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여행 : 24.01.17~24.01.23
카타콤(Catacomb)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지하 묘지이며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대에는 신자들이 이곳에 숨어살았다고 한다. 카타콤. 이름만 들어도 흥미가 샘솟고 가보지 않고는 배지기 못할 것 같다. 내가 정말 환장하는 키워드인데 미스테리하고 신비로운 지하 도시의 느낌이랄까. 그런 이유로 터키의 지하도시 데린쿠유에도 꼭 방문하고 싶다.
로마에는 여러 군데에 카타콤이 있으며 이탈리아어로 카타콤베(catacombe)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로마 카타콤은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catacombe di San Calisto)인 듯싶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로마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카타콤이라고 한다. 로마에서 버스를 타고 살짝 외곽으로 향했으며 로마 중심부에서 거리가 크게 멀지 않아 충분히 다녀올 만했다.
1월 19일에 카타콤에 방문했는데 이곳에는 산 칼리스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카타콤들이 몰려있다. 나는 이 지역에서 세 곳의 카타콤을 방문했으며 다음날인 1월 20일에는 다른 지역에 있는 카타콤에 방문했다.
이번에 구글맵으로 확인해보니 카타콤이 로마 곳곳에 상당히 많다. 당시에는 정보를 몰라 1월 20일에 방문한 카타콤은 숙소에서 꽤 떨어져있는 곳이었다.
1월 19일 방문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Catacombe di San Calisto)
성 세바스찬의 카타콤(Catacombs of Saint Sebastian)
도미틸라의 산타콤(Catacombs of Domitilla)
1월 20일 방문
프리실라 카타콤(Catacombs of Priscilla)
카타콤은 내부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앞의 두 군데에서는 규정에 따라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방문한 도미틸라의 카타콤에서는 사진을 찍었다.
아침 일찍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으로 향했다. 오픈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갔는데 영어 투어자가 나밖에 없어 다음 타임에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스페인어하고 독일어인가 몇 개 언어 투어가 더 있었는데 카타콤은 가이드 없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산책을 하고 고양이와 놀면서 다음 타임까지 대기했는데, 주변 풍경이 정말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10시가 되어 드디어 카타콤에 들어갔다. 앞서 오스트리아의 슈테판 대성당에서 카타콤 투어를 했을 때 실제로 해골을 보았기에 여기서도 해골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로마에서 방문한 모든 카타콤에서는 해골이 전시되어있지 않았다.
무수한 해골에 둘러싸인 카타콤을 보고 싶다면 파리 카타콤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파리에 카타콤이 있는줄 몰랐는데 굉장히 유명한 카타콤이 있었다. 파리에 있을 때는 알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인기가 많아 몇 달 전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카타콤 내부는 생각보다 매우 컸으며 미로처럼 되어있어 가이드 없이 들어갔다가는 무조건 길을 잃을 만했다. 정확한 크기는 알 수는 없지만 투어에서 둘러본 공간은 그 규모에 비해 극히 일부분인 것으로 보였다.
이 사진은 도미틸라 카타콤에서 찍었는데 방문한 모든 카타콤들이 전부 이런 구조였다. 카타콤 내부는 대부분 커다란 돌에 이런 길쭉한 구멍을 파놓은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이 공간에 시신을 안치했다고 한다.
성인 용은 물론 어린 아이 용도 매우 많았다. 이 카타콤은 2세기 중반에 지어졌는데 1700년 전에 이곳이 시신이 가득 차 있었다는 상상을 하니 으스스하고 너무나 흥미로웠다.
투어 시작 때 가이드가 카타콤은 박해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숨어서 그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확신이 안 서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한국에도 이런 인식이 퍼져있다는 걸 볼 때 이 오해는 만국공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타콤 내부에는 그리스도에 관련된 벽화도 일부 남아있다. 이런 것을 볼 때는 항상 만들어진 시기를 상기하는 편이다. 이것이 1700년 전의 묘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신비롭고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 든다.
