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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빵장수 May 19. 2019

나를 조금 아프게 만드는 것들

나를 조금 아프게 만드는 것들


오늘 몇 년 만에 가족과 낚시하러 왔다. 아빠는 낮부터 계속된 낚시 준비와 낚시 행위, 도구를 세팅하고 떡밥을 달고 고기를 기다리고 계속 반복되는 이 과정을 하느라 지쳐 잠들었다. 그래서 찌를 보기 위해 내가 아빠 자리로 투입되었다. 찌가 수면 위로 서서히 올라오거나 갑자기 푹 꺼지면 물고기가 잡혔다는 신호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찌는 여전히 물살에 잔잔히 흔들리고 있고, 온 세상은 어둡고, 방갈로 문 위쪽에 달려있는 거미는 아까부터 집짓기 바쁘다. 찌를 보고 있자니 저수지라서 물결이 잔잔하고 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얼마만인가. 마음이 진정되고 정리되고 버릴 것을 버리게 되고 사색이 자연스러운 낚시터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이제껏 바쁘고 정신없다는 이유로 애써 급히 덮어놨던 일들이 떠오른다. 잔잔하고 일정한 물결을 보면서 나를 잔잔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큰 바람과 큰 물결들 그로 인한 상처가 떠오른다.





서두,

올해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은 아무래도 사무 알바를 한 달간 한 것이다. 나름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때 기억나는 일은 대략 이렇다.



하나,
사수는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출근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출근 전 알바 합격 절차가 있었는데, 이후 전화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며 자신이 아주 바쁘다고 통성명했기 때문이다. 편의상 그를 K(케이)로 칭한다. 케이는 내게 연간 자료를 정리하고 인사이트를 뽑는 업무를 맡겼다. 계약서상 출근 일자는 약 한 달이었고 나는 오직 해당 업무를 목적으로 고용된 사람이였기에 30일간 프로젝트를 맡았다.

케이는 실제로도 매우 바빴다.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나와달리 미팅이 많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야근도 있었다. 초반에는 출근한 지 얼마 안 된 나를 배려하며 이것저것 설명하고 카톡으로도 안위를 물었다. 아침에 매일 할 일을 정해주면 내가 처리하여 퇴근까지 끝내고 파일을 공유하는 식으로 매일매일이 지나갔다.


그러던 중 일한 지 몇 주지나 5일 정도 케이가 바쁜 스케줄이 몰릴 때였다. 나는 출근한지 일주일정도 지난 후 매일 아침마다 할 일을 급하게 엉성하게 정리해서 주는 것 이상하고 언짢았다.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정작 프로젝트 목표도 계획도 없는 눈치는데 일단 아르바이트는 고용했으니 하루하루 무차별적으로 업무를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파일과 참고사항을 정리해 메일로 공유했고, 카톡으로도 확인부탁을 남기고 집에 갔다. 최소 5일간 파일 체크를 잘하지 않는 눈치였으나 나는 바쁨과 피곤에 지친, 그 피로를 내게 매일같이 말로 표정으로 토로하는 케이가 신경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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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 주 월요일, 케이가 나를 불렀고 목소리톤에서 싸늘함이 느껴졌다. 약 5일간의 업무 진행상황에서 내가 만들어놓은 자료 중 실수가 있었고 이를 케이 본인이 발견한 것에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이런 실수는 솔직히 조금만 더 생각하면서 만들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나는 길고 긴 인턴과 회사 생활을 통해서 공동 업무를 진행하는 모든 상하 직급 관계에서는 크로스체크, 즉 상호 확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녀는 5일간 본인이 어떤 확인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 사이에 나온 실수를 내게 몽땅 질책하고 있었다. 지금 너무 바빠서 새끼손가락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처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케이가 새끼손가락으로 하는만큼보다도 더 못하고 있는걸까. 내 실수에 대해 조금의 미안함도 자책도 이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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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는 밥을 마신다. 먹기보다 마신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또는 쪼아 먹는다 정도...?


