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과 사십춘기 엄마의 거실공부 결심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외치던 시절, 집은 유일한 휴식처이자 카페, 영화관, 오락실, 레스토랑이었다. 집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신혼 때 구입해서 이제는 한 번에 화면이 켜지지 않는 32인치 TV, 수년간 쿵쿵 뛰는 아이들에게 시달려 삐그덕거리고 가죽 봉제선이 닳아 터지기 시작한 소파, 앉으면 어른들도 까치발을 해야 하는 의자와 식탁.
‘이 참에 바꿀까.’ 외출했으면 썼을 돈을 살림 바꾸는데 쓰기로 결심했다.
8살 막내도 발을 땅에 댄 채 앉을 수 있는, 키 작은 의자와 식탁으로 바꿨다. 우리 집의 아담한 거실에는 다소 벅찬 65인치 TV를 들이고, 남편은 왼쪽, 나는 오른쪽 팔걸이를 베개 삼아 누울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소파를 장만했다. 소파가 거실 바깥쪽으로 한 뼘쯤 삐죽 튀어나왔지만 ‘이태리 소가죽으로 만든 Made in china’ 소파를 들인 흐뭇함 덕분에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부루마블’ 보드게임을 자주 했다. 주말이면 우유거품을 낸 코코아나 라떼를 홀짝이며 카페 놀이도 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받은 밀키트로 레스토랑 간 기분도 내며 3년을 버텼다. 그 사이 큰 아이는 중학생, 작은 아이는 초등 고학년이 되었고 도시 반대편으로 이사도 했다.
제일 큰 변화는, 작년 초부터 내가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엄마가 지방을 전전하며 기러기 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망할 놈의 신종감염병 때문에 학교나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간에서 나름대로 살아왔다는 걸 잘 안다. 할머니와 아빠가 있었지만 ‘주양육자’가 아니었기에 역부족이었고, 그 사이 아이들이 얼마나 방황했을는지도.
나가 놀기를 좋아하던 막내가 어느새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되었고, 공붓벌레였던 큰 아이는 사춘기를 맞으면서 학습보다 다른 곳에 관심이 간 듯하다. 단기간에 모든 걸 돌려놓을 수는 없겠다 싶었다. 지난 1년 간 스스로 스마트폰을 조절하고 공부 동기를 찾게 되길 바라며 기다리고 지켜봤다.
겨울방학 유럽 여행도 우리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어주길 소망했다. 기대가 컸던 걸까. 개학 후 학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혼자 공부’를 시작했는데, 줄어든 학원시간만큼 자기 방에 틀어박혀 공부를 미루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개학한 지 일주일째가 되었던 어제저녁, 밀린 숙제와 대충 풀어낸 문제집을 가지고 아이들과 푸닥거리를 하고 나니 진이 빠졌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
‘거실은 영화관이자 오락실이어야 해. 전면책장? TV 없는 거실? 그것만은 절대 안 돼.’
16년 간 지켜온 고집이었다. 이걸 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닿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거실에 있던 앉은뱅이 탁자는 식탁으로, 식탁은 거실 중앙으로 위치와 기능을 맞바꾸었다. 이제는 소파에 앉으면 의자와 탁자가 시야를 가려서 TV 윗부분만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손연재 선수가 광고해서 허리 펴고 앉으려 구입한 자세교정 보조기는 마치 일식당의 다리 없는 의자처럼 식탁의자를 대신하게 되었다. 좌고가 낮은 식탁의자는 이제 책상의자가 되었다. 이로써 우리 집 책걸상은 자그마치 네 세트다.
학부모 특강에서 만났던 입시전문가들이 왜 그리 거실을 공부방으로 만들라고 외쳤는지 알겠다. 이제야 그분들이 추천한 방법을 써 본다. 적어도 모여서 공부하면 딴짓을 덜 하게 되겠지, 기대해 본다. 이번에는 기대를 조금만 해 보기로 다짐한다. 부디, 아이들이 집중하는 습관을 되찾기를,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덜 내게 되기를.
나에게는 극약처방과 같다. 내가 원하는 거실을 포기하는 것. 각자의 방에서 스스로 공부할 거라고 막연히 바랐던 고집을 버리는 것. 내 아이들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 아이들을 탓하기보다 먼저 내가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엄마가 되는 건 왜 매번 새로울까. 꽉 채운 13년 간 엄마로 살아온 나는 여덟 살 아이를 둔 엄마에게는 선배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여전히 열네 살 아이를 처음 키우게 된 초보 엄마다. 그뿐인가. 첫째에게는 14년 차 엄마이지만, 둘째에게는 이제 시작하는 12년 차 엄마다. 이 모든 걸 뼈 아프게 인정하고 나니 통증은 금방 사그라들고 오히려 발걸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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