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2015. 10. 28.) 박약재(博約齋) 이야기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집에도 이름이 있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름이 있으나 집에는 堂號(당호)가 있는 집도 있고, 없는 집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예전처럼 당호가 흔하지 않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自雲堂(자운당)이라는 당호를 가진 집에서 살고 있다. 40대 중반 서예를 배우던 시절 수강생들을 이름도 없는 서예대전에 입선시키겠다는 열의가 대단하셨던 선생님은 서예를 배운지 몇 달도 안 된 나에게 “공모전에 내야 된다.”고 하시면서 號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周易(주역)을 배울 때 義峰(의봉)이라는 호를 받았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호는 서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命理를 잘 안다는 분한테 ‘自雲(자운)’이라는 호를 지어 오셨다. 선생님은 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스스로 ‘自’가 들어간 호를 지어 오셔서는 “박현우 씨의 사주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잘 풀리는 사주라고 해서 스스로 ‘自’자와 내 이름의 끝자인 비 ‘雨(우)’와 어울리는 구름 ‘雲(운)’자를 합쳐서 自雲(자운)이라고 호를 지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 대금을 배우던 시절 알게 된 서각 하시는 분이 사진과 같은 自雲堂(자운당)이라는 조그만 편액을 서각해 주셔서 갖게 되었지만 편액을 걸만한 형편이 아니어서 20여 년간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가 2012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자운당이라는 편액을 받고 20여 년간 당호를 걸지 못하고 살았지만 自雲(자운)의 뜻인 ‘자유로운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아 왔다. 물론 나의 호처럼 내가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지 않게 살 수 있게 배려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늘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나보다 책을 엄청나게 많이 갖고 멋지게 서재를 꾸미고 사는 분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방을 하나 차지하고 있는 서재가 있다. 당호처럼 내 서재에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떤 이름이 좋을지? 어떻게 짓는 것이 좋을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한학을 전공한 벽파제라는 친구한테 논어를 배우면서 ‘博文約禮(박문약례)’라는 글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 서재이름을 ‘博約齊(박약재)’로 지었다.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건물을 博約齊라고 하는데 인터넷이나 대부분의 책에 博約(박약)은 “학문은 넓게 하고, 예는 간소하게 한다.” 또는 “예는 줄인다.”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으나 친구 벽파제는 “학문을 넓게 익히고, 예로 요약한다.”로 해석을 해야 올바른 해석이라고 하면서 예의 뜻은 사회생활할 때 사람들이 지켜야 할 법도나 도리뿐만 아니라 정리된 요체, 기준, 규범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올바른 해석이 된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博約(박약)에 대한 친구의 해석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박약재의 뜻이 내 생각과 맞아 내 서재 이름을 博約齊(박약재)라고 지었다. 세상의 모든 공부는 널리 박학하게 공부를 해서 내용을 간명하게 정리해야 한다. 버트런트 러셀은 「서양철학사」로 博約(박약)을 한 것이고,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로 박약을 한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박약을 할 것인가?”가 아직 내 인생의 화두이지만 나의 서재 博約齊(박약재)에서 그동안 살면서 경험한 것, 책에 읽은 내용 등을 정리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세상은 결국 소통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와 같은 소통을 하고 싶기도 하고,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세일즈맨처럼 고객에게 수백, 수천통의 편지를 쓰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스마트폰 사진작가 김민수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된 인터넷 사이트 ‘다음’의 브런치brunch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博約齊 通信文(박약재 통신문)」이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면서 세상과 소통을 하고 있지만 아직 소통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