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아트를 찾아서
"아, 저거 예쁘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키친의 바 스툴에 앉자마자, 키친의 선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뭐야?"
나의 키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들이다. 엄마에게 영상통화로 보여주자, 엄마는
"그게 뭐야? 왜 머리를 빠글빠글 파마를 했니?"
"아니, 이건 수영모야, 엄마."
우리의 키친에 오기 전에, 이것은 옥스퍼드 써머 타운의 작은 갤러리인 '수잔 웨이즈만'의 창가에 있었다.
늦은 여름, 테니스 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기다리며 한참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얇은 엽서를 세워둔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구운 얇은 세라믹에 그린 손바닥만 한 그림인 것을 알았다.
갤러리에 놓인 여러 개의 작품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었다. 파마가 아닌 수영모를 쓴 아이는 수영장에 있었던 것이고, 주변엔 이국적인 핑크색과 녹색의 선인장들이 풍성하게 피어있다. 누군가가 던진 비치볼이 공중에 높이 떠 있는 그림도 있다. 심플한 노랑 수영복에 코럴색 수영모를 쓴 아이는 시원하게 긴 팔다리를 움직이며 아주 자신감 있는 얼굴로 수영을 한다.
수영모에 꽃을 단 아이는 몽골 아이처럼 둥글고 홍조를 띤 얼굴로 그저 미소를 짓고 있다. 다른 아이들이 수영하는 걸 감상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아이는 수영실력의 향상보다는, 그냥 늦여름의 지금 이 시간을 즐기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후 그 길을 지나칠때마다 다가가서 그림을 보았지만, 하나씩 솔드sold를 뜻하는 빨간 동그라미가 붙는 것을 보고 점점 불안해졌다. 갤러리 안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한 날, 뚫어져라 윈도우에 놓인 그림들에 레이저를 쏜 뒤에, 드디어 사라 와이즈만 Sarah Wiseman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경을 쓰고 너무나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사라는 반갑게 맞이했다. 아까부터 윈도 앞에서 레이저를 쏘고 있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
맨 처음에 뭐라고 말할지를 생각 안 해보고 들어왔다.
나도 갤러리에서 일할 때가 있었는데도, 손님으로 들어설때는 언제나 어색하다. 그때는 나도 꽤 능숙하게 "네, 손님"하고 응대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창가에 있는 세라믹 작품들이요. 작은 스몰 아트들이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사라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클레어 니콜스의 작품들이죠. 너무 좋지요?
저와 대학원 동기랍니다. 두 아이 엄마인데, 그렇게 열심히 작업을 할 수가 없어요. 세라믹으로 여러 작업을 해요. 실험적인 작업도 많고요.
이 작품들은 '풀 파티'라는 저희 전시에 맞춰서 클레어가 새로 만들어서 보내준 소품들이에요. 팬이 많아서 소품들은 보통 예약으로 판매가 끝나곤 해요."
"전, 저 여자아이 표정이 좋아요. 왜인지 모르지만, 허공에 떠 있는 빨간 공도요..."
사라와 즐겁게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몇마디 나누디가, 그녀는 갤러리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해주었. 사라 와이즈만 갤러리는 아주 고가의 잘 알려진 작업보다는, 지역작가를 중심으로 취향 있게 전시를 꾸렸다. 그녀에겐 걸고 싶고, 갖고 싶은 그림을 고르는 탤런트가 있는 듯했다. 데이빗 알벳의 작품은 당장 걸고싶었다. 어두운 깊은 군청색 밤하늘에 별이 뜬, 야자수와 바닷가의 그림이었다. 작품 옆에 붙은 가격을 보니 1200만 원 정도다." 언젠가 다시 올게..."
이날, 나는 아주 어렵게 세 가지 작품을 골랐다. 꽃을 단 느긋한 둥근 얼굴의 소녀, 선인장 옆을 날아가는 산호색 비치볼, 그리고 핑크색 선인장. 클레어 니콜스의 소품 작업은 한 점에 45파운드, 7만 원 정도였다.
"친구들에게 선물로 줄려고요." 욕심을 숨기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콜렉터 이메일 리스트에 올리고, 클레어 니콜스와 새 전시를 하게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세 개의 손바닥만한 작품을 예쁜 사라 와이즈만 갤러리 쇼핑백에 넣고 달랑달랑 갤러리를 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아무에게도 그림을 주지 못했다.
비치볼은 내 방의 책상 위에. 선인장과 소녀는 함께 키친 선반에 있게 되었고, 나는 매일 이 작은 그림들을 본다.
" 좀 더 보고. 그릇은 쓰면 주기 어렵지만, 그림은 더 본다고 중고가 돼버리는 게 아니니까."
매일 같은 그림을 보면, 혹시 질리지는 않느냐고, 친구가 물었다.
매일 보니까, 그림은 더 좋아지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