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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Jun 03. 2019

꼰대 아버지로부터 도망쳤는데, 남편이 꼰대였다

나의 불효에 우리네 조상님들이 화가 나기라도 하셨던 걸까

나의 아버지는 꼰대였다. 아니 지금도 꼰대인데 본인은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80년대 중반의 어느날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과거로 돌아갑니다... 정신이 아득해 집니다..


[8n년도, 최루탄 팡팡 터지던 서울 모 대학 재학 중이던 그는 학점이나 알바, 영어성적 따위 세속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투쟁을 이어갔다. 6월 항쟁이 끝난 뒤 모 대기업에서는 갓 대학을 졸업한 그를 모셔갔고, 이후 그는 지혜로운 와이프와 결혼해 토끼같은 자식들을 낳고 마당 딸린 단독주택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


그렇게 살아온 지 20여년이 흐른 뒤 어느날 결혼을 앞둔 큰딸은 그와 술을 마시던 중 화를 내며 짐을 싸들고 나가버렸다. “아 진짜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아빠랑 오백한잔조차 마시기 싫어하지! 완전 꼰대! 아.시.겠.어.요?” -The End-]


이 충격적인 불효 스토리 속 딸은 바로 나다. 하지만 나도 항변할 것이 있다. 진짜 나는 꼰대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법적으로 보장된 9시 출근을 내가 지킨다는 이유로 “최소 20분은 빨리 가야지.. 회사생활에 대한 기본이 안 돼 있구만..”이라고 혀를 찼으며, 입사시 편집장님께서 보장해 주신 ‘자유복장’을 유지하자 “미친것... 회사에는 회사에 입고 갈 옷이 따로 있는 건데...”라며 개탄스러워하곤 했다.

내 딸이라지만... 어떻게... 저러고... 회사를.... 망나니... 엉망진창...


여기서 중립기어 넣겠다고 생각했다면 잠시만! 더워 죽겠는 상황에서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상사도 아니고 아빠가 눈치준다는 이유로 발가락 안 보이는 구두에 커피색 스타킹을 신고 엉덩이에 땀차는 펜슬스커트를 입고 브래지어 안 보이게 캐미솔을 덧입은 뒤 얇은 블라우스를 입어야 하나? 내 상사조차 뭘 입든 정말 괜찮다는데 말이지.        


다른 회사보다 사내 분위기가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한 허프포스트에 다니면서 나와 그의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되었다. 내가 출근하겠다며 걸치고 간 하와이안 반바지와 회색 티셔츠 그리고 삼선쓰레빠를 본 그는 국정농단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꼰대인 게 아니라 내가 너무 심하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정신건강을 위해 내 옆자리의 포켓몬 볼 가방을 맨 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라고 적힌 티샤츠를 입고 출근하는 모 선배의 모습은 차마 보여드리지 못했다.

옆자리 선배 제공

진짜 데일리 출근룩임ㅇㅇ...


어쨌든 나는 그런 아빠로부터 도망쳐 잘생긴 신랑과 결혼해버렸다. 근데 나의 불효에 우리네 조상님들이 화가 나셨는지 어쨌는지 나는 벌을 받았다. 아버지의 가슴에 못박은 딸에게는 나쁜 일만 일어난다는, 그런 선택적 권선징악은 우리 조상님들의 뇌피셜 아니었던가? 딸에게도 사정이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신랑이 아버지만큼 꼰대였던 것이었다.


디지털미디어 업계 특성상 주말 근무가 잦아 주말에 일했으면 평일에 하루 대체휴가로 쉬는 날이 주어진다. 그래서 나는 평일에 자주 쉬는 편이다. 다만 이 대체휴가는 하루 전날 제출하면 돼서, 신랑은 퇴근을 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될 때가 많았다.


“나 내일 회사 안가지롱.” / “뭐? 또 휴가라고?”

그러면서 “그렇게 너무 하루 전날 휴가를 쓰면 사회적 평판에 무리가 간다”거나 “제대로 일은 처리한 거냐. 오늘 페이스북에 허핑턴 들어가 보니까 너 이름으로 작성된 기사가 얼마 없던데”라거나 “왜 근데 오늘 뉴디터의 신혼일기 좀 재미가 없었냐. 대충 썼지. 회사일의 일환인데 그래선 안 된다. 영혼을 갈아서 써라”고 하거나....... 친애하는 편집장님께서도 하지 않으시는 지적을 퇴근 후 사랑하는 남편에게서 듣고 있자니 아주 복장이 터지고 발딱 미쳐벌일 지경이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입맛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서 남편이 일장 잔소리를 늘어놓는 동안 나는 장조림 속 몇 알 없는 메추라기 알을 모조리 집어먹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보다 더 놀라운 속도로 그렇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만을 잽싸게 건져 먹고는 뜨거워서 허버허버 거렸다.


그러니까 진짜 정말 미웠다. 뚁땽하기 그지없었다. 아빠는 그래도 본인이 힘든 날은 나한테 신경을 안 썼는데 신랑은 나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컸다. 

그러나 다행히 권선징악은 여기까지였다. 며칠 전, 나는 평일 휴가를 즐긴 뒤 기분이 좋아서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장조림에 메추리알도 한가득 담고,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도 잔뜩 넣고 식사를 차렸다. 그리고 천천히 먹으면서 말을 꺼냈다. “오빠는 나중에 엄청 꼰대 아저씨가 될 거야” 그러자 조신하게 돼지고기를 가위로 자르던 남편이 말했다.


“당연하지. 난 지금도 꼰대야. 당신한테 엄청 잔소리 하잖아.”


1도 인정하지 않던 아빠와는 다른 방향의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내 그릇에 돼지고기와 장조림 메추리알을 올려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백 한 잔만 하고 가지? 목만 축이자고들. 허허허. 요즘 젊은 친구들은 참 옷도 화려하게 입고 회사에 다니는구만. 그런데 자네 이것도 ‘뉴디터의 신혼일기’에 쓸건가?”


“물론이죠 어둠의 편집장님. 둠집장님.”


다행히 나의 새로운 꼰대는 자기가 꼰대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걸 유머러스하게 풀어 나를 웃겨줄 줄도 알았다. 김치찌개의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나눠먹는 법을 눈치껏 익힐 정도로 열린 마인드이기도 했고 말이다. 애초에 나를 낳아줬기 때문에 반발시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아버지와 그는 ‘꼰대력’ 자체가 달랐다. 이제 조금만 더 유연한 남편이 되어주면 참으로 더 좋겠지만서도^^~❤️


* 허프포스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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