다음으로는 바로 성 세바스찬의 카타콤에 갔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투어 인원이 앞선 카타콤보다 많아 무리에서 약간 떨어져 혼자서 내부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함께 투어에 참가했던 중년 여자 두 명이 그런 나를 보고 미소짓던데 호기심 많은 딸 같아서 그랬길 바라본다.
성 세바스찬 카타콤 투어가 끝난 후 곧바로 도미틸라의 산타콤으로 향했다. 이곳도 별로 멀지 않았으나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인지 문을 닫아 2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간단히 점심을 먹을 겸 근처 카페 같은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와 젤라또를 먹었다. 주인 아저씨가 굉장히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고 로마 중심부보다 가격도 저렴했다.
가게 이름은 'Gelateria Baja Beach'.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관광지가 아닌 현지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이런 상황들이 정말 좋다. 파리에서도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온 날 근처에서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가 정말 맛있는 햄버거를 먹었던 때가 생각났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 관광지만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현지 느낌의 장소나 식당을 방문할 일이 생기는데 그것이 진짜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나는 유럽 여행 동안 전부 관광지 위주로 다녔기에 진짜 현지의 삶을 목격하거나 체험할 수 없었고,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우연히 멋진 음식점을 발견한 일은 파리와 로마에서뿐이었다. 그래서 정말 다음 여행에서는 한 도시에 길게 머물며 현지인들의 실제 삶을 체험하고 싶다는 갈망이 든다.
나는 유럽 여행에서 딱 두 번 낯선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파리에서 베르사유 궁전에 간 날과 로마에서 카타콤에 간 날이다. 유럽은 한국과 굉장히 멀지만 워낙 전세계에서 여행을 오기에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은 물론 한국인들도 정말 정말 많다.
그렇기에 크게 낯설다거나 정말 한국과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 했다. 그런데 베르사유 궁전과 카타콤은 관광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근처를 돌아다니면 관광지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첫 여행지인 파리에서 나는 베르사유 궁전을 나와 길거리를 무작정 걸을 때 처음으로 정말 외국에 와 있다는 낯선 기분을 느꼈고 카타콤 근처에서 이것이 진짜 로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유독 파리와 로마가 기억에 남는다.
점심을 먹고 2시가 되기 전 도미틸라의 카타콤으로 다시 향했다. 그곳에서 외국인 남자 두 명이 나처럼 서성이고 있었는데, 이 둘 덕분에 나는 여기서 최고의 카타콤 투어를 했다. 사실 앞선 두 카타콤에서 나는 투어에 만족하지 못 했다. 너무나 흥미로운 이 공간을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는데 친구들 덕분에 소원을 성취하게 되었다.
마침 수학여행을 왔는지 몇 십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카타콤에 입장하게 되었다. 이것이 매우 좋은 징조였다. 가이드는 단 한 명이었기에 그녀는 청소년들을 이끄느라 우리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외국인 남자 두 명은 나와 같이 호기심이 매우 왕성해 보였고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되기 전 가이드가 아이들을 앉혀놓고 긴 설명을 하는 사이 나는 혼자 카타콤 내부로 들어가 조금 구경을 했다. 그 두명과 나는 서로의 기질을 알아보았고 우리는 친구가 되어 가이드의 눈을 피해 카타콤 투어를 시작했다.
편의상 K와 J로 부르겠다. K는 러시아에서 온 30대 초반 남자였고 J는 이탈리아인이지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40대 후반~50대 남자였다. 카타콤 투어가 시작되자 우리는 가장 마지막 줄에 합류했고 사람이 너무 많아 오히려 우리는 자유로웠다.
이곳도 역시나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투어 인원이 워낙 많았기에 우리는 가이드의 눈을 피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다.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찍었다. 내 앞에 있던 남자는 내부에서 셀카를 찍다가 나에게 여기서 사진을 촬영하면 안 되냐는 질문도 했다. 아이들은 핸드폰 후레쉬를 켜서 내부를 비추고 다녔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긴 하지만 철저하게 막는 것은 아닌 듯했다. 사진을 여러 장 가지고 있지만 블로그에 올리면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싶어 개인 소장 중.
