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AI 사회를 만들 것인가?

드디어 공개된 대한민국 AI행동계획

by 세르반다

정부가 지난 2월 25일 AI 3대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담은 <대한민국 AI행동계획(이하 “AI행동계획”)>을 발표했습니다. AI행동계획은 AI기본법 제6조에 따라 수립하도록 되어 있는 법정 기본계획으로 앞으로 3년간 인공지능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AI G3 강국 도약’과 ‘AI 기본사회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이 계획은 인프라 구축부터 산업 내재화,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 마련까지 아우르는 범국가적 실행 전략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EU, 일본은 작년에 AI 행동계획(Action Plan)을 이미 내놓은 바 있는데, 이 글에서는 대한민국 AI행동계획을 내용을 살펴보고 주요국과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예산 규모가 제한적인 한국은 인공지능 발전 목표를 뾰족하게 설정해야 하고, 국제협력도 적극고려 해야 한다는 제언을 다른 채널로 여러 차례 한 적 있습니다.


이번 행동계획은 어떨까요?


AI행동계획: 3개의 정책축과 12대 전략분야, 99개 정책과제


AI행동계획은 크게 3개의 정책축과 12대 전략분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I 혁신 생태계 조성

AI 인프라 역량과 활용 역량을 확충함으로써 AI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국가 경쟁력 강화 정책축입니다.

AI 고속도로 구축: 2028년까지 최소 5만 장 이상의 첨단 GPU를 확보하고, 국산 AI 반도체(NPU) 생태계를 강화하여 컴퓨팅 주권을 확보하며, 국가 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통해 민간과 공공의 데이터를 연계함

차세대 기술 및 모델 확보: 범용 인공지능(AGI) 및 피지컬 AI 등 차세대 핵심 기술을 선점하고, 행정·의료·과학 등 각 분야에 활용될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을 2027년까지 확보함.

인재 양성 및 규제 혁신: 전 국민의 AI 기본 역량을 강화하고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는 한편, AI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 체계로 전면 전환하고 저작권·개인정보 활용 기준을 정비합니다.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AX)

AI를 특정 산업의 도구를 넘어 국가 전체 시스템을 바꾸는 원천으로 활용하여 모든 영역의 혁신을 추진합니다.

산업 AX: 제조업 자율 제조 보급률을 40%까지 높여 글로벌 1위 달성을 추진하며, 금융, 물류(자율주행), 바이오·헬스 등 주력 산업에 AI를 내재화합니다.

공공 AX: 모든 행정 서비스를 AI 기반으로 재설계한 'AI-Native 정부'를 구현하여, 국민이 서류 제출 없이 열람 승인만으로 행정 서비스를 누리고 사고·재난을 AI로 예측·대처하는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지역 및 국방·문화 AX: 전국 5개 권역과 3개 특구(5극 3특)를 연결한 지역 AX 혁신 벨트를 조성하고, AI 기반의 지능형 국방 체계 구축과 K-콘텐츠 산업의 AI 결합을 추진합니다.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

기술 경쟁을 넘어 가치와 신뢰의 경쟁에서 앞서나가며, AI의 혜택을 온 국민이 누리는 포용적 사회 모델을 제시합니다.

AI 기본사회 실현: 기술 발전에 따른 지역·세대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전 국민 AI 역량 대전환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AI 윤리 원칙을 고도화하여 국민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글로벌 이니셔티브 강화: '글로벌 조율자'로서 국제 AI 표준과 규범 형성을 선도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APEC) 등과 협력하여 한국형 AI 모델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합니다.


AI행동계획에 대한 평가


이번 AI행동계획은 지금까지 보았던 선언적인 계획들과 달리 매우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담고 있어 정부의 구상이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AI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제반 인프라를 모두 함께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납니다. 엔비디아의 GPU를 확보하는 것 뿐 아니라, AI데이터센터에 대한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을 시급하게 도입하려 하고 있고, 기후부에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합리적으로 반영함으로써 AI로 인한 전력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수도권의 데이터센터 입지 유인을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되었습니다.


둘째로, 기술안보 및 기술주권에 대한 고려가 AI행동계획 전반에 걸쳐 확인됩니다. 소버린 AI 및 독자 모델 확보를 통해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산 AI 반도체(NPU)의 개발 및 제조 역량을 강화하여 외산 GPU에 대한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기술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또한 AI 관련 첨단 기술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등 AI를 안보자산으로 보고 있음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셋째로, 한국이 가진 강점을 고려한 특화 전략이 꽤 뾰족하게 잘 드러났습니다. 거대 언어 모델(LLM)에만 매달리지 않고, 로봇과 결합한 피지컬 AI, AI 제조 시스템 구축, K-문화콘텐츠 산업 AX 촉진, AI 기술 도입을 통한 방산 고도화 등 한국의 제조업 역량과 문화 역량을 연계한 전략이 돋보입니다.


