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여행 : 24.01.17~24.01.23
1월 20일 아침에는 프리실라 카타콤을 방문했다가 오후에는 바티칸에 다녀왔고, 1월 21일에는 낮에 한국 투어를 통해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에 두 번째로 방문한 후 오후에 세실리아 메텔라 영묘에 다녀왔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강제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유럽은 겨울에 오후 4~5시면 해가 지기 때문에 구경을 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다닐 수밖에 없었으며 대부분 관광지들 또한 비슷한 시간에 입장이 마감되었다. 나는 유명한 곳만 돌아다니고 수많은 관광지 내부를 입장하는 관광객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이른 기상은 필수였다. 그나마 대도시는 밤이 되면 야경을 즐길 수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주 볼거리인 스위스는 어두워지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한국에서 나는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음만은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대학생이었던 나의 기상 시간은 언제나 그날 첫 수업에 맞춰져 있었다. 그날 첫 수업이 오전 10시에 시작하면 9시에 일어나고 오후 3시에 시작하면 2시에 일어나는 인생을 몇 년간 살다보니 여행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의 성실함에 매번 감탄하면서 다녔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미술관과 박물관에 정말 많이 가게 되는데, 역시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월 20일 아침에 프리실라 카타콤에서 일대일 영어 듣기 평가 투어를 하느라 진을 뺀 뒤 바티칸으로 향했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이 다스리는 나라로, 엄연히 하나의 도시국가이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불린다. 바티칸 미술관은 한국 투어를 통해 입장했다. 가이드가 말해주길 바티칸에도 축구 국가대표 팀이 있으며, 인구수가 적은 만큼 평균 연령이 40대라고 한다.
이날 날씨가 정말 좋았고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미술관 내부에서는 가이드가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밖에서 한 시간 가량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들어갔다. 이 가이드는 꽤나 재밌었기에 만족스러웠다. 나는 투어를 할 때 웃긴 가이드를 아주 선호하는 편이다.
바티칸 미술관은 굉장히 화려해서 인상이 깊게 남았다. 프랑스에서 본 베르사유 궁전이 생각날 정도였다.
미술관 초입에는 그 유명한 토르소와 라오콘 군상이 있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라오콘 군상은 신화가 배경인데, 가운데에 있는 남성은 트로이 신관이고 양옆의 아이들은 그의 아들들이다.
라오콘은 자신이 신의 저주를 받아 죽을 것을 알았지만 아들들까지 죽임을 당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때문에 좌절과 절망이 표정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뭉크의 <절규>가 라오콘 군상의 표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난다. 왼쪽 아이는 이미 숨이 끊어졌고 오른쪽 아이는 죽임을 앞두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듯한 모습이라고 했다.
내가 이걸 실제로 보다니. 미술관에서 유명한 그림들을 볼 때마다 했던 생각이다. 학생 때 아테네 학당을 표지로 한 문제집이 있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정중앙에 있는 두 사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한다. 이 그림 또한 굉장히 인상이 깊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몇 안되는 그림이라서 그런 듯싶다.
그리고 대망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봤다. 이 사진들은 촬영이 불가능해서 가이드가 보내준 사진을 올린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우리나라에서 <천지창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있는데, 실제로 보면 정말 압도적이다. 두 작 품 모두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유럽에서 본 미술 작품 중에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미술작품을 보면서 감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처음 본 순간 누구나 감탄이 나올 것이다. 사진을 찍지 못하는 대신 정말 열심히 눈에 담고 왔다. 천지창조는 천장화이기 때문에 목에 담이 걸릴 정도로 고개를 꺾어 한참을 감상했다. 많은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내가 미술 지식이 없어서인지 유명한 작품들을 봐도 솔직히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도 그렇구나, 흥미롭다 정도의 감상이었지 그림 자체를 보고 압도적인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이 두 작품은 정말 실제로 와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미술관에서 나온 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갔는데, 여기는 입장료가 무료다.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광장의 경관이 아름다웠다. 로마에서는 첫날을 제외하고 줄곧 날씨가 맑았기에 너무 좋았다.
몰랐던 사실인데,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로, 천주교 박해로 1846년 순교하였다고 한다.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굉장히 하얗고 깨끗하다. 이곳에 동상이 세워진 인물 중 최초의 아시아인이라고 한다.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 전통 의복인 한복을 입고 갓을 쓰고 있으며, 한글로 이름이 적혀있다.
여행을 하면서 이탈리아가 부러워졌다. 이탈리아는 정말 다 가지고 있구나. 위대한 공화정과 강력한 제국의 역사는 물론 엄청난 수의 문화유산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작품과 건축물, 유럽 전반에 영향을 끼친 문화적 힘, 그리고 자연 환경과 지역마다 다채로운 색깔까지. 게다가 현재도 부유한 국가이니. 카타콤에서 만난 J는 이탈리아가 서민들이 살기에 별로라고 불평을 했지만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현재도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나라임에는 분명하다.
로마에서의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은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바빴지만 여행 막바지인 로마에서는 종종 귀국 후 생활에 대해 생각을 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했으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고 좋아하던 것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취업에 대한 압박과 고민도 없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귀국하기 하루이틀 전에는 나도 모르게 취업 사이트에 접속해 구인광고를 뒤적거리기도 했다.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우울해지고 여행을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한국에 돌아온지 몇 달이 지난 현재도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여행을 뒤돌아보면서 글을 쓰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기분. 현재는 일을 하며 다음 여행을 떠나기 위한 경비를 모으고 있다. 기억엔 양면성이 있다. 로마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추억은 현재의 나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불행하게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