우리 셋은 무리와 떨어져 카타콤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카타콤 내부는 굉장히 크고 미로 같아서 길을 잃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똑똑한 K와 J 덕분에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개방된 곳은 모두 표지판이 있었고 중간중간 카메라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혼자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와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다 싶을 때는 희미한 말소리를 따라가 다시 마지막 줄에 합류하는 식으로 투어 루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적인 탐방을 즐겼다.
펜스가 세워져 있는 곳도 들어가 보고 아직 발굴 중으로 보이는 곳까지 탐방했다. 아쉽게도 불빛도 없고 펜스가 굳게 닫혀있는 미개발 구역까지는 들어가지 못 했다. 나는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K와 J가 말렸다.
우리는 가이드 무리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카타콤을 자유롭게 탐방했고 투어가 끝난 후에도 내부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나오다가 다른 직원과 함께 카타콤에 다시 들어가는 가이드를 마주쳤는데, 나같이 호기심을 가지고 가이드 몰래 카타콤을 탐험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제재하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밖으로 나온 후에는 K와 J와 함께 이탈리아 피자를 먹었다. K는 조국의 대통령인 푸틴을 비난하며 우크라나를 침공하고 전쟁을 지속하는 러시아가 싫어 해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J는 이탈리아는 좋지만 실제로 살기에는 어려운 나라라며 뉴질랜드에서 사는 것에 굉장히 만족해하는 듯했다.
K와는 인스타 친구를 맺었지만 J는 왓츠앱밖에 쓰지 않아 아쉽게도 연락처를 교환하지 못 했다. 이렇듯 장기 해외여행의 장점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친구가 될 기회가 많다는 것인데, K와 J와의 만남 덕분에 이날 도미틸라의 카타콤이 내게 최고의 카타콤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정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다음날에는 아침 일찍 프리실라 카타콤으로 향했다. 영어 투어는 오전 10시에 첫 시작이었는데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어 예상치 못하게 가이드와의 일대일 투어가 시작되었다. 이러면 정말 꼼짝도 하지 못하고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내가 이미 세 곳의 카타콤을 방문했다고 하니 가이드는 내게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이 표식이 기억나느냐. 무슨 의미인지 맞춰봐라 등등. 단 둘뿐이니 계속 내게 말을 걸고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설명에 집중하느라 카타콤 구경은 어느새 뒷전이 되었다. 설명 또한 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현재 얼핏 기억나는 건 프리실라는 한 여성의 이름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카타콤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그리스도교 문양과 표식들이 곳곳에 있었다. 가이드가 벽화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처음으로 집중해서 설명을 들어보니 상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단독투어는 흡사 영어 듣기 평가와 같았다... 스피킹 테스트도 추가다. 영어에 계속 신경을 쓰느라 전날 도미틸라의 카타콤에서의 자유롭고 즐거웠던 우리들만의 탐험이 그리워졌다.
사실 나는 파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도시에서 호스텔에서 지냈음에도 같은 방을 쓰는 이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밤에 클럽이나 파티, 현지 술집 같은 곳에 가 시간을 보내지 않는 이상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도 친구를 사귀기는 쉽지 않다. 호스텔에서 가끔 여행자들을 위한 자체 파티 등을 하기도 하지만 겨울은 비수기이기에 그런 이벤트도 없었다.
나는 여행자이기보다 관광객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관광지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 와 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자발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말 성실한 관광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밤 낯선 사람과 어울려 노는 것은 내 성격에 잘 맞지 않고 영어로 이야기할 때의 피로함, 낯선 사람과 말하는 것에 대한 어색함, 귀찮음이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홀로 하는 여행 중 이따금 만나는 인연들은 소중하고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들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일 때라는 말이 생각난다.