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거나 감동적인 이야기 아님.
신랑은 아기를 좋아한다. 아기만 보면 자동으로 혀가 짧아지는 아주 징그러운 아저씨다. 남의 집 아기들도 엄청 이뻐하는 건 물론, 아기를 갖자고 늘 노래를 불러댄다.
물론 나 역시 임신출산육아 모두 할 의향이 있다. 내 새끼를 낳고 기를 자신도 있다. 결혼 전 합의가 끝난 부분이다. 이 저출산 시대에 참으로 애국자 신혼부부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우리가 아기를 갖고 싶은 이유는 좀 달랐다.
나같은 경우는 우선, 나의 훌륭한 유전자(!)를 내 대에서 끊고 싶지 않아서다. 여기서 멈춰선 안 되고 한 단계 진화시킨 DNA를 이어 가야 한다는 나르시즘에서 기인한 번식욕구인 것이다. 한평생 내 유전자에 부족한 남성성 가득한 외모/가지런한 치아/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남성에게만 매력을 느낀 것도 그런 본능적(?)인 이유였던 모양이다. 인생 목표, 더욱 완벽한 2세를 낳는 것!
두 번째 이유는 자식이야말로 어떤 사랑의 결실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의 일부분과 신랑의 일부분이 만들어낸 생명체라니,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만들 수 있는 것 중에 최고봉이다. 그거야말로 진짜 로맨틱한 사랑의 증명이다. 세상에, 근데 아들은 분명 키가 크고 잘생길 텐데 아이돌 출신 연기파 배우 되는 거 아니야????풉ㅋㅋㅋㅋ킼ㅋㅋㅋㅋ
어쨌든 내가 이런 나르시즘에 기반한 망상을 하며 2세를 바랄 때 신랑은 ”아이가 좋아서, 나와 닮은 아이의 아빠가 되고 싶어서”라는 식상하고 진부한 이유를 댔다.
사실 나는 애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정확히는 정신 없는 걸 안 좋아하는데 애기들은 어쩔 수 없이 정신이 없다. 남편이랑 함께 지인들의 가족동반 모임에 갈 때마다 소리지르고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는 애기들을 보면 그냥 나도 3살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소리지르며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나는 사회화된 인간. 겨우겨우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참지.
하지만 남편은 진짜로 신이 나서 빙구웃음을 짓고 “아이구 너는 진짜 멋있다, 너는 정말 귀여워!” 이러고 몇 명을 껴안아 비행기를 태워주고 목말을 태워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또 신나서 남편에게 엉겨붙으며 소리를 지르고 장난을 친다. 그러다 갑자기 ”삼촌 나 또 해 줘 나 또”하면서 한 명이 울기 시작하면 연쇄 눈물댐이 터지는데, 나는 딱 지옥이 이런 풍경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아이를 낳고 잘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 내 유전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낳은, 내 유전자를 가진 내 새끼는 내 정신과 체력 영혼 등 모든 것을 탈탈 털어가도 예쁠 게 분명하다. 아직 세상에 없지만 사랑해❤️
PS)
“내 새끼만 예쁘다고 다 용인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애 성격에 문제 생기고 그러는 거야...”
“그러든지. 난 유전자 아니었으면 오빠랑 결혼 안 했어.”
“난 유전자랑 상관 없이 여보를 사랑해서 결혼한 건데 너무하네.”
“뭐? 내 유전자가 별로란 뜻이야?”
“아니...그게...저...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 이 글은 허프포스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