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나의 침대

by 윤희영

아빠는 간혹 나를 겁쟁이 어린아이로 볼 때가 있어요.

아빠의 평소 생각과 다른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경우가 가끔 있었어요.


이건 원래 비밀이었는데, 그 비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요. 완전범죄는 없다고 하잖아요?


원래 저는 산책을 다녀온 후 또는 조용히 혼자 쉬고 싶을 땐 시원한 바닥을 찾아갔어요. 우리 집에서 가장 시원한 바닥은 바로... 욕실 바닥이었어요. 물론 베란다의 바닥도 시원하긴 하지만, 낮엔 햇빛이 들어와서 별로예요. 한동안은 욕실이 나의 보금자리. 나만의 휴식공간이기도 했어요. 이곳을 알게 되기 전까지 말이죠.


어느 날 오후였어요. 집엔 아무도 없었는데, 작은오빠가 잠시 친구들과 집에 놀러 왔다가 뭔가를 먹고 다시 놀러 나갔어요. 나는 또다시 집에 혼자 남았죠. 목이 말라 목을 축이고, 베란다를 갈까 욕실로 갈까 잠시 망설이던 중, 식탁 위에서 뭔가 달콤한 향기가 나는 거였어요. 나도 모르게

“킁킁, 킁킁”

하며 식탁 쪽으로 걸어갔어요. 오빠가 방금 친구들과 뭔가 먹고 나갔는데, 그 냄새가 났어요.

오빠가 먹던 간식을 저 위에 놓고 간 게 분명해요. 보이진 않지만 내 코는 개코거든요.

하지만 저 높은 식탁을 올라갈 수는 없었어요. 나는 저렇게 높이 점프를 할 수가 없거든요.

나의 엑스남친인 구찌라면 아마 한 번의 점프로 식탁 위에 올라갈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럴 만큼 가볍지도, 날렵하지도 않았어요.


그때였어요.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요? 어릴 때 아빠가 나를 계단에 오르게 훈련하던 기억이 났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식탁 옆엔 주로 오빠들이 앉아서 밥을 먹는 기다란 의자가 있었어요.

‘이 정도 의자라면 내가 매일 오르내리는 소파랑 다를 게 없잖아?’
‘한번 해볼까?’

펄~쩍!

나는 의자 위로 뛰어올랐고, 나의 뒷발이 의자에 닿을 때 즈음, 나의 앞발은 어느새 식탁 위를 밟고 있었어요. 나는 힘차게 뒷발을 도움닫기 해서 식탁 위로 점프를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짜릿했고,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한 나 자신에게 너무나 뿌듯했어요.


그게 전부가 아녔어요. 식탁 위엔 오빠가 먹다가 남겨놓고 간 과자 봉지가 있었고, 그 안엔 향긋하고 달콤하며 바삭한 과자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어요!

‘오빤 이렇게 맛있는 간식을 왜 다 안 먹고 남겨놓고 갔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저는 이미 그 과자봉지에 얼굴을 파묻고 열심히 먹고 있었어요. 고생 끝에 찾아온 선물이라서 그런가, 그동안 오빠가 과자 먹다가 흘린 것 주워 먹었을 때 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그렇게, 맛있는 과자도 다 먹었고, 이제 그만 내려가려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식탁 위 내 발바닥이 닿은 곳은 정말 시원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좋아하는 욕실 바닥보다 더 차가운 느낌이었어요. 더구나, 이 식탁 바로 옆에는 더운 여름에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이 있었구요.

‘우와! 바로 여기야!!!’

그날로 저는 더 이상 욕실 바닥을 찾지 않았어요. 욕실 바닥은 시원하긴 했지만, 너무 어둡고, 축축하고, 조금 지저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여긴?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과, 음식 냄새가 있는 곳이에요.


저는 그날 이후로 이 식탁을 나만의 아지트. 침대로 정했어요.

그 후,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우면 나는 자연스럽게 식탁으로 올라갔고, 누군가 남겨놓은 음식이 있나 보았고, 운이 좋으면 과자나 빵 같은 걸 먹을 수 있었고, 음식이 없더라도 시원하게 낮잠을 잘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자다가 가끔 혼자 떨어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아빠에겐 비밀이지만요.


하지만 나만의 비밀 공간이 공개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어요.


아빠가 방에서 낮잠을 주무실 때, 저도 졸음이 쏟아져서 어쩔 수 없이 잠깐 나만의 침대로 올라가서 잠을 청했죠. 그때 갑자기 벌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는데, 방문을 열고 나오신 아빠는....

“몰..... 리.......”

하면서 입을 쩍 벌리곤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어요.

‘어떡하지??’

그런데 아빠는 갑자기 너무 황당하면서도 웃기다는 듯, 휴대폰을 들고 와서 나를 찍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빠와, 아빠의 핸드폰을 번갈아 보았죠. 혼날 줄 알았는데, 아빠가 화가 난 거 같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어요. 그치만 언제 식탁 밑으로 내려가야 할지 생각하느라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냥 서있었어요. 그때 아빠는

“몰리야, 내려오지도 못할 거면서 겁쟁이가 거길 어떻게 올라갔어?”

하면서 나를 안아서 바닥으로 내려주었어요. 아마도 우리 아빠는 내가 실수로 얼떨결에 식탁에 올라갔고, 무서워서 내려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그런 아빠의 오해를 굳이 풀어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게라도 해서 나만의 시원한 대리석 침대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후 며칠이 지났을까,,

이번엔 엄마에게 딱 걸렸지 뭐예요. 나는 식탁 위에 있던 맛있는 음식. 아마도 엄마가 남긴 것으로 생각되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엄마가 돌아오시기 전에 식탁에서 내려왔거든요. 그 음식이 사라진 걸 보면 엄마는 아마도 오빠들 중 누군가 먹었다고 생각할 거 같았어요. 나는 완벽하게 엄마를 속일 수 있겠다고 안심을 했어요.


외출 후 엄마가 돌아오셨고, 나는 평소처럼 현관에 나가 엄마를 반겨주며, 눈을 맞추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어요.

“멍멍멍멍! (엄마, 잘 다녀오셨어요?)”
“몰리야!!! 이게 뭐야?? 너 뭐 했어?? 뭐 먹었어?”
‘엄마,, 내가 뭘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나를, 엄마께선 욕실로 데려가서 물로 내 얼굴과 입, 코를 닦았고, 빨간색 물이 하수구로 흘러가는 게 보였어요.


그날 저녁..

"몰리가 글쎄, 오늘 낮에 식탁에 올라가서 떡볶이를 먹은 거 있지?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고선,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는데, 입 주변에 떡볶이 국물이 여기저기 묻어있고… "

엄마가 아빠께 말씀하셨어요. 내가 몰래 식탁 위에서 맛있게 먹었던 그 음식의 이름이 바로 “떡볶이”

다음날 응가할 때 똥꼬가 조금 따가웠어요.


식탁위몰리.PNG 식탁 위 몰리
대리석식탁.jpg 식탁 위 꿀잠중인 몰리


식탁위몰리2.PNG 대놓고 식탁위에서 잠드는 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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