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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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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biya Oct 06. 2023

빨빨거릴 거면 말빨보단 글빨이.

사실 말빨이 와도 감사합니다.


요즘 일주일에 한 권 책 읽기를 혼자 도전 중이었..지만  1인 약속은 해변가 모래성처럼 금방 무너지기 일쑤였다. 물론 모래성을 쌓는 것도 나. 그걸 무너뜨리는 파도도 나였다.


모래성은 바닷가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놀이터에 있는 모래로 성을 만들면 일단

무너뜨릴 무언가가 파도보다는 덜 올 것 같아

장소를 옮겨 책이 있는 곳, 도서관에 갔다.


나는 어려운 글을 좋아하지 않고,

나를 가르치려는 글을 좋아하지 않고,

책을 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른 책 <지구에서 한아뿐>

원래 정세랑 작가의 책을 재밌게 쉽게 읽었던 터라

고민 없이 한 선택이었고, 역시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비도, 고양이의 발길질도 나타나지 않고 순탄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름만 아는 그녀에게 질투심이 일어났다. 그녀는 분명 N일 거야. 어떻게 외계인이랑 사랑을 한다는 생각을 환경문제와 엮고, 권태 있는 커플의 이야기를 엮어서 어딘가에선 진짜 일어날만한 이야기를 쓴 건지. 그리고

어떻게 내 앞에서 외계인 커플들의 서사가 펼쳐지게 세세하게 쓰는 건지 그녀가 글빨 최대치의 생명체만 있는 별에서 온 외계인이 아닌가. 부러움과 질투를 감춰두고, 순식간에 책을 읽었다.


방광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인간이기에 그 신호를 곧바로 받아들였고, 변기에 앉아서도 그녀의 글빨과 상상력에 감탄하며 겸허히 나의 것들을 변기에 쏟아내었다. 그 속에 ‘나는 참 많이 부족하구나 글 쓰는 것 관둘까‘라는 어리석은 마음을 30% 정도 떠나보내고, 나도 노력하면 된다라는 마음을 채웠다.


요즘 그냥 머릿속에만 있었던,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라고만 했었던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입 안에 맴돌던 것들을 정리해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어려운 와중에 흩어져있는 이야기를 정리해서 나열하는 건 마치 내 방 안에 있는 어지러운 충전선들을 정리하는 일과 같았다.


그녀의 글을 보고 있었는데 내 머릿속에선 내 글에 빨간펜이 자꾸 그어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고뇌와 노력이 많이 엿보이는 글과 글빨 작렬인 글을 보고 있자니 부족함 많은 글을 공개적인 자리에 두는 게 맞나 싶다가도 내가 익명이라 다행이다라는 안일한 생각이 감돈다.


이 험난한 지구, 작은 나라에 태어난 나는

공격력 0%에 해당한다. 대신 눈물력은 1만프로다.

사회를 겪기 전 조그만 사회, 가족 중 혈육과 가장 많이 싸웠는데 숱한 연습게임을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몇 없는 실전에선 항상 패했다. 그럴 때마다 눈물없이 정확히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나의 의사를 전달하고 싶었다. 눈물은 조용히 흐를것이지 눈치없이 웃기고 못난 목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너희들은 초대 안했건만 . . 생각해보니 말빨이 생길게 아니라 눈물력을 없애야하나.. 일단 확실한 내 목소리로! 정확히! 내가 왜 화가났는지를

말하는 말빨보다 더 갖고싶은 건 글빨.

말빨이 있으면 억울한 그 순간 점잖게 내가 왜 화났는지에 대해 잘 말할 수 있고, 환불도 잘 받을

수 있겠지 ..


하지만 .. 빨빨거릴거면 차라리 말빨 보단 글빨인 것 같다. 나에겐. 나의 말은 한 목소리로 들리지만 나의 글은 읽는 사람의 목소리로 읽혀진다. 나의 글이 꿀 보이스라는 옷을 입으면 더 매력적인 글이 될랑가.


아무튼. 나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흔적으로 남길거면 차곡 차곡 정리되어있는 말이 아닌 글들이었으면 좋겠다. 일단 보자, 내가 오늘 친구들에게 한 말들은 친구들의 귀에만 흘러들어갔고, 부산에 사는 김아무개씨한텐 들어가지않았지만 글은 다르다. 부산에 시는 김아무개씨가 읽을 수 있다. 그의 꿀 보이스로.


그냥 후루룩 넘길 수 있는 글을 볼 땐 갑자기 소리가 나서 화들짝 놀라 휴대폰 음량을 줄일 일도 없고,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를 열고, 알맹이가 없네라며 꼼꼼하지 못한 나를 자책할 필요도 없고, 또 충전 안해놨네 실망할 일도 없고, 16회 드라마 10분 요약도 필요없다. 술술 읽히니까. 알고리즘에 의해 왔다가 주저 앉게 되는.. 화장실에서 술술 읽다가 변기위에 앉은 본래 의도와 달리 눌러앉아 ”너 변기통에 빠진 줄 알았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글빨.


이제부터 나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펄럭이지않고 필력거릴 것입니다.


- 오늘의 뻘소리 완.


근데.. 외계인까지 인간들의 사랑에 침범하면

미의 기준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솔로에 외계인 편이 나오면 어떨까. 외계인들이 나오면 그들의 말은 누가 번역할까. 외계인 말 번역가가 있다면 그들은 지구인일까, 외계인일까.

그들의 말은 서로 어떻게 교환하게 되었을까.

아무튼 <지구에서 한아뿐> 재밌습니다.


- 오늘의 뻘소리 진짜_최종_완_(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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