회사가 위치한 곳은 물가가 높은 서울 초역세권이다. 한 달 단기 알바였지만 식대도 지원해주지 않는 회사에서 매일 매끼 1만 원 전후의 식사는 큰 부담이었다. 가능하다면 도시락을 싸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케이는 늘 속이 연약하다고 본인이 입으로 표현했고, 그날도 별로 배는 안 고프니 가볍게 먹자는 뉘앙스로 말했다. 나는 거의 하루 이틀을 빼고 매일 아침을 거르고 왔기에 점심시간에는 늘 허기졌다. 어쨌든 브런치를 먹으러 간 곳은 상상초월의 물가였다. 한 접시에 1만 5천 원~2만 원 사이의 브런치라니... 마트에서 고기를 사거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어도 며칠은 사다 먹을 수 있는 가격대였다.


눈물을 머금고 기다리던 브런치가 나왔다. 한 접시 가득 나와서 아까운 돈은 잠시 잊고 먹는데 케이는 10분쯤 지나 식사를 멈췄다. 접시에는 반이상 값비싼 계란과 샐러드와 식빵조각이 남아있었다.


내가 이 사무 알바를 하면서 몰래 가진 습관 하나가 식사시간을 재는 것. 케이는 본인이 먹성 좋고 잘 먹는다 말하지만 식사시간은 언제나 10분 언저리에서 끝난다. 나는 잔반 남기는 것도 마음이 불편할뿐더러 이 비싼 만 칠천 원의 브런치를 반도, 3분의 1도 아닌 방울토마토와 풀만 먹었는데 끝나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이날만큼은 나도 웬만하면 본전을 뽑아야겠다 하고 대놓고 핸드폰을 하며 식사 종료 표시를 드러내는 케이를 앞에 두고 15분은 더 먹었다. 케이는 뜨거운 국밥은 약 10분에 푸짐한 한식도 15분이면 홀로 식사를 끝낸다. 옆자리에 팀장과 본인보다 연차가 높은 과장이 있으면 한 숟갈씩 뜨며 기다리지만, 나와 단둘이 식사를 할 때면 핸드폰을 하거나 자리를 뜨고 싶다는 의사를 명확히 말한다.

케이는 회사 첫 입사를 굴지의 대기업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워낙 보수적이고 꼰대 집단이었다며 말해주었다. 어떤 밥을 먹어도 10분 안에 먹고, 뜨거운 국밥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빨리 먹는 습관이 생기고 그때 많이 체하고 고생하고 많이 못 먹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말을 해주는 케이를 보며 케이 본인의 식사와 대기업 꼰대의 그것가 무슨 차이가 있나 궁금했다. 혹시 모르고 있는 걸까.



넷,
하루는 옆팀과 식사를 했다. 옆팀은 건장한 남자 셋. 우리 팀은 나를 제외해도 여성 세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케이는 오늘 옆팀과 먹게 되었는데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평소에 늘 근처에 있던 사람들과 먹게 되는 것이니 나름 좋은 것 같아서 괜찮다고 했다. 애초에 결정하고 나서 물어보는 것이었기에 거절하기에도 좀 이상했지만.

오늘은 팀 비로 사는 거라며 고급스러운 식당에 갔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가득했다. 제발 오늘만은 케이가 많이+오래 먹길 바랐다.

케이는 7명의 자리 중 나를 일부러 가장 중간에 앉혔다. 나는 옆 팀분들과 대화 자체가 처음인데 안녕하세요만 한 사이인데 나를 왜 사이에 앉힐까 궁금했다. 덕분에 2개의 테이블 중 나는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옆 팀분들과 접시를 공유하며 먹었다. 자리에 앉기 전 식당에 들어오며 케이는 귓속말을 했다.

'이런 자리에서 어색해하면 끝장인 거 알죠?'

식사 전 귓속말과 자리 배치. 나는 케이에게 무슨 존재인 걸까. 나는 이 식사자리에서 무슨 역할을 배정받은 걸까.

