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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Mar 04. 2023

16년 간 미뤄둔 이력서

이력서를 쓰지 않았던 시간들, 안녕.

 시간강사 등록을 하려고 주민등록초본을 떼어보니 찍혀 있었다. 나의 입대일과 전역일자가. '병역사항'이 포함된 초본을 발급받았으니 당연히 적혀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봐도 이렇게 낯설다니 놀랍다. 평소에는 투명해서 보이지 않다가 특정 물질에만 반응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요술 글씨'처럼, '군인'이었다는 정체성이 이따금 드러나기도 하겠지.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놀랄까.


 이력서라는 것을 썼다. 고대하던 전역을 맞이했지만, 이렇게 금방 쓰게 될 줄 몰랐다. 6년 전 수료를 했지만 온갖 핑계로 미뤄 두었던 졸업논문을 언젠가 쓰리라.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자신 없어하면서도 기필코 졸업은 해야 한다는, 앞뒤가 안 맞는 심정으로 학기마다 최소 학비를 내며 근근이 이어온 대학원 덕분에, 뜻밖에 이력서를 쓰게 됐다. 학부생들의 병원 실습지도를 할 시간강사를 찾는단다. 모집 마감 2일 전, 우연히 공고 메일을 열었던 것이다.


 소속감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울타리' 안에서 '우리'라는 글씨를 가슴팍에 새기며 살았다. 그늘 같아서 늘 도망치고 싶었고, 굴레 같아서 벗어던질 때의 후련함을 상상하곤 했다. 막상 홀가분함을 누려야 할 때 나는, 어딘가에 다시 구속되고 싶었다. 이 허전함은, 엄마만 찾으며 치대던 꼬맹이들이 어느새 사춘기가 되어 내 품을 떠났을 때의 심정과 어딘가 닮아 있다.


 얼마 전, 갈 자리를 기웃거리며 혹시나 하여 발급받아 둔 학부 성적표, 교원자격증, 교수 경력 증명서를 꺼냈다. 대학원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서 성적표, 수료증, 연구원 경력증명서를 출력했다. 연구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 내가 참여했던 논문 파일도 내려받았다. 여러 번 이사하는 동안 논문이 실린 책을 버렸었나 보다. 이제 다시 찾아볼 일 없겠지, 수료만 겨우 해 놓고 대학원에 휴학계를 내고 오는 길에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시 찾아보는 날이 왔다.


 한 학기에 30여 시간. 일을 한다고 떳떳이 말해도 될까 싶다. 그렇다고 가벼이 여길 일은 아니다. 자격요건에 겨우 들어 간신히 지원한 자리다. 미래의 간호사 동료이자 나에게 간호를 제공해 줄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내 힘을 보탤 수 있게 된 거다. 공부를 피해왔던 나를 다시 학교로 인도해 줄 일이기도 했다. 밤새 과제를 한 뒤 2시간 자고 충혈된 눈을 비비면서도, 발걸음만은 힘차게 언덕길을 오르던 열정을 되찾게 되리라.


 이력서를 쓰면서 16년 11개월을 샅샅이 뒤졌다. 밤새 내가 해 온 일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긁어모으고, 증명이 안 되는 부분은 브런치에서 단련한 '내 머릿속의 챗GPT'가 써 내려갔다. 내가 자격이 있다는 것을 기필코 증명해 보이려는 밤샘 작업 끝에, 너는 이런 사람이야, 네가 먼저 잘 읽어 봐, 하고 결과물을 내밀 수 있었던 거다.


 그들에게는 이력서이겠지만 나에게는 회고록이었다. 받은 이들에게는 건조하게 점수를 매기는 자료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행간과 어절 곳곳에서 여름철 빨갛게 탔던 정수리, 밤새워 당직을 선 후 팅팅 부은 얼굴, 전투복에 말라비틀어진 땀자국, 불 꺼진 복도를 걸어 퇴근하던 길에 내뱉었던 한숨과 그때 들이마신 서늘한 새벽 공기, 이사할 때마다 아이 돌봐 줄 분을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지새운 불면의 밤, ... 뒤엉킨 기억들까지 읽혔다. 이력서를 제대로 쓴 건지 판단이 안 될 지경이었다. 잠을 못 자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야생이다. 당신은 야생에 던져졌다."

 제 글 좀 읽어 보세요, 여기저기 도배하고, 조회 수에 울고 웃다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이따금 깨닫고 쪼그라들던 작가 지망생의 심장을 제대로 관통한 말이다. 회원 수가 제법 많은 여행 카페의 후기 게시판에 나의 브런치 글 링크를 올렸더니, "정회원 가입비 3만 원 환급을 받으려면 여기에 글을 직접 써야지, 성의 없게, 자기 블로그 광고하는 거냐," "옳소," "이건 좀 추잡하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대 놓고 내 브런치 광고한 게 맞고, 잡스러워 보였을 수도 있겠다. 화가 났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브런치에 글을 써 대고, 인플루언서가 꿈도 아니면서 인스타그램에서 혼자 북 치고 꽹과리를 쳐 대니, 배가 더 고프다. 어미로부터 며칠 전 독립했지만 아직 영양의 발뒤꿈치도 건드려보지 못해서 절박한, 사춘기 치타와 같다. 그보다 더 서글프게도, 현실은 '사십춘기' 치타다.


 야생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고, 그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광고는 하고 싶었지만, 브런치가 가끔 해 주는 메인 광고에 비하면 그곳을 통한 광고효과도 미미할 테고, 무엇보다 내 글이 3만 원짜리라는 오해는 받고 싶지 않아 글을 내렸다. 그 카페에서 여행 정보를 얻은 것은 사실이나, 여행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바를 담아 정성껏 쓴 글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그렇게 쉽게 가치를 논하고 싶지 않다.


 근무해 본 적 없는 병원, 학부시절을 보내지 않은 학교, '학연'으로도 이어져 있지 않아 접점을 찾을 길이 안 보이는 학생들. 나는 낯선 곳에 선 소수자(minority)다. 적당히 겸손하고 적당히 허리를 펴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한없이 솔직해진다고, 어디 주변 사람들이 마냥 호의적이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가, 오히려 경계하고 이용하지 않던가. 때로는 그 사람을 잘 모르기에, 겉모습만으로 쉽게 그를 저울질하기도, 빈 수레의 요란함에 잠시 속기도 하지 않던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삼스럽게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호시절'이 끝났다. 이제는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조금은 막막하다. 취업 준비생, 시간 강사, 작가 지망생, 열혈 엄마, 필라테스 신봉자가 '부캐'인, 꿈 많은 아줌마? 지금의 나를 어제의 내가 만들어 놓았다면, 이제부터는 내일의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건지, 질문해 본다. 어렸던 내가 결과물을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오늘'을 살았다면, 제법 주름이 깊어지고 배포(排布)가 생긴 지금은, '내일'을 어렴풋이나마 그려가며 오늘을 살았으면 좋겠다. 16년 11개월을 돌아보며 앞으로 펼쳐질 20년, 그 이후는 어떻게 쓰게 될지, 꿈꿔본다.


* 사진 출처 : Pixabay (Markus Win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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