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 커플에겐 너무 벅찬 그 것
남들 다 하는 스튜디오 웨딩 촬영은 싫었다.
특히, A커플이 찍은 웨딩 사진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심지어 비슷한 옷을 입고 찍힌 B커플의 웨딩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굳게 결심했다. 절대 스튜디오 웨딩 촬영은 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생각했던 '작은 결혼식'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부모님의 재정 도움 없이 우리가 모아놓은 돈으로 하는 결혼'이었으므로, 전문 작가를 섭외하는 것도 적지 않은 지출이었다. 그리하여, '돈' 뿐만 아니라 '노동'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셀프 촬영을 하게 되었다.
드레스를 입고 찍은 것은 아니므로 진짜 '웨딩 촬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데이트 스냅'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스튜디오 사진은 안 찍을거니까, 우리끼리 기념 사진이라도 찍을까?' 해서 찍게 된 거니까 웨딩 촬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첫 번째 웨딩 촬영은 결혼 1년 전 여름, 그러니까 2015년 8월 초에, 남자친구가 여름 휴가를 틈타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다. 그가 미국에서부터 낑낑대며 싸들고 온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단둘이 촬영했다. 이 때의 촬영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사진을 남기기 위한 것, 다른 하나는 셀프 웨딩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우리는 아직 결혼 날짜도, 구체적인 하객 수나 대략적인 예산도, 머리 속에서 자동재생되는 그림도 명확히 없었던 초짜들이었으므로, 정말 '장소를 탐색하자'는 순진무구하고도 단순한 생각 하나만으로 경남 일대의 작은 결혼식 장소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feat. 내리쬐는 8월 초의 태양과 무거운 삼각대)
(* 그 때는 대관료를 내고 빌리는 상업 용도의 장소들은 생각도 하지 못했고, 우선은 지자체 차원에서 무료 또는 소액으로 빌려주는 장소들을 위주로 돌아다녔다. 참고로, '작은 결혼식'으로 검색하면 지자체 위주, '셀프 웨딩'으로 검색하면 상업용 장소 위주로 검색 결과가 나오는 느낌적 느낌. 우리는 '작은 결혼식'이라는 단어에 더 꽂혔었다. 장소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3. 예식장 결정' 편 참고)
우리 커플은 평소에도 셀카 말고는 사진을 잘 안 찍는다. 그 흔한 셀카봉도 귀찮아서 안 쓰고, 남들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건 더 성가시다. 그런 우리에게 DSLR과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위치와 포즈를 잡고, 타이머를 맞추고, 타이머가 끝나기 전에 쪼르르 뛰어와서 사진을 찍고, 다시 쪼르르 뛰어가서 찍힌 사진을 확인하는 그 절차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였다.
깜빡거리는 타이머에 포즈는 끔뻑이며 경직되었고, 타이머를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던 사진들은 초점이 안 맞거나 구도가 이상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의상이나 소품에 대한 준비도 거의 없어서 둘 다 회색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청치마, 쪼리/샌들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다. 게다가 카메라도 요즘 나오는, 자동으로 보정 이쁘게 되는 그런 카메라가 아니라, 남자친구의 여동생이 쓰다 물려준(?) 옛시절의 구형 DSLR이었으므로 우리가 애초에 기대했던 드라마틱, 뽀샤시, 로맨틱한 느낌도 없었다. (안 되면 장비 탓)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그 때 찍은 사진들 중 그나마 제일 잘 나온 무보정 사진 두 장을 공개한다. (차마 우리의 구린 모습은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그림판으로 쓱싹쓱싹)
결과적으로, 평소에 카메라와 삼각대를 활용한 사진 촬영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 아니라면 단 둘이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촬영하는 것은 비추천. 당신이 만약 저질 체력이라면 더욱 비추천. 애써 타이머 맞춰 찍은 사진에 다크써클만 남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웨딩 촬영은 2015년 11월 말, 그러니까 미국의 Thanksgiving 시즌이었다. 이 때는 내가 휴가를 내서 미국으로 갔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제일 많이 데이트를 한 곳도 뉴욕이었고, 때마침 절친한 친구가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또 내 동생이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차에 뉴욕 여행을 생각 중이었으므로, 모두의 지지를 받으며 우리는 뉴욕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친구와 동생이 사진작가 역할을 해주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자연스러운 사진을 원했으므로 뉴욕에 있는 내내 틈만 나면 포즈를 잡았고, 옆에 있던 동생이나 친구는 너무나 고맙게도 기꺼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물론 그들도 전문 사진가가 아니기 때문에 구도가 이상하거나 흔들린 사진도 매우 많았지만, 나와 남친이 여름에 했던 생쇼에 비하면 멋진 사진들이 꽤 많이 나왔다.
커플룩까진 아니더라도 나름 비슷한 컬러 톤으로 맞춰 입으려고 노력했고 (컬러가 무채색인게 함정), 풍선이나 꽃다발 같은 소품을 활용하여 포인트 컬러도 신경썼더니, 신경쓰지 않았을 때 보다 사진이 훨씬 좋았다. 물론 다른 커플들의 셀프 웨딩 사진들과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의 신경이지만... 우리는 '내추럴'이 컨셉이었으므로 적당한 선에서 포인트를 잘 줬다고 믿고 싶다.
각자가 좋아하는 (유행을 타지 않는) 평상복을 입고, 편한 신발을 신고, 화장이나 머리도 간단히 하고 찍었는데, 그렇게 했던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10년 뒤에 다시 사진을 봤을 때, 너무 오글거리거나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여름에 사용한 DSLR을 그대로 사용했고, 나중에 남자친구 동생의 손을 거쳐 보정된 사진들은 아래 사진들보다 훨씬 더 밝고 예쁘다.
촬영 장소는 센트럴 파크, 어퍼 웨스트/이스트 사이드, 현대미술관(모마),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덤보, 브루클린 브릿지, 배터리 파크 등이었다. 사실 상 동생의 뉴욕 관광 코스이자 과거 우리의 데이트 코스였다. 가장 사진을 많이 찍은 곳은 센트럴 파크.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자친구는 뉴욕 촬영을 구상하던 단계에서, "우리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위대한 개츠비' 스타일로 입고 찍을래?"와 같은 도움 안 되는 말을 남발했었다. 1920년대의 미국 갑부 스타일이라. 애써 잡은 '내추럴' 컨셉이 송두리째 흔들릴 뻔 했다.
여자의 직감을 믿어야 한다.
나는 무조건 자연스럽게 찍어야 한다는 나의 직감을 믿었고, 그 결정에 한 치의 후회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