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갈아가며 뽕 맞고 버티는 그게 삶이다.
즐거운 일이 없다. 하루하루 내 수명을 갉아먹기만 하고 있는 느낌. 겨우 충전해서 세상에 나가면 하루 에너지 다 쓰고 물에 젖은 솜처럼 잔뜩 지쳐서 방전된채 귀가하는 매일매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하루가 지나면 내 하루치 수명이 사라지는 게 당연하고 밤잠으로 충전한 에너지를 다시 잠들기 전까지 방전시키는 게 소중한 인생의 다시없을 하루 루틴인 것이다. 돌려돌려 쳇바퀴.
일어나서 아가 밥 해 먹이고, 아가 세수시키고, 나 씻고, 나 옷 입고, 나 짐 싸고, 아가 짐 싸고, 아가 들쳐업고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그제서야 출근해서 회사까지 한시간 가고, 일하고, 밥먹고, 또 일하고, 설득하고, 토론하고, 가끔 거절도 하고, 짜증도 내고, 분노도 하고, 멘붕도 오고, 그러고 또 노트북 들고 한시간 집까지 퇴근하고, 저녁밥 준비하고, 아가 저녁밥 먹이고, 아가 씻기고, 나도 씻고, 아가 자러 들어가면 설거지 하고, 청소 하고, 하루를 이렇게 날리기 싫어서 폰보면서 얼굴이랑 다리 맛사지나 좀 하다보면 11시. 가끔 애기 자러 들어간 뒤 업무라도 좀 더 하다보면 시간이 1시 2시 막 이런다. 그럼 자야된다. 안 그러면 반복될 내일이 너무 힘들어서 버틸수없거든…
힘들 줄 알았지만, 각오도 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나는 갈려나가고 있는데 업무 효율도 바닥을 찍는다. 남들은 24시간 중 아무 때나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아가가 잠든 후, 혹은 아가를 누군가에게 맡긴 후에만 해결할 수 있으니 시간 활용성의 범위가 다르다. 애 없던 시절 대비 능력은 1/2밖에 안 되는 거 같다. 팀에 도움이 안 되는 멤버라는 자괴감이 매달 든다.그렇다고 좋은 엄마도 아니고 그러니까 워킹맘들이 그만두는 거겠지.
근데 또 마감 마치고 나면 너무 뿌듯해… 이번 달도 8만 자를 써냈지만 내가 채운 글과 사진으로 가득한 지면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 자기효능감 등등. 거기에 더해 인터뷰이나 필자들의 긍정적 피드백이 후기처럼 전달되면 뽕 맞은 것처럼 도파민이 전신을 싹 돈다. 그러니까 맨날 수명을 갉아먹으면서도 그 뽕을 맞고 싶어서 참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힘들지만 아가의 웃는 얼굴, 나에게 달려와서 안아주고 춤추는 아가의 뒤뚱뒤뚱 팔다리, 어른 숟가락으로 푹푹 밥 퍼먹는 야무진 입, 나를 똑 닮은 동그란 눈, 발음 안 되면서 내 말을 따라서 뭐라뭐라 떠드는 목소리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어서 보다보면 행복해서 눈물난다. 피곤해 죽을 것 같은 아침에도 지쳐서 당장 쓰러질 것 같은 퇴근 후에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건 아가의 미소다. 뇌에서 나온 행복 물질이 쫘르륵 온 몸을 돌아 손끝까지 행복이 느껴진다. 그걸로 이겨내는 하루하루다.
써놓고 보니 또 약간의 현타포인트가 있다. 인생을 왜케 마약중독자처럼 살아야 하나…? 마감 후 결과물 그리고 아가의 미소라는 뽕을 맞기 위해 금단현상으로 가득찬 일상을 비루하게 버텨내는게… 이게 인생인가?
맞다. 몸 갈아가며 뽕 맞고 버티는 그게 삶이다. 쇼펜하우어는 원래 인생은 절대 즐거운 게 아니라고 했다. 왜 나만 행복할수 없는거야!라고 탓할 게 아니라 그냥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걸 인정하고 커리어에서든 육아에서든 헬스장에서든 성취끝에 얻어낼 수 있는 뽕이나마 맞으면서 살건지 불만만 갖고 살건지 아니면 나처럼 뽕도 맞고 불평도 할건지는 개개인의 몫일 것이다. 일단 뽕이라도 맞게 하루하루 방전되더라도 열심히 살자고. 쌓이면 뭐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