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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r 14. 2020

정시 100%만이 입시의 해답일까?

모든 사람이 ‘인서울’ 하진 않는다

*이 글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 쓴 글입니다.


현 정부 들어서 말이 가장 많은 게 교육제도인 것 같다. 나야 뭐 이미 입시를 겪은지 거진 10년이 흘러 이제는 수험생이 아니라 학부형(?)에 가까운 입장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장기적으로 이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 도움을 주는 정책인가?

심심찮게 나오는 이야기가 “무조건 정시 100% 가자”는 거다. 그게 가장 공정한 방법이라고 한다. 근데 정말 그럴까?

상위권 명문대 진학만을 놓고 본다면 그 주장은 그럴 수 있다. 어차피 비슷한 수준으로 똑똑한 애들만 그런 학교에 갈 수 있는 상황은 정시나 수시나 같다. 그런 와중에 편법이나 꼼수가 먹힐 수 있는 학종같은 제도가 포함된 수시 말고, 전국 수험생 모두가 같은 문제를 같은 시간에 풀어서 단판승부보는 수능이 공정하다는 의견이다. 뭐 맞는 말이다. 다만, 상위권 대학 한정.

동생들이 많아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교육제도의 변화다. 서울의 명문고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의 일반고를 나온 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뉴스에서 볼 수 없는 그런 변화들이 보인다.


명문대학에 갈 1등급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평균을 이루는 5등급을 중심삼아 위아래로 조금씩 분포돼 있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제도의 방향.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무난하고 쉬웠다는 교육과정의 피해자 겸 수혜자이자,  사상 처음으로 수시 비율이 정시 비율을 앞질렀다느니 수시 비율 최다라느니 하는 뉴스가 쏟아져 나오던 7차교육과정때 지방 소도시에서도 공부 그닥 잘하지는 않는(사실상 못하는) 학교를 다녔던 내 이야기다  이때까지만 해도 토요일에 하는 “클럽 액티비티(aka C.A)” 시간이나 “동아리 활동” 같은 것들은 큰 활동 없이 자습을 하거나 가끔 모여서 축제나 이벤트에서 활동하고 평소에는 친목질이나 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수험생 여러분 도전하세요! 하고 책방에 가면 한비야 아줌마 같은 부류의 꿈팔이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속삭여댔다. 10대여, 자아를 찾아라!


근데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도저히 알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대학 들어와서 이리저리 치고박고 부딪혀본 뒤에야 겨우 깨달았는데 그걸 ‘클럽 액티비티’ 시간에도 자습이나 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어떻게 안단 말임?

일본 드라마나 미국 영화를 보면 애들이 체육 동아리도 하고 하면서 좋아하는 거 잘만 찾던데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꿈을 좇을 게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으니까. 모의고사 좀 잘 보는 애들은 수업 시간에 잠만 쳐 잤고 공부는 비싼 인강강사 꺼 끊어서 보면서 했다. 인강 강사들은 시골 여고의 선생님들보다 확실히 잘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우리가 선생님들을 무시하게 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이 흘렀다.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들이나 친구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쌓지도 못한 채 늘 자습만 했던 아이들은 이리저리 휩쓸려 결국 모두들 관심도 없는 분야로 진학했다. 나 역시 뭐 마찬가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부모, 모든 개개인에게는 되게 비극인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세대에도 지금처럼 수시제도가 보편화돼 있었다면 내 친구들도 나도 어쩌면 보다 더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지금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막내는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다. 나랑 10살 가량이 차이나지만 경험한 학창시절은 완전히 다르다.

막내 때는 이미 수시제도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명문대학을 가려거든 성적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모두가 다 성적을 잘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상위 10%만 대학 가고 나머지 90%는 고졸취업 해! 이런 사회도 아니니까 나머지들도 다들 대학은 가야 한다.

그렇다면, 특별히 진학하는 대학 이름에 메리트가 없다면, 개인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땐 조금이라도 자기가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상태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될 터다. 그리고 여기엔 수시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막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동아리를 창설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농사’를 직접 해 볼 수 있다는 기회가 생기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동아리를 만든 것이다. 이에 흥미를 가진 친구들을 모아 ca 시간마다 같이 텃밭을 일구고 일지를 쓴다. 선생님들은 여기에 대한 생활기록부를 보태 주신다. 여기서 직접 농사를 해 보고 좋은 친구는 이런 걸 경험으로 살려 농대나 생명대에 갈 수 있는 것이고, 한 학기 경험해보고 안 맞으면 다른 동아리로 가거나 자신이 동아리를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이는 모두 학교에서 심사를 통해 비용 등을 지원해 주고, 지도교사들은 아이들을 열심히 이끈다. 수시로 대학 갈 때 도움 될 수 있으니까. 명문대학이든 아니든, 수시제도는 유효한 것이다.


학생 수가 대폭 줄어든 것도 선생님들의 협조에 도움이 됐겠지만서도, 막내 피셜로는 애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반대하거나 거절하는 선생님은 없다고 한다. 수시에 도움이 되고 스스로도 보람을 느끼실 테니 완전 반가워해 주신다고. 목표가 수시 서류든 아니든 어쨌든 그 과정에서 사제간의 또 친구들간의 남다른 추억이 생기는 것은 뽀너스다.

​정시 비율이 훨씬 높던 시절 학교를 다녔던 우리 신랑의 경우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던 친구나, 학교 동아리를 열심히 한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언론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은 “사교육에만 집중해 공교육을 무시하는 아이들” 같은 것들. “쪽집게 선생님이 수능 정보는 더 잘 알아요”라는 인터뷰 멘트와 함께 무시당하는 고교 교사들의 모습 등이 종종 보도되던 때를 나도 기억한다.

만약 신랑이 학교 다니던 시대에 우리 막내가 학교를 다녔더라면(둘은 20살 가까이 차이가 난다), 자기가 농사를 좋아하든 말든 어중이떠중이 수업시간엔 선생님 말 안 듣고 졸고 인강 보다가 수능 치고 점수 맞춰서 아무 대학 아무 학과나 들어갔을 것이다. 그건 수험생 개인의 인생과 추억에도 좋지 않고, 무시당하는 교사에게도 나쁜 일이다.

정시고 수시고 어디에서든 불공정하다는 이야기는 나올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겐 굉장히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상위 10%만을 위해서라면 정시가 당연히 공정한 제도일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90%를 이루는 수험생들과 평범한 교사들을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나라에 필요한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수시가 훨씬 필요한 제도라고 본다. 그리고 학종은 제발 없애줘

학교다니던 시절 애들하고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외국 애들은 공부 스트레스 안 받고 맨날 클럽활동 하고 행복하고 재밌게 학교 다니던데! 우리는 왜 이렇게 공부만 해야 해!!


수시제도 확대가 그런 풍경을 한국에도 가져다주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 필요한데, 무슨 이랫다 저랫다 틈만 나면 바꿔대니 그게 걱정되는 부분이긴 하다. 제발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거 잊지 않았으면...

​Ps. 내가 쓴 글의 배경은 지방 소도시 일반고다. 서울이나 광역시 일반고는 이전부터도 이런 제도를 채택해왔을 수도 있다. 만약 다르다고 해도, 교육제도를 명문대 중심/서울과 광역시 중심에만 놓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ps2. 사진 속 학교는 나의 모교 강릉 강일여고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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