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워 준 강아지
절미야, 안녕?
너를 처음 만나고, 네가 우리 가족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던 날이 벌써 1년 9개월 전이네. 이제 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고, 내 사진첩엔 네 모습이 가득해.
네가 없었다면 사춘기 형들과 거실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도, 매일 두 번 이상 하는 외출도 아마 없었을 거야. 이게 다 하루 종일 빈 집에서 우릴 기다려주는, 인내심 많은 네 덕이야.
우리 집안사람들은 동물을 들이는 걸 조심스러워했어. 그래서 나랑 네 아빠는 반려생활이란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 네가 오기 전엔, 햄스터와 삼 년 남짓 지낸 게 전부였어.
햄스터를 떠나보내고, 네 형들이 또다시 생명을 돌보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린 강아지라는 존재를 접하기 위해서 구리시 반려동물문화센터에 여러 차례 다녀왔어.
그곳에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의 텅 빈 눈망울을 봤고,
낯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안길 만큼 정에 고픈 몸짓을 보았어. 그때 알았어. ‘유기견’이라는 단어가, 상상도 못 할 만큼 무겁다는 걸. 강아지 공장 뉴스와 펫샵의 쇼윈도는 그 후로 쉽게 마주할 수 없었고.
유기동물이란 말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그리고 무관심했던 과거를 조금이나마 만회하길 바라며,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결심했어.
반려가 뭔지 몰라서 책을 읽고, 친구들에게 묻고, ‘세나개’를 찾아봤어.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린 서로 알아봤던 거야. 그렇지?
입양 초기에 나는 몰랐어. 섣부른 교육과 훈련보다,
네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게 먼저라는 걸. 집에 온 다음 날, 낯선 집에 널 혼자 두고 외출했지. 밤에는 거실에 혼자 자게 해서 너를 불안하게 만들었어.
일 미터 높이의 울타리를 무리해서 뛰어넘고, 짖고 침 흘리는 너를 보면서 야속한 마음에 이렇게 생각했어. ‘버려진 상처가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버릇이 잘못 든 성견이라 그런가?’ 내 잘못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어. 그때의 내가 얼마나 미숙했는지, 부끄럽고 네게 미안해.
네가 어떻게 버려졌는지, 정말 버려진 건지, 아니면 길을 잃은 건지 나는 몰라. 경기도 포천의 어느 도로에서 떠돌다가 구조되기 전, 너는 누구와 어떤 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까. 송곳니는 왜 닳았을까, 철창에 갇혀 지냈던 걸까. 엄마 아빠는 어떤 강아지였을까. 왜 길에서 할아버지를 보면 평소와 다르게 경계하는 걸까. 길에 떨어진 음식물을 좋아하는 건 떠돌던 시절의 버릇일까……
내가 너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묻고 싶은 게 참 많아. 그런데 그 모든 질문 뒤에 “이제는 괜찮지?”라고 묻게 될 것 같아.
너를 맞이하는 건, 형들이 태어났을 때와 비슷했어. 온 가족의 시간과 환경이 다 바뀌었지. 네게 해로운 건 닿지 않게 수시로 집을 정돈하고, 덥거나 추운 계절엔 냉난방을 조절하고, 흐린 날엔 조명을 하루 종일 켜 두지. 퇴근길에는 네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서두르고, 길을 걷다 강아지를 보면 너를 떠올리고 미소 짓는 사람이 됐어.
절미야, 네 덕분에 나는 전보다 큰 공감의 그릇을 가진 사람으로 변했어. 넌 참 대단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두 번 나를 산책시켜서 내 건강을 지켜주지. 넌 참 너그러워. 배가 고프고 용변보고 싶었을 텐데 주말 늦잠 자는 나를 조용히 기다려주지. 넌 참 순수해. 그래서 나도 너처럼 소박하고 따뜻한 삶을 살고 싶어.
너는 이제 우리 가족의 중심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존재야. 절미야, 우리 오래오래 함께 살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