성 있다고 보고 이주와 철거까지 진행했다.
이 논란이 시작된 근원적인 문제는 “건폐율”이다.
같은 용적률이라도 건폐율을 높이면 층수를 낮추면서도 연면적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기존 계획(용적률 660%)에 따르면 높이를 제한하는 대신(종로변 54.3m, 청계천변 71.8m), 건폐율을 68.7%로 계획하여 연면적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했다.
그런데 새로운 계획은 용적률을 1,008%로 높이면서 건폐율은 오히려 20%p나 낮춘 48.4%로 계획했다. 오세훈 시장이 2023년 발표한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에 따라 개방형 녹지를 늘려 용적률 혜택을 받기 위함이었다. 용적률은 늘었는데 바닥 면적(건폐율)이 줄어드니 당연히 건물이 위로 솟구칠 수밖에 없다.
변경계획처럼 용적률 1,000%를 적용하더라도 건폐율을 기존과 동일하거나 더 높게 잡는다면 건물 높이가 낮아져 역사경관 훼손 논란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억지스러운 개방형 녹지를 삭제하고 건폐율을 올려서 건물 높이를 낮추는 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관이나 문화재 규제로 인해 고도제한이 적용되는 지역에는 보존과 충실한 협의를 조건으로 건폐율과 용적률을 완화하는 입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란의 시발점에는 오세훈 시장의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이 있다.
의도는 좋았다. “낮고 뚱뚱한 건물” 대신에 높고 날씬한 건물을 짓도록 유도함으로써 저층부에 개방형 녹지를 조성하여 더 쾌적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강남이나 여의도 같은 지역에는 적절한 방향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사대문 안 강북도심에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파리의 구도심과 라데팡스가 다르듯, 서울도 각 지역의 역사적ᐧ공간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가져야 한다. 성수동과 연남동과 강남이 모두 같은 모습이라면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서울의 역사적 도심에서는 “낮고 뚱뚱한 건물”이 역사경관과 어우러지며 강남ᐧ여의도의 마천루숲과는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세운4구역으로 돌아가보자. 정말 이곳에 녹지가 부족한가?
북쪽에는 종묘광장공원, 남쪽에는 청계천, 서쪽에는 철거 후 녹지축으로 바뀔 세운상가가 위치해 있다. 굳이 건폐율을 낮추면서까지 건물 사이에 억지로 녹지를 끼워 넣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건축물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 건물, 도로, 공원, 지형지물 등 환경과 관계를 맺는다. 도시계획은 그 관계를 조율하는 기술이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와 각 지역별 특색을 무시한 일률적인 도시정책이 세운4구역의 비극을 불렀다.
서울은 큰 도시다. 단순히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넓고 다채롭다.
수백ᐧ수천 년의 역사가 쌓인 지역, 4~50년 전에 강을 메워 만든 지역, 산업화 시기에 무작정 산을 깎아 도시화가 된 지역들이 공존한다. 이 모든 곳들이 같은 얼굴을 할 수는 없다. 잘 계획된 신도시보다 서울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 ‘다양성’ 때문이다.
좋은 도시계획이란 누군가가 미적 기준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 주민의 요구, 경제적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고유의 정체성을 살려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종묘 앞을 테헤란로처럼 만들려는 세운지구나, 문화재를 이유로 개발을 원천봉쇄하는 풍납동이나 좋은 도시계획의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
세운4구역이 촉발한 논란이 이 한 구역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계기로 서울의 다채로움을 살리고, 보존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계획을 고민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정치싱크탱크 VALID에 이슈브리프로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