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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이라는 능력

동생에겐 없는 감각

by 현자라

고등학교 때 점자 도서 입력 봉사를 했어요.

점자 도서로 만들어지지 않은 책을 골라 봉사 센터의 허락을 받고, 책 내용을 한글파일에 입력하는 봉사예요.

그전에 단체에 방문해 교육도 듣고, 교육자료를 봐가며 열심히 입력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봉사는 단순히 텍스트를 옮기는 작업이라 아주 편하겠네- 싶으시겠지만, 큰 어려움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도표, 그림 같은 것을 모두 문자로 묘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과정이라 당연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이걸 잘 못하면 마지막에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할 수도 있어요.

입력을 다 하면 마지막으로 센터에 가서 직원분들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요.

그때 도표나 그림 묘사가 자주 수정을 요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책을 고를 때 제가 읽고 싶은 책이나 재밌게 읽었던 책을 골랐기 때문에

그림은 생각지도 않고 입력을 시작했었는데,

도표는 어찌어찌 같은 말을 반복한다 쳐도 그림 묘사는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핀터레스트


그럴 때 저는 눈을 감고 머리에 떠오르는 요소 순서대로 입력하곤 했는데요.

동생도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동생에게 묘사해 준다는 생각으로 입력했죠.


색을 써도 안 되고, '바다'라고 써도 본 적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거고.

주로 촉감을 많이 활용했던 것 같아요. 겨울철 밖에 나가면 손등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날카로운 색.

이것도 완벽한 묘사는 아니겠지만 돌아 돌아 고심한 문장들을 써넣곤 했어요.



고3 때 수시 입시를 위해 자소서를 쓰면서 이 봉사를 언급했었는데요.

그때 담임 선생님께 위 이야기를 했더니 "진짜 그렇게 했어?"라며 의아해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설마 진짜 그랬나,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저는 진심이었거든요. 진짜 타닥타닥 치다가 눈 감고 그려보고 다시 입력하고..

엄마한테도 눈 감고 상상이 되는지 물어보고요.


제 방법이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한 번도 센터에서 지적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만하면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 •̀ᴗ•́ )و ̑̑


대학생이 되고도 꾸준히 하려고 했던 봉사인데, 여러 핑계 같은 이유들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입력 봉사 외에도 목소리 재능 기부처럼 녹음하는 봉사도 있으니,

혹시 혼자서 할 수 있는 봉사 고민하신다면 한번 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타자 치는 그 시간이 제겐 꽤 힐링이기도 했거든요.

잡생각을 없애주는 일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권리를 챙기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자, 이쯤에서 질문드려 볼게요.


- 시각이란 감각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걸까요?

- 우리는 감각의 중요성을 얼마나 느끼며 살까요?


물건을 던져서 전달하다가 실수로 동생 몸에 닿아 깜짝 놀랄 때, 동생에겐 없는 감각을 상기하게 됩니다.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도 입체적으로 느껴지고요. 그 사이 거리 때문에 매번 머리에 물음표를 띄웁니다.

정답을 모르겠어요. 서로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워서요. 그럴 때마다 감각의 차이를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보자는 생각으로 고민이 끝납니다. '내가 몰랐던 것'은 곧 '내가 아는 것'이 되는 거니까요.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기만 해도 전 만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각을 가진 우리는 뭘 더 세심히 볼 수 있을까요? 혹은 더 보아야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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