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그리고 319일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직은, 살아갈 날들이 더 남아있다고 생각했기에
아직은, 함께할 시간들이 더 남아있다고 생각했기에
특히, 그것이 '엄마'를 떠나보내는 일이라면 영원히 생각해보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나의 집엔, 예민하고 까다롭고 취향마저 분명한 강아지가 함께 살고 있다.
입맛마저 까다롭고, 제가 사람인 것처럼 가족들과 똑같은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 아이가 함께 산 지는 10여 년이 넘었다.
제 수명대로라면 이미 한참은 오래 살아온 것이지만
나는 아직 그 아이가 떠날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 나도 그 아이처럼, 생물학적 분류로 '동물'이 아닌 정말 함께 사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 그 아이가 밤새 이상 증세로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눈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오늘,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못해준 것만 하염없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에, 마음의 준비란 것이 얼마만큼 진정제 효과를 줄까?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한들 한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초연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
그 아이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나에겐 단지 '그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는 '엄마' 역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렇게 나를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할까.
'준비'를 한다고 해서 그 순간에 섰을 때 나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것보다 괜찮을 수 있을까.
정확히,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얼마큼 오래도록 해야 괜찮을 수 있을까.
결론은,
누군가를, 한 생명을, 내 곁에서 떠나보내는 일은
무슨 준비를, 어떻게 완벽하게 준비를 한다 해도, 결코 준비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