마지막으로, “AI 기본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신기술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와 그 범위를 국내에 국한하지 않고 글로벌 단위로 확대해 포용적 디지털 역량 사회의 모범이 되겠다는 의지까지 드러낸 점은 크게 평가할만 합니다.


주요국 비교


미국, 중국, EU, 일본 등 주요국과 AI행동계획을 비교하여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미국

“Winning the Race (경쟁에서 승리하기)”라는 AI Action Plan의 제목처럼, 미국은 글로벌 패권 유지를 목표로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민간 주도의 무한 경쟁과 규제 철폐에 집중합니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마중물이 될 펀드를 조성하고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는 등 보다 정부 주도적 성격이 강합니다.


중국

중국은 강력한 국가 통제 아래 AI를 통한 사회 안정과 제조 강국(AI+)을 지향합니다. 한국의 ‘피지컬 AI’ 및 제조 AI 전략은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으나, 한국은 민관 협력, 민주적 가치, 신뢰성을 차별화된 무기로 내세우고 있고, 국제 협력 및 글로벌 거버넌스 선도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EU

EU는 “The AI Continent Action Plan(AI 대륙 행동계획)”을 2025년 4월 발표했습니다. EU는 2026년 AI 기본법 시행을 통해 인권과 안전에 방점을 둔 강력한 규제 표준을 제시하면서 유럽적 가치를 AI 윤리 표준으로 정착 시키고자 합니다.


다만 이러한 방향성이 지나친 규제로 작용해 신기술 개발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AI 기업 육성을 위해 일부 규제를 완화하거나 시행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EU의 개별국가들이 미국이나 중국의 AI과 경쟁하기 어려운 만큼 대륙적 연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EU는 산업진흥에 방점을 찍은 한국과는 가장 큰 차이가 있으면서, 동시에 한국과 EU는 AI 산업에 있어 서로의 강점이 거의 겹치지 않아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입니다.


일본

일본은 한국과 유사하게 인프라 확보와 AI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고령화에 따른 돌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한국과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두 국가 모두 미국/중국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므로 적절하게 협력할 수 있는 분야도 대두될 수 있어 보입니다.


도전과제


정부의 AI행동계획은 원대한 비전을 품고 많은 고민을 담아 수립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보입니다.


첫째, 창작자의 권리와 데이터 수집 및 학습 사이의 긴장관계를 얼버무리고 넘어간 듯한 인상이 강합니다. AI 행동계획에서는 창작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AI기업이 적법하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공정한 거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AI 모델 고도화를 위한 저작물 수집 및 학습을 면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와중입니다. AI 행동계획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정부가 산업 진흥에 훨씬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클 것입니다.


둘째, “민관협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계획의 상당 부분이 국가 주도 정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주도로 선정하는 “국가대표 AI” 선발과정에서 탈락한 네이버, NC, 카카오가 모두 재도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삼성은 자율적으로 AI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민관 협력이 정말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국가적 역량을 모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두 의문이 드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AI행동계획이 산업적 성과에 집중하면서 인간의 가치가 소외되고 있습니다. AI 행동계획에서 인간은 인적 자원, 데이터 공급원, 서비스 소비자로서 존재할 뿐, 기술 도입이 삶의 질과 노동의 가치에 미치는 본질적인 영향에 대한 고민은 부차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산업 진흥을 위한 규제 완화 기조 속에서 민주적 가치가 후순위로 밀리고, 시민의 권리는 방어적인 위치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넷째, AI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가 전무합니다. AI행동계획이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대응을 언급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의 판단과 사고, 공론화 과정을 기계화, 자동화, 외주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기능을 보다 근본적으로 저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좀 더 근원적이고 철학적으로 AI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고, 새로운 기술이 민주주의 진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나, 이러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어떤 AI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한국의 AI행동계획은 하드웨어-인프라-사회제도를 하나로 묶어내는 데 성공했고, 이는 다른 주요국들의 행동계획과 가장 큰 차이라고 보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AI행동계획은 단순한 산업 진흥 정책을 넘어 “어떤 AI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 질문에 충실히 답해낼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단순한 기술 강국을 넘어 AI 문명을 이끄는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AI행동계획에 대해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에 다소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부는 AI행동계획(안)의 작성 과정에 관하여 전혀 공개하지 않았고, 2025년 12월 16일에 초안을 공개하며 2026년 1월 4일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만 시민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연말연시라는 특성까지 고려하면 시민들의 폭넓은 참여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H:AI도 진작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의견제출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AI행동계획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추격자의 입장에서 추진해 온 산업 진흥 정책의 수준을 극복한 점은 환영할만합니다. 여기에 AI시대를 맞은 인간의 자리와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이 고민이 더해진다면 AI로 인한 사회 대전환을 잘 대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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