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1
지인이 대학생 멘토링 행사에 멘토로 다녀와서 남긴 기록이다.
대기업 취업을 꿈꾸는 대학생들이 한 대기업 멘토에게 몰려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그 멘토가 취업을 고민하는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네가 AI보다 잘할 수 있는 게 뭐 있어?"
학생들은 이것저것 답해보려 했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결국 실망하는 표정으로 하나 둘 자리를 떴다고 했다. 아직 사회에 첫발도 내딛지 않은 청년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 멘토의 말이 폭력적이라고 느끼면서도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번역가, 보조 연구원, 콜센터 직원, 법률 보조, 회계 업무의 상당 부분이 이미 자동화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쉬었음’ 청년은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학은 지금까지 효율이 오르고 파이가 커지면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더 높은 효율을 만들어내면서도 더 많은 일자리를 없애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빅테크들이 번 돈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는 것이 있다.
인간은 단순히 소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쓸모 있다는 감각, 무언가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 그 효능감이 인간 존엄의 핵심이다. 일은 생계 수단이기 전에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이자 자존감의 근거였다.
3
인간은 달리기 경기에서 자동차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달리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마라톤은 올림픽 종목으로 남아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땀을 흘리며 달린다. 심지어 유행이 되기도 했다. 달리기의 의미가 속도 경쟁에만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계를 넘는 경험이자, 살아있다는 감각이고, 함께 뛴다는 교감이다.
노동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AI보다 잘할 수 있는 게 뭐 있어?"라는 질문은, 인간의 가치를 오직 생산성 경쟁의 맥락에서만 묻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일하는 이유가 단지 더 빠르고 정확하기 위해서였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기계보다 열등한 존재였다. 프레임 자체가 잘못된 질문인 것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려는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AI와의 비교 우위가 아니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의욕, 부딪히며 배우는 과정, 그 안에서 자신만의 쓸모를 발견해 나가는 시간이다. 그 기회를 주지도 않고 의욕을 꺾어버리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사회의 실패다.
아직 달려보지도 못한 청년들에게, 우리는 자동차와 경주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왜 달리고 싶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4
한 세대 전체가 의욕과 효능감을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자존감을 잃은 대중은 단순하고 강렬한 메시지에 취약해진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실업과 무력감에 빠진 유럽의 시민들이 파시즘의 손을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빵만이 아니었다. "당신은 중요한 존재"라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언제나 분노와 결합되어 팔렸다.
AI시대에 이 구조는 더 정교하게 재현될 수 있다. 알고리즘은 개인의 불안과 분노를 정확히 포착하고 증폭시킨다.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와 소속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누군가의 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 누군가는 정치인일 수도, 연예인일 수도, 기업가일 수도 있다(통칭해서 인플루언서라고 하자). 그 중 누군가는 더 적극적으로 대중들을 조종하고자 할 것이다.
AI 기술을 소유한 소수의 기업과 그것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인플루언서들은, 대중의 무력감이 깊어질수록 자신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세계에서 살아간다. 스스로 판단할 역량과 자존감을 잃은 사람들은 더 쉽게 휘둘린다. 표는 여전히 한 사람에게 한 표씩 주어지지만, 표의 행방은 인플루언서가 좌지우지한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교주들의 과두정이 된다.
5
“경제성장”의 의미를 생각한다.
GDP가 오르고 생산성이 극대화되는 것, 그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번영하는 사회에서 존엄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경제의 목적은 인간이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그로 인해 인정받는 구조. 그것이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것이다. 나아가, 인간이 의미를 잃지 않은 경제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물적 토대가 될 것이다.
어쩌면, AI시대를 맞아 경제성장에 대한 고민은, 인간이 존재의 의미를 어디서 찾는지에 대한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