케이는 내 옆에 앉아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중간중간 괜찮아요? 불편하죠? 라며 걱정의 말과 눈빛을 건넸다. 나는 실제로 초면인 3명과 딱 붙어 식사를 하느라 약간 어색함 있었으나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옆 팀분들도 가장 어리고 초면인 나를 배려해 많은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나는 왼쪽에 앉은 케이가 가장 불편했다. 케이는 실제로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식이 나올 때마다 적당히 각자 접시로 덜어먹는 형태의 식당이었는데, 케이는 가장 구석에 앉았음에도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굳이 벌떡 일어나 음식을 덜어 옆 팀분들에게 건넸다. 또 팀장에게 새우볶음밥을 직접 개인접시에 덜어주었다. 나는 여기서 케이가 정말 초긴장 상태구나 생각했다. 팀장은 평소 해산물을, 특히 새우를 아예 먹지 않는다. 한 달의 짧은 근무에서도 늘 식사자리마다 새우가 있는지 체크하는 팀장을 보며 파악했다. 팀장은 자신은 새우를 안 먹는다고 말했고 케이는 당황하며 다시 접시 속 밥을 치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가. 케이의 무언의 압박과 이 식사자리 속 유일한 20대, 대학생에 가까운 나이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부응하고자 힘썼다. 요즘 20대는 뭘 좋아해요? 뭐하고 놀아요? 란 시답잖은 질문에도 성의 있게 답하고, 최근 술자리나 유흥 따위에 신경 쓰기엔 알바와 취업준비로 바빴음에도 놀고 신나고 톡톡 튀는 생기발랄 20대 초중반 대학생 인척 답했다. 또는 친구들이 알려준, sns에서 핫한 문화나 핫플레이스도 공유했다. 스스로 말하면서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나는 매일 술을 마시지도 매일 친구들과 놀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몇 년 전 즐겼던 대학생활과 유흥에 대해 신나게 말하며 맞장구를 쳤다.  3대3 미팅같다는 말도 들었다.



마지막,
케이의 습성은 앞담화다. 회사로 복귀하면서 방금까지 식사를 같이했고 지금은 조금 앞서 걸어가는 세명의 남성을 가리키며 귓속말로 누가 가장 어려 보이나 물었다. 정말 알고 싶지 않고 피곤함이 밀려왔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남성분들의 외모를 재단하며 누구는 오빠 같고 누구는 아저씨 같다, 나이 진짜 모르겠지 않냐며 말했다. 나는 웃기지도 감동도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 그런가요 하며 걸어갔다.

알바 첫날, 인사팀과 알바 근로 계약서를 쓰고 기다리고 있는데 케이가 데리러 왔다. 그러고 나서 본인과 팀원 소개를 간단히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쾌하고 뭔가 열심히 일하다가 바삐 온듯한 분위기의 케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어서 케이는 팀장과 다른 팀원 한 명을 소개하며 오늘 나에게 인사할 때가 가장 밝고 친절한 모습일 거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그들은 친절했고 웃는 얼굴로 나를 정중히 맞이해줬다. 그중에 한 분은 나의 대학, 그리고 대학교 내 동아리 선배였다. 그녀는 케이가 본인 그렇게 소개한 줄 아직도 모를 것이다. 나는 케이의 당부와 달리 팀장님과 팀원과 많이 이야기할수록, 밥을 먹는 횟수가 잦을수록 더 좋고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반면 케이는 언제나 식사자리에서 불편해했고 식사 후 불편해서 체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입사 후 반년이 지난 케이가 그동안 늘 이렇게 밥을 먹어온건지 의문이었다. 언제나 조금은 과하고 의례적인 리액션을 열심히 하고, 경청하고 있다는 티를 내는 케이가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사실 케이 에피소드는 많이 남아있다. 본인은 사회초년생 시절 회사 특유의 '여자짓'이 두려웠다는 경악스러운 언어표현과 사례를 늘어놓는가 하면 이밖에도 뭔가 쎄-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나는 한 달간 근무를 마치고 조금의 미련 없이 회사를 나왔다. 케이 덕분에 나는 사람에게 지친다는 말을 이해했다. 모르던 사이였는데, 단 한 명인 데도 케이 덕분에 한 달간 머리와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쌓이는 카톡과 단체 카톡방에도 질려버렸다. 친구들과 선후배와 지인들이 싫어진 게 아닌데 카톡이 지치고 힘들고 넌덜머리가 났다. 실제로 한 달간 성격이 조금 어두워진 것 같았다.


낚시터에 와서, 좋은 풍경에 잔잔하고 평화로운 물결을 보다가 이일을 생각해버려서 심란하지만 이제 억지로 좋은 추억이었다며 미화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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