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 활약을 지원하는 공공의 역할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의 갑작스런 등장은 구정에 대한 구민들의 긍정평가과 특히 성수동으로 대표되는 성공사례가 크게 각인되었기 때문일텐데요.
성수동은 어떻게 노후한 공업지대에서 지금의 트렌디한 상권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봅니다.
성수동은 원래 밭농사를 짓던 서울의 변두리였습니다. 1954년 뚝섬 경마장이 들어서며 변화가 시작되었고, 1960년대부터 도심 제조업체들이 이전해오면서 자연스럽게 공업지대로 탈바꿈했습니다. 전성기를 누리던 이곳은 1980~90년대 대규모 공단들이 안산반월공단 등으로 빠져나가며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2000년대 이후 수제화, 인쇄, 자동차 정비업 등 도시형 산업이 뿌리를 내리며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성수동 상권의 전환점은 2005년 뚝섬 경마장 자리에 서울숲이 조성되면서 찾아왔습니다. 유동 인구가 급증하고 '갤러리아포레(2011년 준공)' 같은 고급 주거시설이 들어서자, 인근에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성수동의 낡은 건물들은 젊은 세대에게 오히려 ‘힙한 감성’으로 다가갔습니다.
여기에 강남이라는 거대 소비층과 인접한 입지적 장점도 한몫했습니다. 가로수길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주춤할 때, 성수동은 미국의 미트패킹 지역이나 브루클린처럼 오래된 창고와 공장을 개조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을 선보이며(예: 대림창고, 어니언 성수) 압구정 로데오와 함께 새로운 대안지로 급부상했습니다. 지리상으로는 한강 이북이지만, 강남 상권의 이동 또는 확장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성수동의 상징이 되어버린 '젠틀몬스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논현동에서 시작해 가로수길 플래그십스토어, 도산공원 인근 '하우스도산'을 차례로 열고, 결국 성수동에 '하우스 노웨어 서울'로 안착한 이들의 행보는 강남권 상권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성수동이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온라인 커머스의 확장과 소셜미디어의 부상이라는 트렌드도 크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온라인 커머스의 확장 속에서 오프라인 매장은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연무장길의 중대형 필지와 공장 부지들은 이러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고, 이는 성수동을 대한민국 팝업스토어의 성지로 만들었습니다.
성수동은 이제 단순한 핫플레이스를 넘어 서울의 주요 업무지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같은 최고급 주거단지가 이미지를 개선했다면, 무신사, 젠틀몬스터, SM엔터테인먼트, 크래프톤 같은 트렌드 선도 기업들의 입주는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했습니다. 이 역시 수도권 최대 업무지구인 강남과의 인접성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판교가 그랬던 것처럼, 강남의 수요가 한강 이북으로 뻗어나가 성수동이 낙점된 것입니다. 이로써 성수동은 아기자기한 상권으로 시작해 힙한 감성을 거쳐, 이제는 일과 삶이 공존하는 거대한 상업·업무 지역으로 거듭나 모든 성장 단계를 성공적으로 밟아 올라갔습니다.
현재의 성수동을 보면 15~20년 전 홍대의 확장기가 떠오릅니다. 홍대는 탄탄한 배후 대학가(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와 평탄한 지형, 대중교통 인프라를 바탕으로 상수역, 합정역, 망원역, 연남동으로 무한확장했습니다. 성수동 역시 2호선과 수인분당선을 낀 사통팔달의 교통망과 배후의 대학가(한양대/건국대/세종대 등)를 갖추고 있고 지형이 평탄하여 동서남북 어디로든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특히 성수역 북측과 연무장길 동측에는 여전히 개발 가능한 필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향후 성수전략정비구역과 자양동 재개발이 완성되어 배후 주거 수요까지 더해지는 것까지 고려하면, 성수동의 성공은 어쩌면 이제 막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성수동의 성공에서 공공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성수동은 민간의 자생적 에너지가 주도적으로 작용한 곳입니다. 하지만 공공의 역할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공공이 무언가를 성공시키기는 어려워도 막거나 망칠 수는 있거든요. 성수동의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성동구청이 전략적으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전적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다른 상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초기부터 지역상생협약을 체결,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상권이 견조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인센티브 중심의 정책: 성동구청은 신축 시 빨간 벽돌 외관을 채택하면 용적률과 건폐율에서 혜택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로써 빨간 벽돌이라는 성수동의 상징적인 도시 풍경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아직 많은 유권자들과 정치인들은 과거 경제개발시대의 관 주도 개발사업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관의 역할은 민간을 어떻게 끌어들이고 민간이 더 활개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무리한 관 주도 사업으로 인한 혈세 낭비를 피하고,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례가 성수동 북측의 소규모 상권입니다. 성수역에서 북쪽으로 500m 가량 떨어진 지역에 성수2가3동 공영주차장을 중심으로 힙한 카페와 이탈리안 레스토랑, 브런치 가게들이 모여 있는 조용하고 감성있는 상권입니다. 메인 상권(연무장길, 성수역 카페거리)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 지하철역과 가깝지 않은 곳에 상권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멋지지도 않고 거대하지도 않은 “공영주차장”이었습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멋지고 화려한 랜드마크를 짓는 것보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자체의 본연의 기능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오늘날 관의 핵심 역할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더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판을 짜는 것'에 있습니다. 무리한 예산 투입보다는 입지 분석을 통해 적절한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며, 시장의 부작용은 완화하는 정책 기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지방자치의 진정한 의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