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 생명을 위협하는 설사병(wet tail)과 폐렴
"죽을 수도 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CT 조영제 부작용 목록 맨 끝에 적힌 사망' 같이, 희박한 확률인데 괜히 겁 주는 말이 아니었다. 작은 씨앗 크기의 굳은 똥을 누는 햄스터에게 '설사병'은 죽을병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약을 잰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먹는 약이니 바늘은 없다. 이러려고 면허를 땄던 거야, 사람한테 약 주던 실력의 반만 발휘해 보자, 억지 논리까지 동원하며 '할 수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라떼 몸무게가 120g이니 처방받은 약은 콧바람 한 번에 흔적도 없이 날려갈 정도로 극소량이었다. 수저에 조심스레 가루약을 붓고 가급적 적은 양의 물을 넣어 잘 섞은 후 주사기에 쟀다. 수의사 선생님은 1일 3회 처방한 약을 주면서 '2번이라도 먹이면 다행'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다행일 수 없다. 용량 용법을 지키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약은 가급적 같은 간격으로 투여해서 혈중에 일정한 농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라고 배웠고 매번 지켜왔다. 내 손에 탈수 상태로 숨을 할딱이는 작은 생명이 달려있으니, 사람을 간호할 때처럼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설치류에게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 본 적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에게 축 늘어진 라떼를 잘 잡으라고 하고 입가에 주사기 끝을 댄 후 0.5미리씩 약을 짜 넣었다. 라떼는 힘이 없어서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목이 몹시도 말랐던 건지, 그 쓴 약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눈물이 찔끔 났다.
'어쩌다가 죽을병에 걸렸니. 4박 5일 여름휴가 간 동안, 넉넉히 챙겨두었던 물이나 음식이 상했던 걸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먼 길 여행이라도 데려갈 걸 그랬어.'
온 가족이 탄식했다. 울산까지 왕복 12시간, 차에 태울 수는 없어서 집에 두고 갔었다. 동물병원에 며칠 맡아 달라고 부탁해 볼 걸 그랬다. 강아지, 고양이 옆이지만 모두 켄넬 안에 있으니 괜찮았을 텐데. 후회해 봤자,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휴가 끝나고 사흘쯤 지났을까, 그릇에 담아둔 음식이 줄지 않았다. 라떼가 항문에 엉겨 붙은 무른 똥을 뒷발로 밟아서 떼어내고 있었다. 얘가 왜 이러지, 모두 적잖이 당황했다. 병원에 가는 내내 별 일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우리 집 햄스터가 아픈 게 처음이 아니었다. 첫째 찌득이는 폐렴을 앓았는데 우리가 너무 늦게 발견한 탓에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움직임이 줄고 잘 먹지 않아서 아이들이 살펴보니 코끝에 콧물이 엉겨 붙어 곪아 있었고 숨소리가 이상했다. 아마 콧물, 기침 증상이 오래되었고 잠도 잘 못 잤을 텐데 초보 집사 시절이라 눈치채지 못했다.
찌득이가 갑자기 떠난 후 온 가족이 얼마나 마음 아파했는지, 다시는 햄스터와 살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겨우 용기 내어 입양한 아이가 라떼였는데, 또 아파서 죽게 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햄스터는 작은 동물이라서 반려인이 아픈 것을 바로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이 될 때까지 방치하기 십상이다. 식사량, 음수량, 체중, 걸음걸이, 숨소리 등이 달라졌거나 자는 시간이 부쩍 늘었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 김정희, 『햄스터』, 책공장더불어, 2014, p. 210.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해서 사육장을 대대적으로 청소했다. 사육장 본체, 미로 은신처 여기저기에 무른 똥이 말라붙어 있었다. 사육장 본체뿐만 아니라 먹이그릇, 급수기 등 모든 부속품을 세제로 닦고 철저히 헹구고 말렸다. 평소 라떼에게 익숙한 냄새를 남겨두기 위해서 톱밥을 절반쯤 남겨두고 청소했었는데, 이번에는 싹 다 비우고 새로 채웠다.
탈수를 막기 위해 수시로 물을 먹이고 두유 비슷한 강아지용 유동식을 먹였다. 약은 8시간 간격으로 3번 먹였고, 낮에는 아주 잠깐씩 사육장을 베란다에 두어서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게 했다.
약을 두세 번 먹였을 즈음, 새벽에 축 늘어져 있는 라떼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살아 있는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라떼는 기운이 없어서 누운 채로 약을 받아먹었다. 그래, 이 약 먹고 어서 나아. 물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고 기운 차려. 마음속으로 힘껏 응원했다.
병원 진료 다음 날, 주치의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살아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약 잘 먹이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라떼는 약을 먹을 때 점점 더 거세게 반항하며 회복을 알렸다. 도리질을 치고 약을 탁 뱉어 버리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우리 아이들 어릴 적과 다르지 않았다. 약이 쓴 걸 알고 강제로 먹이는 걸 거부하는 걸 보면서, 동물도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삶의 기쁨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라떼가 아프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 작은 생명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약을 먹이거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동물을 돌보는 것은 '애호'가 아니라 헌신에 가깝습니다. 동물 또한 감정을 느끼고 사고하는 생명이라는 인식,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연대가 그 헌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 김지숙, 고경원, 김산하, 김나연, 이형주, 『동물에게 권리가 있는 이유』, 나무를 심는 사람들, 2022, p.152.
우리가 매일 하는 단순한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먹다 만 음식을 버리고 그릇을 닦고 새 음식을 넣어 준다. 급수기를 닦고 신선한 물을 채워 준다. 쳇바퀴를 물로 씻고 잘 말려서 다시 붙여 준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의 톱밥은 완전히 제거하고 새로 채운다.
우리가 라떼를 작은 사육장에서 살게 했으니 그의 세상이 되어 주어야 한다. 마치 대자연이 대기를 움직이고 비로 땅을 씻어내고 물을 끊임없이 흘려보내어, 우리가 건강히 살게 해 주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