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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r 04. 2021

失名

전업주부가 되면, 한평생 불려 온 내 이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대학 3학년 때 입주과외를 하기 전까지, 나에게 ‘직장 다니는 엄마’, ‘일하는 엄마’란 신문기사 또는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 전까지는 한 번도 워킹맘이라는 존재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친모를 비롯, 고향도시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모두 전업주부였던 것이다.


과외돌이 어머니는 대기업 임원이셨다. 여러 가지 기록을 세워 신문 기사도 수차례 났던 분. 그분은 무척이나 바빴다. 늘 피곤해 보였다. 애기는 늘 관심에 목말라했다. 특히 엄마의 관심. 어머님은 주말에는 헌신적으로 아이에게 모든 시간을 쏟았지만, 애기는 평일에도 부족한 사랑을 갈구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기간 동안, 가정에 충실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정을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는 전업주부가 나을지도 모르겠다고도 생각했다. 우리 사남매가 안 삐뚤어지고 잘 큰 것도 생각해보면 모두 엄마가 집에 계셨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십대 때는 신체 성장이 이뤄지는 속도가 어마무시하고, 이십대에는 한해한해 정신적인 성장이 이뤄지는 속도가 남다르다. 매일 전혀 새로운 경험들을 겪게 되니 그럴 것이다. 입주 과외를 한 이듬해에는 두 개의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두 군데 회사에서 일하며 내가 깨달은 건, 애기 엄마들도 사회에서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야, 현뉴야!” 상사가 이름만 부르면 한 가정의 엄마인 사람들이 호다닥 달려가곤 했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그 당시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 엄마부터 시작해서 주변 친구들 엄마가 전부 전업주부였고, 워킹맘 워킹맘 말은 들어 봤지만 실제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엄마는 항상 '현유 엄마'라고 불렸다. 집에서도,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친정에 가지 않는 한 계속 본명보다는 어멈이니 애미니 어머님이니 하는 소리를 더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도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이름을 불리면서 살았을 터였다.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다.


전업주부가 된다는 건, 한평생 불려 온 내 이름을 빼앗기는 걸 의미할지도 몰랐다. 그야말로 실명(失名)의 두려움. 무서워졌다. 게다가 나는 인생에 제일 재미있는 게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자기자랑인 ESTJ 재수탱이인데, 육아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내 이름이 불리지 않고 내가 이뤄낸 성취가 단번에 수치화되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잘했다고 자가평가보고서 내고 상사로부터 평가받아서 인사평가 등급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끔찍했다.


하지만 동시에 바쁘기만 한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언제나 넘치는 사랑을 주는 엄마도 되고 싶었다. 둘 다 가지는 건 카페사장 최준과 차차차차진석과 눈나 하는 임플란티드키드를 놓고 진심어린 고민을 하는 여자가 유튜브 바깥 세상에 실존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얼마 전 디렉터 선배가 다급하게 “현유야! 김현유! 얘 어디갓어!” 하고 아주 느긋하게 화장실 갔다가 편의점 가서 과자를 사온 날 찾는걸 목격했다. 문득 인턴 재직 당시 츤데레 갑이었던 팀장님이 30대 중반의 유부녀이자 아기엄마인 여자선배룰 애타게 찾으면서 “순희야! 김순희 없어? 으델 간 거야! 엉!” 하던 게 겹쳐 보였다. 어린 시절 내가 알던 애기 엄마들은 한 아이의 삶을 책임져야만 해 자신의 이름마저 뺏겨버린 진짜 어른으로만 느껴졌는데, 사회에서는 유부녀이자 아기엄마가 돼도 여전히 학생 때 그랬고 처녀 때 그랬듯 당연히 조직 구성원인 ‘김현유’일 수 있다는 게 참 신선하게 느껴졌던 기억이다.


어쨌든 만약 나도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면, 동시에 내 이름으로 조직에 소속돼 숨 돌릴 틈은 있어야할 것 같다는 입장이다. 적어도 이름을 완전 잃어버리면 안 되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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